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대표와 ‘맞고소’전…30년 인연이 악연으로

박은주 전 김영사 사장 <뉴시스>
‘출판계의 여왕’ 박은주(60) 전 김영사 사장이 지난달 말 전격 구속됐다. 책을 쓴 작가들에게 인세를 지급한 것처럼 꾸며 수십억 원을 횡령한 혐의와 개인 자회사에 영업권을 무상으로 넘기는 방식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이다.
 
박 전 사장의 횡령·배임 혐의는 김영사의 설립자인 김강유(70) 현 대표이사 회장과의 쌍방 고소과정에서 드러났다. 30여 년 전 김 회장에게 ‘스카웃’돼 수차례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며 ‘출판계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렸던 박 전 사장이다. 두 사람의 수십 년 ‘인연’이 어쩌다 ‘악연’이 됐을까. 일요서울은 두 사람의 고소전 내막을 들여다봤다.

박 전 사장, 현 김영사 대표에 스카웃된 후 베스트셀러 ‘연타’
2014년 돌연 사퇴… 현 대표 고소→혐의 없음→피소→구속 ‘불명예’

 
박은주 전 사장은 한국 출판업계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탁월한 기획력을 갖춘 출판계의 큰 손으로 평가받는다. 강원도 출신인 박 전 사장은 이화여대 수학과와 미국 뉴욕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9년 평화출판사에 입사, 출판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82년 만 25세에 김영사의 창업주 김정섭(김강유 회장의 개명 전 이름)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김영사 편집장으로 입사했다. 김 회장은 7년 뒤인 1989년, 불과 31살이던 그를 대표이사에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박 전 사장은 특유의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김영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 취임 6개월 만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자서전, 1989)를 펴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에 등극시켰다.
 
이 밖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1994년),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2009년), ‘정의란 무엇인가’(2010년), ‘안철수의 생각’(2012년) 등 대형 베스트셀러들을 출간하면서 ‘출판계 미다스의 손’으로 떠올랐다.
 
돌연 사퇴… 왜
각종 ‘설’ 난무

 
그의 승승장구는 2014년 5월 돌연 사퇴로 변곡점을 맞았다. 당시 그의 사퇴를 두고 각종 ‘설’이 나왔다. ‘경영악화 책임설’부터 ‘(김 회장과의) 경영권 갈등설’ 등이 불거졌다. 당시 표면적 이유는 ‘출판 유통과 관련한 회사 내부 문제와 사재기 의혹에 대한 책임’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김 회장이 박 전 사장의 비리를 문제 삼아 박 전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다시 대표직을 맡으면서 내부 경영권 분쟁으로 번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김 회장이 25년 만에 현직으로 복귀하면서 박 전 대표를 출판 기획 외의 업무에서 배제한 것으로 알려져서다.
 
박 전 사장은 대표직 사퇴 후 1년 2개월이 지난 2015년 7월 김 회장을 총 350억 원 규모의 배임과 횡령·사기 혐의로 고소해 포문을 열었다. 자신의 경영권을 포기하고 주식과 출판사 건물 지분 등 자산 285억 원가량을 넘기는 조건으로 보상금 45억 원을 주겠다는 약속을 사측이 어겼다고 주장했다.
 
또 김 회장이 회삿돈 30여억 원을 그의 형에게 무담보로 빌려주고, ‘종교 수행’에 전념하며 회사 업무를 하지 않으면서도 월급 등으로 30여억 원을 받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당시 박 전 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영사에 들어간 직후인 1984년부터 2003년까지 20년 동안 부모님도 버리고 법당에서 숙식을 하며 출퇴근했다”며 “그 20년 동안 월급, 보너스, 주식배당금 전액 등 내가 번 모든 돈 총 28억 원을 김강유 교주에게 바쳤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종교 수행과 관련해 김 회장은 동국대 불교학과 출신으로 백성욱 전 동국대 총장으로부터 금강경 독송 수행법을 배운 제자로 알려져 있다. 1983년 회사 초창기에는 회사 건물 안쪽, 출입구 옆에 법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박 전 사장 역시 백성욱 전 동국대 총장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수사 결과 ‘혐의 없음’
되레 역공 당해

 
그러나 2015년 11월 검찰은 박 전 사장이 고발한 내용의 증거를 찾지 못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박 전 사장과 전직 김영사 직원 2명을 고소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고, 박 전 사장과 김 대표의 대질 심문까지 진행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을 내린 것이다. 당시 박 전 사장 주장보다 김 대표 주장이 자료도 더 많고 설득력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후 김 회장은 반격에 나섰다. 이듬해인 2016년 6월 12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박 전 사장을 맞고소한 것이다.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지난달 28일 7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박 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튿날 발부했다.
 
박 전 사장은 2005년~2014년 3월 김영사가 발간한 책을 집필한 작가들에게 인세를 지급한 것처럼 회계자료를 허위로 작성하는 등의 방식으로 회삿돈을 횡령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또 박 전 사장이 개인적으로 설립한 자회사에 도서 유통 업무를 몰아주거나 영업권을 무상으로 넘겨준 혐의도 받는다.
 
‘출판 여제’로 불리며 출판계의 한 획을 그은 박 전 사장은 30여 년 전 김 회장에 의해 발탁돼승승장구했지만 김 회장과의 쌍방 고소전에서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다. 검찰은 박 전 사장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인 뒤 이달 중 재판에 넘길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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