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부자 중국, 5년간 62개국에 5000억 달러 투입 가능
미국판 세계화의 대안… ‘新 실크로드’ 전략

우리나라가 대통령 선거에 이은 신정부 구성을 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사이 지난 14, 15 양일 간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자국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국제행사가 열렸다. 베이징에서 처음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협력 정상 포럼’이 그것이다. 1500여 명이 참가한 이번 포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29개국 정상을 포함해 130여 국가의 관리, 학자, 기업인, 언론인, 70여 개 국제기구 대표 등 850여 명의 해외인사가 참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끄는 대표단이 참석했다. 이들 참석자는 인프라, 산업투자, 경제·무역, 에너지·자원, 금융, 인문교류, 생태환경, 해상협력 등을 협의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신(新) 실크로드 전략이다. 영어 이름은 ‘Belt and Road Initiative(BRI)’다. ‘일대일로’에서 ‘일대(Belt)’는 중국에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뻗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이고, ‘일로(Road)’는 동남아를 경유해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일대일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육로와 해로로 연결해 거대 경제권을 형성하겠다는 중국의 전략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 처음 들고 나왔다.
중국은 세계에서 여유 자금을 보유한 몇 안 되는 부자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언제든 금고 문을 열어 돈을 꺼내 쓸 준비가 돼 있다. 중국의 국익 가운데 BRI는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중국은 BRI를 위한 인프라 건설에 수천 억 달러를 쓴다는 입장이며, 5개 대륙 100여 국가는 중국과의 경제협력 사업 참여를 이미 문서상으로 공식화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사업을 우선시하느라 해외사업 기금을 감액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BRI는 세계화 옹호자라는 그의 이미지를 굳히는 역할을 한다.
마침내 대대적으로 개최되는 이번 포럼의 목적은 1997년 덩샤오핑이 사망한 이래 그가 가장 강력한 지도자가 된 중국에서 시진핑의 이미지를 드높이고 중국의 부상(浮上)에 따른 국제사회의 우려를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투자조사회사 TS롬바드의 중국연구소장 트레이 맥아버는 “BRI가 시진핑의 가장 오래가는 유산이 될 것 같다”면서 “그것은 특히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의 교역과 경제 패턴들을 새롭게 만들 잠재력을 지녔다”고 블룸버그에 밝혔다.
물론 BRI에 리스크도 있다. BRI는 아직은 중국이 해외에서 그간 벌여왔던 온갖 종류의 프로젝트를 망라하는 마케팅 구호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세계의 힘 있는 지도자들, 즉 트럼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같은 주요국 정상들은 BRI와 일부러 거리들 두고 있다. 이번 베이징 포럼에 주요 7개국(G7) 정상은 이탈리아 정상만 빼고 모조리 불참했다. 따라서 중국이 BRI를 성공시키려면 일련의 미해결 문제들에 대해 시진핑이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중국이 BRI와 관련한 불확실성을 줄이는 핵심은, 증강된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국이 영토 분쟁에서 갈수록 공세적인 가운데 인도, 러시아, 미국 같은 전략적인 경쟁국들의 우려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중국이 5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지역의 도시 카스와 파키스탄 남서부 과다르항(港)을 철도·도로·송유관 등으로 연결하는 ‘중국-파키스탄 경제 회랑(回廊)’ 구상, 중국의 첫 해외 군사기지가 들어설 아프리카 지부티에서 중국이 2015년 지부티 항구 사용권을 5억9000만 달러(약 7000억 원)에 사들여 지금 한창 다목적 항구로 확장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는 일, 중국의 중앙아시아 파이프라인 건설 등은 모두 기존 강대국들에 도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중국 국장을 지냈고 지금은 베이징 소재 국제정책연구소인 카네기-칭화센터의 폴 해늘 소장은 “중국은 자국이 BRI를 인식하는 방식이 반드시 남들이 인식하는 같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영향권을 구축하는 중국의 노력이라는 지정학적 렌즈를 통하지 않으면서 BRI를 관찰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시진핑이 2013년 9월 카자흐스탄에서 BRI를 처음 제기했을 때 그는 유라시아 대륙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그때 이래 BRI는 거듭 명칭이 바뀌었고 범위가 확대돼 전 세계를 포함하게 됐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고대 교역로를 육상과 해상으로 재건하자는 것이 주된 목표로 제시됐다. BRI의 핵심 추동력 가운데 하나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중국은 개발이 뒤처진 내륙지역의 성장을 촉진하고 과잉 산업설비를 위해 더 많은 시장을 개척하기를 원한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의 25%에 해당하는 3조 달러의 넉넉한 외환을 보유한 중국은 재정 압박에 시달리는 선진국들과 달리 지갑이 두둑하다.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면서 EU의 생존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철수하면서 글로벌 경제 질서 구축을 향한 미국의 의지가 꺾이면서 지난해 BRI는 힘을 얻었다. EU와 미국이 휘청거리는 틈을 타 시진핑은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 세계 자유무역 수호의 챔피언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다.
미국과 유럽은 본의 아니게 시진핑을 위해 멍석을 깔아준 셈이 되었다. 호주 시드니에 소재한 민간 싱크탱크인 ‘로위 국제정책연구소’의 피터 카이 연구위원은 “중국은 미국판(版) 세계화에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경우 그것은 콘크리트로 포장된 세계화, 즉 철도, 고속도로, 파이프라인, 항만”이라고 풀이했다. 이런 중국판 세계화는 동지들을 규합해 나가고 있다.
올해 들어 유럽 5개국, 즉 덴마크·핀란드·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가 BRI에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013년 이래 BRI 참여 국가들에 5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왔다. 크레디스위스 그룹의 최신 전망에 따르면 중국은 앞으로 5년에 걸쳐 62개 국가에 5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부을 수 있다. BRI라는 이름 아래 중국은 엄청난 달러를 풀어 바야흐로 ‘세계화 2.0’을 선도할 태세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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