- 여전히 문재인 유리한 양강, 철수 ‘난전’ 유도해야
지난 2월 업무차 방문한 대구·경북은 스산했다. 사람들은 서울서 내려온 이들에게 탄핵이 성사될 것인지 예측해 달라 했다. 대구에서는 탄핵이 인용될 경우 오히려 유승민 의원이 ‘배신자’ 낙인을 떨치기 어려울 거란 말을 들었다. 경북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최순실 게이트’ 때 큰 실망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탄핵 사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조차 이번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가 승리할 수 있으리라 믿는 이는 없었다. 대구에서 만난 한 사람은 “막판에 보수 쪽 후보가 사퇴하면서 안철수 손 들어주고 가는 게 문재인 집권 막는 거의 유일한 길 아닐까”라고 말했다. 경북에서 만난 이들은 부산·경남이 야권 쪽으로 이동하고 있단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대선 이후 자유한국당이 ‘TK 자민련’이 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었다.
安, 호남 지지 유지하면서 TK민심 잡기
정국은 돌고 돌아 이제 사람들은 다시 한번 ‘TK의 선택’에 관심을 지닌다. 역설적으로 문재인 민주당 후보 지지자들은 대구·경북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하기를 바란다. 우습게도 문재인 후보가 명확하게 ‘적폐’라고 부르는 그 정당 후보가 조금이라도 더 선전해야 양강 구도에서 문 후보의 우위가 확실해지는 까닭이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은 호남의 지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대구·경북의 지지를 독려해야 최소한의 당선 가능성이 확보된다. 여러 모로 볼 때 임무 수행의 난도가 더 높은 것은 안철수 쪽인데, 그럼에도 오묘하게 박빙의 양강 구도가 성립했다. 안철수 후보로서는 ‘태극기 민심’의 지지를 거절하지 않으면서도 본인이 ‘촛불 민심’에 어긋나지 않음을 주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대구·경북의 전략적 선택이 필수적이다.
한편 홍준표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최소한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사실상 이번 선거가 정치역정의 마지막일 수 있다. 홍준표가 참패해도 자유한국당이 쉽게 사라지진 않을 테지만, 대선 이후의 정당 주도권은 차라리 대통령 대행을 마치고 나온 황교안 총리 같은 이들에게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홍준표 후보 역시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문재인 지지자와 홍준표 후보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난망한 상황. 지난 12일 보궐선거 결과는 이들에게 잠깐의 희망을 줬다. 김재원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광역의원 한 명과 기초의원 네 명 등 대구·경북 지역에서 치러진 여섯 선거구에서 자유한국당이 전승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조직력이 건재하니, 문재인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이후 급속도로 불어닥친 ‘안철수 바람’이 다소 수그러들면 대구·경북의 안철수 지지는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질 만했다.
하지만 14일 발표된한국갤럽조사를 뜯어 본다면 양강 구도는 대선 끝까지 갈 확률이 높아 보인다. 4월 2주차 조사에서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는 각각 40%와 37%의 지지율을 보였다. 이는 안철수 후보가 한 주 동안 무려 16% 상승한 전주 조사에 비해 양측 다 2%p씩 더 결집하여 3%p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상호 네거티브 검증의 여파인지 서울에선 문재인 후보가 다시 1위를 탈환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호남에선 문재인 후보가 우위인 상황에서의 분할이 지속되고 있다. 충청에선 안철수 후보가 여전히 우세다. 유치원 문제를 두고 안철수 후보가 갈팡질팡하여 학부모들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 현재 여론조사에 얼마나 반영이 되었는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다시 대구·경북이다. 이 지역에서 안철수 후보로의 쏠림은 지속되고 있다. 4월 2주 차 갤럽조사에서 대구·경북의 안철수 지지율은 48%, 문재인 후보가 25%, 홍준표 후보는 8%에 불과하다. 이 지지율이 신기루가 아님은 정당 지지율 추이도 보여준다.
4월 1주 차 갤럽조사에서는 대구·경북의 정당 지지율이 민주당 21%, 자유한국당 19%, 국민의당 16%였다면, 2주 차 조사에선 국민의당이 27%로 수위가 됐고, 민주당은 21%로 고정됐으며, 자유한국당은 15%로 내려앉았다. 의견유보층은 33%에서 23%로 줄었다. 이는 대구·경북에서 선거를 방관하던 유권자들이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대체재로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얘기도 이에 부합한다. 경북 지역에선 자유한국당 당원들조차 안철수를 찍겠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또한 홍준표 후보가 미국의 트럼프나 필리핀의 두테르테를 염두에 두고 내세우는 ‘사이다’ 발언이 자유한국당의 지지 기반인 60대 이상, 대구·경북 유권자에겐 낯설고 불편하다는 분석도 있다.
문재인 vs 안철수, 관건은 TK 민심
자유한국당 지지층은 일정 수준 지지율이 올라오지 않은 이들에게 소신 투표하기는 어려운 이들인데, 새로 만들어진 새누리당의 조원진 후보까지 선거전에 뛰어들 경우 탄핵 기각을 바랐던 15%의 분열은 더 촘촘해지고 홍준표 후보가 이를 극복하고 뛰어오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대구·경북의 선택이 어느 정도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양강 구도가 선거 막판까지 유지될 거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구도에선 여전히 문재인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부·울·경과 호남의 우세를 기반으로 한 문재인 지지층의 성향은 비교적 균질하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대구·경북과 충청과 호남이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집단에서 우위를 유지하거나 격차를 줄여야만 한다. 여기에서 역전극을 벌이려면 수도권에서의 확실한 우위가 필요한데, 3040 학부모의 마음에 불을 지른 유치원 발언이 이를 어렵게 만든 측면이 있다.
지지층이 확고한 문재인 후보에게 필요한 건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보여줬던 광폭 행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안철수 후보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영역에서 싸움을 걸어 본인이 문재인보다 역량이 있는 대권 후보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직이 부족한 안철수에게 가능한 길은 그것밖에 없다. 난전이다. ‘모범생’ 이미지의 안철수 후보가 난전을 유도할 성격이 될는지가 선거의 관전 포인트가 됐다.
한윤형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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