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새 정부의 검찰 사정이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청와대 신임 참모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정윤회 문건 사건 등에 대한 사실상 재조사를 지시했다. 조국 민정수석도 15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발 빠르게 움직인 건 경찰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재수사에 대한 반응 대신 언론에서 제기되는 각종 의혹에 대해 부인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한 언론을 통해 국정농단 의혹 수사 책임자였던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최순실 게이트’ 수사 발표 나흘 뒤 만찬을 갖고 격려금을 주고받은 것이 알려졌다. 결국 문 대통령은 진상을 파악하라며 법무부와 검찰청에 감찰을 지시했다.

전 정권서 좌천 당한 윤석렬 검사 ‘서울중앙지검장’ 임명
靑…공직기강 확립·우병우 사단 숙청, 檢…항명 가능성↓


문재인 대통령의 정윤회 문건 재조사,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주고받은 격려금 이른바 ‘돈 봉투 사건’ 감찰 지시로 인해 검찰은 초상집 분위기다. 검찰 내부에서는 “올 것이 왔다” “검찰 사정이 시작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 측은 문건 재조사에 대해 “우리 쪽에서 지시가 내려간 바 없다”며 수사 지휘를 부인했다. ‘돈 봉투 사건’ 감찰에 대해서는 공직기강과 청탁금지법 등 법률 위반을 감찰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관계자들의 대 검찰 행보는 이미 검찰개혁이 시작됐다고 보기에 충분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 나선 경찰


정윤회 문건 사건 관련 지난달 14일 최 경위의 형인 최낙기씨는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민원실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탄원 취지는 2014년 12월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 경위가 어떻게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를 밝혀 달라는 내용이다.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에서 근무하던 최 경위는 정윤회 문건 유출에 관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건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으로 작성해 당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보고한 감찰보고서였다.

문건에는 최순실 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 씨와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문고리 권력 3인방’ 등이 비선실세로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담겼다.

문건 내용 일부가 2014년 11월 세상에 알려지면서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초점은 문건 유출 경위에 맞춰 진행됐다. 최 경위는 문건 유출자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다가 같은 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경위의 유서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회유가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민정수석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사건을 배당받은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수사 방향이 정해지는 대로 최 경위 유족들을 불러 조사한 뒤 탄원서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경찰이 정윤회 문건 사건 재수사 검토에 나선 가운데 검찰은 새롭게 제기되는 각종 의혹을 부인하고 나섰다.

검찰은 ‘정윤회 문건’에 최순실 씨가 권력 실세로서 인사전횡을 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의 언론 인터뷰에 대해 18일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검찰은 “당시 문건유출사건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청와대로부터 ‘정윤회 동향 문건’과 내용이 비슷한 문건 3건을 확보했다”며 “최순실에 대해서는 최종본과 다른 기재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문건 8가지 버전 있다?
검찰은 의혹 부인


또 “우리가 입수한 모든 버전의 ‘정윤회 문건’에서 최순실에 관한 기재는 ‘정윤회는 한때 부인 최순실과의 관계 악화로 별거하였지만 최근 제3자의 시선을 의식, 동일 가옥에 거주하면서 각방을 사용하고 있다고 함’이라는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이어 “검찰이 확보한 모든 문건들은 빠짐없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고, 박관천 씨의 변호인들이 증거기록 일체를 복사하여 갔다”고 강조했다.

박 전 청와대 행정관은 17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은 정윤회 문건이 2쪽 분량에 간단한 내용밖에 없었다고 하지만 문건에는 8가지 버전이 있었다”며 “검찰도 최초 문건을 포함해 8가지 버전을 다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검찰과 수사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 중인 경찰의 입장에서는 재수사를 통해 검찰의 약점을 찾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그런 만큼 박 전 행정관의 말한 8가지 버전의 문건 존재 유무도 문건 유출 과정과 함께 재수사 쟁점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우병우 사단 안태근
구속 못 시킨 이영렬


‘돈 봉투 사건’이 논란이 되자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은 18일 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두 사람의 사표 수리 여부와 관련해 “감찰 대상 공무원이 감찰 사실을 이유로 사표를 낼 수 없음은 이미 대한민국 사회가 합의하고 있는 보편적 상식이 아니겠냐”며 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해줄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이 지검장을 비롯한 수사팀 관계자 7명 등은 안 검찰국장 등 법무부 검찰국 간부 3명과 서울 서초동 인근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당시 안 검찰국장은 수사팀장들에게 70만~100만 원씩의 격려금을 지급했고 이 지검장은 법무부 과장 2명에게 100만 원의 격려금을 지급했다.

문 대통령은 돈 봉투 만찬 사건과 관련해 여러가지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기 때문에 명확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이 검찰 수뇌부에 대한 감찰을 공개적으로 지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이른바 검찰 내 ‘빅4’ 중에 두 자리인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국장에 대한 동시감찰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이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으로 거론돼 온 인물이었다. 이 지검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2년간 근무했던 경력이 있다.

또 지난해부터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을 맡아 이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수사 초반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하면서 수사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구속시키지 못했다.

안 국장은 검찰 내에서 ‘우병우 사단’이라 불렸다. 우 전 수석의 서울대 법대 후배이며 우 전 수석보다 1기수 늦은 20기로 사법연수원을 마쳤다. 안 국장은 지난해 7월 이후 우 전 수석과 1000여 차례 이상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며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해 11월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부산 엘시티 금품비리 사건’과 관련한 정의당 노회찬 의원 질의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검찰 내부 뒤숭숭
검찰 개혁 시작됐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돈 봉투 만찬’ 감찰을 위해 22명의 인력을 투입한 대규모 합동감찰반을 구성키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감찰 계획에 따르면 법무부 감찰관을 총괄팀장으로 하되 엄정하고 신속한 감찰 실시를 위해 법무부 감찰관실과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역할을 분담해 합동 감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우선 법무부 감찰팀은 총 10명 규모로 총괄팀장인 감찰관이 팀장을 겸임하며 감찰담당관이 부팀장을 맡는다. 팀원으로 검사 2명, 검찰사무관 2명, 검찰수사관 4명이 배속된다. 12명 규모의 대검 감찰팀은 감찰본부장을 팀장으로 하며 감찰1과장이 부팀장을 맡는다. 검사 3명, 서기관 1명, 사무관 1명, 검찰수사관 5명이 투입된다.

합동감찰반의 감찰 사항은 법무부 검찰국장 격려금의 출처와 제공 이유, 서울중앙지검장 격려금의 출처와 제공 이유, 각 격려금의 지출 과정이 적법하게 처리된 것인지 여부, 청탁금지법 등 관련 법령 위배 여부, 법무·검찰의 특수활동비 사용체계 점검 등이다.

법무부는 이날 이 지검장 등 만찬 참석자 전원에게 당시 상황을 담은 경위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는 법무부와 검찰이 대규모 감찰반을 구성해 조사에 착수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징계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결국 19일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은 사표 수리 대신 각각 부산고검 차장검사,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 사실 이 지검장은 차기검찰 총장으로 유력했던 인사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감찰 지시를 선택했다. 그만큼 검찰개혁의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다.

이 지검장과 안 국장의 좌천 발표와 함께 윤석렬 대전고검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의 최대 현안인 최순실 게이트 추가 수사 및 관련 사건 공소 유지를 원활하게 수행할 적임자를 승진 인사했다”고 승진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고검장급이었던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격하시켰다.

신임 윤 지검장은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수사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윤 지검장은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기소 의견을 검찰 수뇌부에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 및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강행했다가 정직 1개월 징계와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하지만 지난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합류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을 이끌어 내는 등 활약을 펼쳤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꾸준히 검찰 개혁을 주장해 왔다.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자율권을 부여했던 검찰에 역풍을 맞은 일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검찰 수뇌부에 대한 감찰 소식으로 검찰 내부가 뒤숭숭한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지만 문 대통령은 더욱더 세게 검찰 개혁의 고삐를 틀어쥘 것으로 보인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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