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현대중공업과 이 회사로부터 분할된 신설 법인 3곳 등 4개 회사의 주식이 지난 10일 유가증권시장에 재상장됐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1월 분사 계획을 발표한 뒤 조선·비조선 사업 부문을 각각 6개의 독립 법인으로 떼어내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증권가에서는 부채비율 감소 등에서 성공적인 재상장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주가 흐름과 내부 화합이 지지부진하다는 면에서는 ‘반쪽짜리’ 성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에 상장된 회사는 현대중공업(조선·해양플랜트·엔진), 현대일렉트릭에너지시스템(전기·전자), 현대건설기계(건설장비), 현대로보틱스(로봇) 등 4곳이다. 인적분할로 이뤄진 분사인 만큼 기존 현대중공업 주주들은 각 회사들에 대해 동일 비율의 지분을 갖는다. 자회사 2곳은 현대글로벌서비스(선박 사후관리 서비스 부문) 현대중공업그린에너지(그린에너지 사업 부문)다.
 
증권가에서는 추후 4개사의 기업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지난 8일 “현대중공업 분할법인 4개사의 재상장 이후 합산 시가총액은 기존 현대중공업 시가총액 대비 31.7% 증가한 16조5200억 원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특히 존속법인인 현대중공업의 부채비율이 100% 이하로 감소해 재무안전성이 높아진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다.
 
다만 재상장 후 회사 주식가치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재상장 첫날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현대중공업은 인적분할로 거래가 정지되기 전인 지난 3월 29일 종가(16만5000원)보다 2만3500원(14.97%) 상승한 18만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후 이틀 연속 하락 마감하면서 예상과 다른 흐름을 보였다. 현대일렉트릭과 현대로보틱스는 모두 상장 첫날은 물론 3거래일 연속 하락 마감했다. 현대건설기계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했다.
 
다만 증권가에선 앞으로 이들 3곳의 기업가치가 상승해 주가가 반등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재상장 이후 시총이 31.7%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4개사에 대한 매수 의견을 제시했다.
 
재상장 이후 현대중공업의 지주사 전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지주사는 현대로보틱스가 맡는다.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오일뱅크와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자회사로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 측은 이번 분할이 회사를 살리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동안 재계에선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향후 대주주(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일가가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의 지분을 추가로 취득해 그룹 장악력을 더욱 끌어올린 뒤,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에게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것이란 추측이 나오면서다.
 
특히 당시 정권 교체가 예상되던 시점에서 이른바 ‘경제민주화법’의 통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만큼 이에 대응한 수순이었다는 견해도 있었다.
 
현대중공업 측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이번 인적분할은 대주주의 그룹 지배력 확보와 전혀 관련이 없으며, 대주주 개인의 지분 취득 계획은 회사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사측이 회사 분할이 경영권 승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 구체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가 어렵다는 게 이유라면 대주주의 사재 출연 등 다른 방법도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재계가 주목하는 건 대주주의 그룹 지배력 확보보다는 ‘정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다. 현재 정 전무의 지분 보유량은 미미한 편이다. 앞으로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이뤄질 정 전무의 지분 변화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더구나 분할 과정에서 노동조합 측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져 내부 화합이 아직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해 5월부터 최근까지 1년 동안 80여 차례의 임금·단체협상을 진행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상태다.
 
노조는 지난해 5월 대규모 희망퇴직 조치에 반발한데 이어 같은 해 7월 추가 희망퇴직이 이뤄지자 총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이후에는 회사 분할을 놓고 거세게 충돌하기도 했다.
 
임단협뿐 아니라 협상 주체 기준에 대한 입장차까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노조는 최근 ‘분사 회사 조합원도 모두 현대중 조합원’이라고 단체협약을 자체 개정했으며, 이를 근거로 현대중공업 노조가 각 회사와 일괄 임단협 교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신설 법인으로 분사 후 새롭게 상장까지 이뤄진 만큼 노조와의 갈등을 하루빨리 해결해야 회사 이미지 차원에서도 이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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