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층의 분열만 야기한 홍준표 식 ‘대란대치(大亂大治)’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대선 후보 시절 외쳤던 대란대치(大亂大治 : 크게 어지럽혀야 크게 다스릴 수 있다)는 그의 ‘자충수’로 인해 보수층의 대란(大亂)으로 끝나고 말았다. 홍 전 지사는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역대 최대 표 차이로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보수 진영을 크게 어지럽혀 놓았다는 지적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대선 정국에서 홍 전 지사는 친박계를 향해 양박(양아치 친박)이라고 비아냥대는가 하면, 박 전 대통령을 ‘향단이’에 비교했다. 특히 그는 대선 직전 대선 후보의 특권인 당헌 104조 ‘당무 우선권’을 이용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의 복당을 지시했다. 이는 어떻게든 문재인 정부만은 막기 위해 딱히 내키지 않음에도 홍 전 지사를 지지했던 보수층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결정적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보수의 심장’ TK에서조차 지지율 50%를 넘기지 못한 사실은 아직도 보수 진영의 충격으로 남아 있다. 홍준표 전 지사의 대선 참패 원인을 진단해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오락가락’ 하던 洪, 태극기 ‘유탄’ 맞자 곧바로 ‘유턴’
- 洪의 진짜 목표는 ‘대권’ 아닌 ‘당권’이었다 의혹 증폭


 지난 2월 16일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내가 DJ와 노무현 10년을 견뎠다. 그런데 박근혜 4년을 견디면서 DJ, 노무현 10년보다 더욱 힘들게 이겨냈다”며 “일부 양아치 친박과 청와대 민정이 주도해 내 사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유한국당 당내 경선 직전인 지난 3월 29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춘향이인 줄 알고 뽑았는데 향단이여서 국민들이 분노한 것”이라며 “탄핵당해도 싸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홍 전 지사는 그의 과거 발언이 보수 지지층의 분노를 사자 갑작스러운 ‘유턴’에 들어가며 돌연 ‘친박 끌어안기’를 시작했다.

洪의 ‘오락가락’…
‘양아치→ 우파의 소신’, ‘향단이→ 여론재판’


홍 전 지사는 4월 3일 ‘강성 친박’ 김진태 의원에게 강원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김 의원은 소신이 뚜렷하고 우파의 소신을 가졌던 분” 이라며 “지난 주말에 모여 하나가 되기로 했다. 지도부로 모시고 강원도 선대위원장을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시 또 며칠이 지난 4월 5일에는 “헌재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선고는 민주주의가 아닌 민중주의이자 여론재판”이라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을 보니 저런 사람들이 재판관을 맡아서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겠냐”고 박 전 대통령을 적극 옹호했다.

그의 의도대로 보수층의 비난 여론은 줄어들었고 보수층은 서서히 결집하기 시작했다. 비록 홍 전 지사가 탐탁지 않음에도 문재인 정부의 집권만은 막기 위함이 컸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3월 4주 차(21~23일)부터 4월 3주 차(18~20일)까지 총 5회 실시한 ‘주간 정기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홍 후보는 TK에서 3월 5주 차(28~30일) 14% 수준에 머물러 있다가 4월 3주차 26%로 지지율이 급등했다.

심지어 TBC가 지난달 23일과 24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홍 후보(31.8%)가 대선 후보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TK지역에서 문재인 후보(22.8%)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골든 크로스’를 이루어 냈다.

만약 이 흐름이 지속됐다면 승리까지는 장담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TK에서조차 지지율 50%를 넘기지 못하며 보수층을 완전히 분열시키는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러나 선거 직전 홍 전 지사의 최악의 ‘자충수’가 터지고 말았다. 그는 투표 직전 세 결집이라는 명목 하에 박 전 대통령 탈당을 주도했던 바른정당 탈당 의원들에 대한 일괄 복당을 당 지도부에 요청했다. 심지어 이들 의원들 중엔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국회 탄핵 소추안 의결 과정을 진두지휘했던 권성동 의원도 포함돼 있었다.

화들짝 놀란 정우택 원내대표와 친박계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의원 등이 복당 불가 입장을 밝히자 홍 전 지사는 대선 후보의 특권인 당헌 104조 ‘당무 우선권’을 통해 이들의 복당을 반강제적으로 관철시키려 했다.

또다시 집 잃은 보수층,
투표 당일 ‘기권’


이를 지켜보던 ‘태극기집회’ 세력과 ‘보수의 심장’ TK는 말 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보수 정당을 쪼개고 떠났다는 ‘배신자’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 속한 정당의 후보를 지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또다시 집을 잃고만 보수 지지층은 투표 당일 ‘기권’을 선택했고, 홍 전 지사는 역대 최대 표차로 패배한 대선 후보라는 오명을 안고 말았다.

자유한국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대선을 치렀다. 조만간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 선출을 우선적으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치권은 홍 전 지사가 바른정당 탈당파 품기에 혈안이 됐던 이유는 바로 홍 전 지사의 진짜 목표가 ‘당권’이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실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치러진 선거인 만큼 보수가 결집을 한다 해도 대세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비박계인 홍 전 지사가 탈당파를 수용해 자신의 친위대를 만든 후 친박계에 맞서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 전 지사의 탈당파 복당 지시는 대선 패배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보수의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향후 당권 장악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만약 진보 정당에 패배했더라도 보수층의 집결을 일궈냈다면 보수 정당은 차기를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고 홍 전 지사에게도 당 대표에 출마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을 것이다. 지방선거에서도 확실한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 정부·여당에 맞설 힘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 정당 대선 후보 한 사람의 최악의 ‘자충수’로 인해 보수층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지고 말았다는 비난이 끊이질 않고 있다. 홍 전 지사 입장에서도 그의 자충수가 두고두고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정치권은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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