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연기 인생’, 병상서도 연기 걱정…암도 앗아가지 못한 불굴의 열정
승승장구했던 톱스타의 삶, 고발 프로그램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지난 9일 췌장암으로 별세한 탤런트 김영애의 발인이 11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행된 가운데 고인의 빈소에는 동료 배우를 비롯해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꾸준히 TV에 얼굴을 비쳤기에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팬들이 놀랐다. 팬들의 애도 메시지가 잇따르는 가운데 과거 악연으로 얽힌 이영돈PD와의 관계가 다시금 화제 되고 있다.


대입 재수를 위해 방문했던 서울에서 우연히 친 시험에 덜컥 붙어 MBC 공채 탤런트(3기)로 데뷔했다는 ‘부산 소녀’ 배우 김영애(66세)의 발인이 지난 11일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행됐다. 빈소가 마련되자마자 고인의 유작이 된 KBS 2TV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배우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는 배우 신구, 라미란, 이동건, 조윤희, 현우, 오현경 등과 호흡을 맞추며 집안의 온갖 근심을 떠안은 엄마 최곡지 역으로 애틋한 모성애를 그려냈다.

황진이 통해 ‘배우는
겸손해야 한다’ 깨달아

생전 약 2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김영애는 당시 도회적인 이미지로 냉철하고 세련된 커리어우먼부터 표독한 악녀 등 센 역할을 주로 맡았다. 특히 그는 자신의 인생작으로 1996년 방영한 시대극 ‘형제의 강’과 2006년 ‘황진이’를 꼽았다. ‘형제의 강’에서는 그의 도시적인 이미지와 시대극이 맞지 않다는 주변의 우려를 철저한 준비로 떨쳐내고 연기력을 증명해낸 작품이었다. ‘황진이’에서는 천민 출신 조선 최고의 춤꾼으로 황진이를 키워내는 독한 스승이자 업에 관한 자존심이 하늘 높은 인물인 ‘행수 기녀 임백무’를 연기했다. 그는 “다시 봐도 자랑스러운 작품”이라며 “임백무를 연기할 때는 작가가 만든 대본에 누를 끼치진 않을까 무서워하며 연기했다. 배우로서 늘 겸손해야 함을 알게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사업 확장과 결혼을 이유로 2004년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가 3여 년 전 조심스레 복귀한 뒤에는 영화 ‘변호인’, ‘애자’에서 가슴 절절한 모성애를 선보이며 소탈한 어머니상도 소화해냈다.

김영애는 지난해 10월 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시작하고 두 달 만에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의료진들의 만류에도 약속한 출연을 지키겠다며 외출증을 받아가며 촬영장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앞선 인터뷰에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아니었다면 진작 삶에 대한 의지를 놓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배우 이정은은 밤늦게까지 빈소를 지키며 오가는 문상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김영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외롭지 않게 배웅했다. 배우 이정은과 정경순은 김영애가 생전 한 매체와 진행했던 마지막 인터뷰에서 “내가 죽으면 경순이나, 정은이에게 내 이야기를 물어보라”고 말할 정도로 막역한 동료 사이였다. 이정은은 “(고인이) 당시 의사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을 떠올리며 ‘드라마 같진 않구나’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비슷한 연기를 수차례 해봤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 나니 느낌이 다르다면서 죽음을 앞에 두고도 ‘내 연기가 부족했구나’라며 연기 생각을 하셨다”고 회상했다.


김영애의 아들은 “암 환자들은 마약성 진통제를 맞아야 하는데 어머니는 연기에 방해가 된다고 맞지 않고 촬영장에 나갔다”며 그가 마지막까지 불태운 연기혼을 전했다.


이처럼 열의를 다했던 그도 재발한 췌장암 앞에 연기자로서의 삶을 마감해야 했다. 그는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촬영 당시 황달 증세를 감지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드라마 종영 뒤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는 듯했지만 지난해 말 암이 재발하며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이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촬영하면서 스스로도 본인의 건강 상태를 감지했는지 드라마 촬영을 모두 마친 뒤 영정사진을 찍고 수의로 입을 한복과 장례 절차까지 직접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췌장암은 비교적 드문 암이지만 조기 진단이 어렵고 전이가 쉬운 특징이 있다. 또 우리나라 10대 암 중 생존율이 8%대로 매우 낮은 편이다. 심지어 초기 증상이 적어 상당 부분 간이나 폐로 전이된 말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 까닭에 암 중에서도 가장 독한 암으로 악명을 떨치는 질병으로 2011년 애플의 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목숨도 앗아갔다.


그런데 김영애가 급작스런 병세 악화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과거 ‘황토팩 사건’으로 얼룩진 이영돈 PD와의 악연이 재조명됐다. 과거 이영돈 PD가 진행한 고발 프로그램에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김영애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니냐는 것이 화두였다.

허위 방송 뒤 ‘사업 실패, 이혼, 암’…三災 겪어

이영돈 PD와 김영애의 악연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애는 연기자뿐만 아니라 사업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먹고살기 위해 연기하고 싶지 않아서 사업을 시작했다”며 사업 동기를 전했다. 돈 생각 없이 하고 싶은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또 그는 “먹고살기 위해 한 작품도 많다. 저런 연기 왜 하느냐는 소리를 들을 때는 정말 부끄러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2001년 시작한 황토 화장품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이 시기 김영애는 수익 중 4억을 기부하기도 했다. 자신이 사업으로 성공한 이유도 배우로서 얼굴이 알려진 덕이니 보답하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그러나 약 17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김영애의 사업을 당시 KBS 프로그램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에서 ‘황토팩, 중금속 검출’이란 자극적인 내용으로 보도하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청의 공식 발표를 통해 황토팩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대법원까지 벌인 공방과 상실감에 심신이 피폐해진 그는 연예계 활동을 모두 접고 한동안 칩거했다.

허위 방송 후, 사실상 김영애의 삶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실추된 배우로서의 이미지는 물론 영업 손실을 회복하기엔 이미 늦은 뒤였다. 설상가상으로 남편과도 이혼했으며 긴 법정 공방과 스트레스로 건강에도 이상신호가 포착되며 쇠약해졌다. 당시 김영애는 한 인터뷰에서 “굵은 쇠줄로 내 목을 옥죄는 것 같았다. 압박감이 심했고 우울증을 앓았다. 정상이 아니었다”며 힘든 심경을 토로했다.

‘걸면 걸린다’는 식의
프로그램 비난도 거세

이처럼 허위 고발 프로그램으로 피해를 봤던 배우 김영애가 별세하자 더불어 식품업계 고발을 주도하는 ‘고발 프로그램’ 때문에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은 사건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됐던 벌집 아이스크림과 대왕 카스텔라의 영세업주들이 방송 후 게시판 곳곳에는 정정 보도를 요청하는 반박글이 빗발치고 있다.


일각에선 고발 프로그램이 일부 사례를 지나치게 일반화해 양심 중소기업이나 서민 자영업자의 생계를 막는 ‘악덕 방송’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한다. 또 방송 관계자들은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형 기업의 잘못된 행태나 사회시스템 문제는 덮어두고 서민 자영업주들 위주로 하는 고발은 영세업자를 이용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횡포로 보일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소비자를 대놓고 속이거나 성분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 문화 때문에 불신감이 대단히 큰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고발 프로그램들은 시장 질서를 투명하게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고발 프로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어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중시하다 보면 결국 과잉 고발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식용유 공포 조장이라든지, 일부 문제를 마치 전체 업계의 문제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어 정상적으로 영업한 업체들이 치명타를 입었다. 또, 그야말로 걸면 걸리는 식이라면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것”이라며 “이번 논란을 식품업계와 고발 프로그램이 모두 개선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이영돈 PD는 지난해 유튜브에 직접 개설한 ‘이영돈 TV’라는 자체 방송에서 여전히 고발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있어 유행처럼 번지는 ‘고발 프로그램’에 대한 언론인들의 방송윤리의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변지영 기자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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