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유씨, “담배를 끊으세요, 어쩌면 나보다 검사님이 먼저 죽을 수도 있어요” 농담
조사 과정 중간에 간질 발작 일으키는 등 횡설수설하기도


2004년 7월18일 일요일. 온 국민은 경찰이 비 내리는 야산에서 줄줄이 시체를 발굴해 내는 장면을 뉴스에서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건의 범인이자 ‘희대의 연쇄살인마’로 불리는 유영철은 부녀자와 정신지체 장애인 등 21명을 살해하고 시체 11구를 토막 내 암매장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됐다.

“피해자의 인육을 먹었다.”, “잡히지 않았다면 100명까지 살해했을 것이다.”라는 진술 등으로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극치를 보여준 유영철은 이문동 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에 대한 살인 혐의를 인정받아 2005년 6월 9일 사형 선고가 확정됐다. 유영철을 직접 수사했던 검사는 그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서 사건 주임검사를 맡아 유영철과 얼굴을 직접 맞대야 했던 이건석 변호사는 지난 2008년 8월 4일 발행된 검찰 전자신문 뉴스-프로스 8월호에서 유영철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와 그에 대한 추억(?)을 뱉어냈다. 당시 이 변호사는 같은 부 소속 최관수 변호사와 사건을 나눠 최 변호사가 출장마사지사 살인을, 이 변호사는 부유층 연쇄살인 등 나머지 사건을 전담했다.

■ “검사도 무서웠다?”

이 변호사가 유영철을 처음 만난 것은 경찰의 현장 검증 때였다. 검은색 모자에 군청색 판초 우의를 걸치고 마스크를 끼고 있던 유영철의 태연한 범행 재연 장면을 지켜보자니 그 자체가 괴기스런 공포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유영철이 빤히 자신을 쳐다보더라는 것.

유 씨의 눈은 생각보다 해맑고 한편으로는 고독해 보였는데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 번뜩이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변호사가 나중에 왜 그렇게 봤느냐고 물었더니 태연하게 “혼자 양복 차림이어서 그냥 한번 봤을 뿐”이라고 답했다.

유영철 신병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 어느 휴일 이 변호사는 검찰청 10층 특별조사실에 혼자 출근해 사건 기록을 검토했다. 특조실은 출입이 제한돼 평소에도 혼자 있으면 음침한 느낌을 받는 곳. 기록에는 피해자들의 끔찍한 부검과 사건현장 사진이 편철돼 있었고 때마침 비가 많이 내렸는데 천둥과 번개까지 치기 시작하자 공포감이 몰려와 도저히 기록을 계속 볼 수 없었다고 이 변호사는 털어놨다.

■ “검사님 담배 끊으세요”

이 변호사는 유 씨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점차 세상을 왜곡된 시각으로 보게 됐지만 기본적인 심성은 밝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이 변호사가 사건을 송치받아 피의자심문을 한 첫날, 평소대로 수없이 담배를 피워 물자 유 씨가 “담배를 끊으세요, 어쩌면 나보다 검사님이 먼저 죽을 수도 있어요”라며 농담을 건넸다는 것.

유영철은 영등포구치소로 이감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다가 포기한 뒤 이 변호사에게 “검사님 선물 하나 줄게요.”라고 하더니 부유층 연쇄 살인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스스로 내놓았다. 키가 작은 유영철은 구두 뒤축에 키 높이 보조 뒷굽을 붙이고 부유층 주택가에서 범행을 했는데 경찰 기동수사대 승합차 안에서 이 보조 뒷굽을 떼어내 의자 밑에 숨겨놨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유영철은 처음 검거됐을 때 부유층 살인사건을 자백했다가 혼절한 어머니를 보면서 심경 변화를 일으켰고 승합차를 타고 현장으로 가던 중 기침하는 척하며 손톱으로 뒤축을 뽑아냈다는 것.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애태우던 검찰에게 범행 현장의 족적과 구두 보조 뒷굽의 일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 “범행 대상이었던 변호사를 선임해 달라”

유영철은 저명한 모 여성 변호사를 자신의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변호사는 유영철이 저지른 구기동 부유층 살인사건 주택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사실 유영철이 그 변호사의 집에 침입하려 했지만 마침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어 포기하고 대신 구기동 저택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생사가 한순간에 갈린 것이었다.

이유를 묻자 유영철은 “그 변호사가 나에게 희생당할 뻔했기에 오히려 나를 잘 이해할 것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부녀자 연쇄살인사건 범행의 동기도 잘 이해할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성사되지 않았고 사형제 폐지 단체 변호사가 자원해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됐다.

■ 여죄는

유영철은 검찰 수사에서 4명의 부녀자를 추가로 살해했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유영철은 그 사체들도 토막 내 다른 11구를 암매장했던 야산 주변에 묻었다고 말했고, 최 변호사는 더운 여름날 아직 남아 있던 이들 사체의 부패한 냄새를 참아가며 용하다는 점쟁이까지 동원해 두 차례나 현장을 뒤졌지만 결국 실패했다.

과연 유영철은 그의 말대로 전체 사건 중 일부만 자백하고 사형 집행이 임박했을 때 한 건씩 추가로 털어놓는 수법으로 삶을 연장하려는 것일까. 한편 이 변호사는 지난 2008년 초 개봉한 영화 ‘추격자’를 보고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는 “영화에서 다소 신경질적인 모습의 검사가 기동수사대장을 마구 다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반적으로 검사가 경찰 수사를 훼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며 “내가 기수대장을 수사 지휘한 것이 모티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아무리 각색했다고 해도 나로서는 다소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한편, 유 씨는 경찰에 여성을 감금, 폭행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뒤 경찰과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며 수사망을 따돌리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모 전화방 업주의 제보를 받고 지난 2004년 7월 초 서울 역삼동의 한 여관에서 여성출장 마사지사를 감금, 폭행한 혐의로 7월 15일 오전 4시30분 유 씨를 긴급체포했다.

유 씨는 그러나 감금, 폭행 혐의를 부인하면서 “이 사건 외에 상당한 사건을 직접 내가 했다. 내가 저지른 사건만 20여 개는 된다.”고 말하는 등 경찰수사의 초점을 초기에 흔드는 발언을 했다. 깜짝 놀란 경찰은 유 씨에게 이를 집중적으로 캐물었고 유 씨는 지난 2003년 부유층 노인살해사건의 장본인이라고 말한 뒤 조사과정 중간에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등 이후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유씨가 폭행·감금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엄청난 살인사건을 저질렀다고 말한 것으로 보였다며 간질증세를 보이고 횡설수설하는 용의자를 앞에 두고 유 씨의 진술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유 씨가) 의식적으로 간질증세를 일으켰다”며 검거 초기 감금, 폭행 혐의를 흐리면서 허황된 말을 했다고 말했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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