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새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가 강경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한 데 이어 장하성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을지로위원회 성장의 주역인 우원식 의원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정경유착과 재벌 특혜,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 등 ‘적폐 청산’을 내세운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단호하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재벌 가운데서도 4대 재벌의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새 정부의 강도 높은 재벌 개혁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지난 수십년간 대선 때마다 많은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러나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재벌 개혁, 과연 이번에는 가능할까.

일요서울은 재벌·적폐 청산을 시리즈로 기획했다. 이번 호는 재벌세습 문제를 들여다봤다.

  대통령 “지주회사제도 기업승계에 악용되지 않도록 단호히 대처”
  변칙 대물림 철퇴 목소리 높아…삼성 · 현대 · LG · 두산 ‘전전긍긍’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전인 지난 1월 1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정책공간 국민성장’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포럼에 참석해 ‘재벌적폐 청산, 진정한 시장경제로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재벌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그 중 하나가 재벌 지배구조였다. 그는 “지주회사제도가 재벌 3세의 기업승계에 악용되지 않도록 자회사 지분 의무 소유 비율을 높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재벌 오너일가의 세습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한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기업들의 가장 큰 폐단이자 없어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는 것이 세습이다.

현재 국내 주요 재벌 대다수가 2, 3세 경영이고, 일부는 4세경영을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은 이병철-이건희-이재용(장남)·이부진(장녀)를 중심으로 신세계 이명희-정용진 등 직계와 방계를 불문하고 40대 3세경영이 본격화되고 있다.

현대그룹도 현대기아차 정주영-정몽구-정의선, 현대백화점 정몽근-정지선, 정교선 등 수십계 업종에 걸쳐 직계, 방계의 손주 손녀(사위)의 3세경영이 확산되고 있다.

두산그룹은 박승직-박용곤-박용만에서 박정원 두산건설회장 등 ‘4세 세습’으로 이동했고, LG그룹도 구인회-구자경-구본무를 거쳐 30대 구광모로 4세 경영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현상은 100대 그룹으로 내려가면, 거의 대부분 업종을 망라하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대부호(재벌)의 출신 성분을 비교한 결과, 일본의 대부호들은 자수성가형이 68%인 반면에, 한국의 대부호 혹은 대기업주들은 재벌 2~3세가 무려 78%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세습, 역기능 사례 부각, 오너 입장에선 ‘씁쓸’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유재산의 원리, 사적 소유의 원칙에 따라 기업주 가족이 대대로 가업을 세습하거나 승계하는 것은 당연히 보장된다. 창업주의 기업가 정신에 따라 세습경영을 배제하는 경우도 있지만, 특히 혈통과 가계를 중시하는 한국 등 아시아권에서는 세습경영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따로 있다.

최종표 건국대 상경대 교수가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세습 재벌은 막강한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개별시장은 물론 국가경제까지 지배하면서 세를 더 키워 나가고 있다. 이것은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현상이다. 경제적 힘이 소수의 개인에게 집중되면 그 힘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용되고 공정한 시장절서를 무너뜨린다. 이 힘은 시장경제 자체를 왜곡한다. 

또 창업 총수들은 서민들의 고단함을 알고 성장했다. 갑자기 대기업이 된 것이 아니라 바닥부터 올라갔다. 잘못된 생각으로 기업이 한순간 사라지는 많은 순간을 보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2세들은 그걸 모른다. 자신은 태어나고 보니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었다. 차라리 그들을 최소한의 돈만 주고 해외로 내보내 성장시켰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귀공자 엘리트 코스로 컸다.

창업 총수들은 기업가 정신이 넘치고 도전정신과 더불어 새로운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국가경제는 역동적이었다. 반면 세습 총수들은 모험을 꺼리고 쉽게 돈 버는 일만 찾고 투자 대신 돈을 쌓아두기만 한다.

실제로 10대 재벌이 700조 원이 넘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고도 투자는 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국가경제는 활기를 잃고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외국계기업 후계 승계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앞서 일부 경제단체들이 재벌세습에 제동을 걸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몇몇 기업은 전문 경영인을 내세우고 있지만 전체적인 기업 지배 구조는 역시 뒤에 오너가 지켜보며 관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적폐 청산의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경영권을 침해하고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기업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대주주 일가를 위한 편법 경영을 방지한다는 방향성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강력한 리더십과 장기적 투자가 가능한 오너체제 기업의 장점은 외면한 재벌 옥죄기는 기업활동과 고용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해외 기업들은 CEO 공백을 대비해 경영권 승계 절차를 정해 놓는 이른바 ‘승계계획’을 최고의 미래 전략 중 하나로 꼽는다.

그 사례를 살펴보면 맥도날드는 2004년 미리 준비된 후계 계획으로 회장 공백 후 3시간 만에 후임자 선출을 했고 새로 선임된 CEO가 7개월 뒤 물러나도 큰 혼란 없이 후계자를 선정했다.

GE 또한 후보군 24명을 뽑아 6년 간 지켜본 뒤 결정하는 치밀한 과정을 통해 CEO 승계와 조직 운영에 대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좋은 승계 사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일례로 빌게이츠의 후계자에 대해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것도 국내 재벌기업 후계자 선정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이 더 크고 위대한 기업을 육성하려면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의 전문경영인들이 교류하고 이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능력 위주의 공개 경쟁을 통해 기업 CEO가 될 수 있게 해야함은 물론, 도덕적 검증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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