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단행된 인사에 대한 평가는 ‘파격’으로 압축된다. 기존 관행을 깨는 인사 기조를 선보였다는 평이 나왔다. ‘흙수저’와 지방대 출신 인사를 중용해 ‘신분’에 제약을 두지 않았으며, 측근을 최소화한 고른 인재 등용으로 ‘탕평 인사’를 단행했다.
 
여기에 속도감 있는 인선으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 같은 인사에 ‘친문 패권’을 비판했던 국민의당에서도 패권 발언은 자취를 감췄다. 다만 최근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 혼선이나 ‘5대 비리 원천 배제’ 위배 논란 등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따라 ‘파격 인사’인지 ‘반짝 인사’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나오는 모습이다.
 
나이·기수 문화 파괴…‘흙수저’, 지방대 출신도 구분 없이 등용
친문·비문을 두루 아우르는 ‘탕평 인사’…여성 인재·시스템 인사도
당초 ‘5대 비리 원천 배제’ 방침…출발부터 ‘삐그덕’ 원칙 훼손 비판
‘개혁 드라이브-안정·통합’ 인사 기조 “팀워크·균형감 있게 나아가야”

 
문재인 대통령은 인사 등용에 나이와 기수 문화를 파괴했다. 비(非)서울 소재 대학 출신을 등용함으로써 기회의 사다리를 놓고, 여성 인사에 공을 들이는 모습도 보였다. 친문·비문을 두루 아우르는 인사를 단행하는 한편, ‘시스템 인사’를 했다는 호평도 나왔다.
 
비서실장이 ‘막내’
잇따른 파격 법조 인사

 
문 대통령은 청와대 핵심 참모인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종석(51) 전 의원을 기용했다. 그는 개혁 성향의 386 출신 50대 젊은 인사로 꼽힌다. 역대 비서실장과 비교해도 젊을뿐더러 직급상 아래인 수석비서관들은 모두 본인보다 나이가 많다.
 
비서실장이 나이로는 ‘막내’인 셈이다. 조국(52) 민정수석이 그 다음이고 조현옥(61·여) 인사수석이 가장 연배가 높다. 임 실장의 기용은 세대교체의 상징이며, 과거 막강했던 비서실장의 권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방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비검찰 출신 등용과 기수 문화를 배제하는 법조 인사 단행도 파격이라는 말이 나왔다. 전임 정권에서 위세를 떨쳤던 민정수석 자리에 비검찰 출신의 진보적 법학자 조국 서울대 교수를 임명했으며,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과 공직기관비서관도 비검찰 출신인 백원우 전 의원과 감사원 소속 김종호 공공기관감사국장을 각각 자리에 앉혔다. 이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이 대부분 검찰로 채워진 것과 대비를 이루는 조치로, 검찰 개혁에 대한 강력한 신호탄으로 읽혔다.
 
또 이른바 ‘돈 봉투 만찬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 내부가 동요할 조짐을 보이자 ‘강골’ 윤석열 검사를 전격 기용하면서 충격과 동시에 빠르게 수습했다. 전임보다 다섯 기수 아래인 윤 검사를 중앙지검장에 앉힌 것은 선후배 기수 문화가 오랜 관행으로 남아 있는 검찰에 대한 파격 조치였다.
 
문 대통령은 ‘흙수저’와 지방대 출신 인재들도 기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김동연 아주대총장은 대표적인 ‘흙수저’ 인사로 꼽힌다.

10대 시절 소년가장이 된 김 후보자는 청계천 판잣집에 살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등학교 졸업 후 은행에 취직한 뒤 주경야독으로 25살에 행정고시와 입법고시를 동시에 합격하는 ‘고졸 신화’를 썼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본인 연봉의 절반인 9000여만 원을 대학과 복지재단 등에 기부한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리천장’을 깬 여성 인재 등용도 돋보였다는 평가다. 문 대통령은 여성이자 비(非) 외무고시 출신인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를 초대 외교사령탑으로 지명했다. 강 후보자가 추후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외교부 역사상 첫 비외무고시 여성 외교부 장관이 탄생하게 된다.

강 후보자가 통상 외교부 주류였던 서울대 외교학과나 외무고시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유리천장을 깬 인사라는 평이 나왔다. 강 후보자 외에도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을 임명하며 여성 등용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친문 패권’에 측근 최소화
안철수 멘토까지 ‘포용’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른바 ‘친문 패권’ 비판을 줄곧 받아온 만큼 측근을 최소화한 인사 결정에 호평이 이어졌다.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3철(전해철·양정철·이호철), 친문 강경파 정청래 전 의원과 최재성 전 의원 등이 2선 후퇴를 밝혔다.

특히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청와대 입성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있었으나 예상과 달리 공직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밝히면서 한국을 떠났다.
 
또 청와대 요직에 친문·비문 구분 없는 탕평 인사를 선보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박원순·안희정·안철수 사람들까지 포용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된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2년 대선 시절 ‘안철수 멘토’로 할약했고, 임종석 비서실장과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은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으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인물이다. 청와대 초대 대변인에 임명된 박수현 전 의원은 안희정 충남지사의 측근으로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안 지사 캠프에서 활동했다.
 
이 같은 ‘문재인표 파격 인사 기조’에 민주당 비문 진영에서도 호평이 잇따르는 분위기다. 비문 중진 의원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두루두루 사람을 써 기존 우려를 불식했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요즘 당은 다 친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친문 패권’을 줄곧 비판했던 국민의당에서도 칭찬의 목소리가 나왔다. 동교동계 인사인 이훈평 전 의원은 언론에 “친문 패권이 싫어서 민주당을 탈당했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하는 인사 등을 보면 그 패권이 사라졌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청와대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총무비서관 자리에 측근이 아닌 경제 관료를 앉힌 것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를 상징하는 조치라는 평이 나온다. 총무비서관은 본래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임명하는 게 관례였다. 총무비서관은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는 청와대의 ‘막후실세’로 알려지기도 한다.
 
특수활동비 등 영수증이 필요 없는 예산도 다루는 만큼 오랫동안 자신을 보좌해온 믿을 수 있는 측근을 이 자리에 임명하는 것이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각각 최도술·김백준·이재만 등 모두 최측근을 총무비서관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각종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거나 검찰 조사를 받고 법정에 서는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문 대통령이 이러한 자리에 본인과 인연이 없는 경제 관료 출신을 임명한 것은 청와대 운영을 시스템에 따라 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임명된 이정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예산심의관은 지방대(창원대) 출신으로 기재부 7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국장급 직위까지 올랐다.
 
‘파격’과 ‘안정’
두 마리 토끼 잡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기조는 파격과 안정,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핵심 참모 자리인 비서실장에 개혁적 성향의 임종석 실장을, 내각을 총괄하는 국무총리 자리엔 온화하고 합리적인 인사로 꼽히는 이낙연 전 전남지사를 지명했다.
 
검찰과 법조 인사에선 조국 민정수석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임명하면서 개혁의 신호를, ‘돈 봉투’ 사건으로 공석이 된 법무부 차관과 대검 차장을 신속히 임명함으로써 안정을 꾀했다.
 
‘재벌 저격수 투 톱’으로 불리던 김상조·장하성 교수를 각각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지명하면서 재벌 개혁의 신호탄을 내비치는 한편, 경제부처 수장엔 정통 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내정하면서 안정감을 줬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문재인 정부 인사에 대해 “지금까지의 인사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며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일반화되고 쌓여 가는 상황에서 개혁이 중요한 시점인데, 기존 조직의 안정과 개혁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첫 인사부터 ‘난항’
정제 안 된 메시지 혼선도

 
하지만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내각 첫 인사청문회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는 배우자의 위장 전입 문제를 인정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위장 전입 등 5대 비리 원천 배제를 내세운 바 있다.

때문에 이 같은 원칙이 처음부터 무너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청와대가 이 후보자 부인의 위장 전입을 몰랐다고 밝히면서 인사 검증에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위장 전입 문제가 발견됐다. 청와대는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이면서도 ‘적임자라면 등용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 후보자 경우도 본인이 국민 앞에 공개 사과를 했고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있어 낙마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해진 원칙을 깼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어 향후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등용된 일부 인사들이 정무적 감각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 대표는 “파격과 탕평으로 초기 인사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청와대는 고도의 정무적 판단 능력이 필요한 곳인데 지금까지의 여성 인사나 교수 출신 인사를 보면 다소 정무 감각이 부족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 오판으로 이어질 수 있어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에서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가 나와 비판이 일었다.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된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와 홍석현 한반도포럼이사장은 외교안보 이슈에 대해 청와대와 조율되지 않은 ‘사견’을 언급해 구설에 올랐다.

문 특보는 지난 24일 언론 인터뷰에서 “새 정부 출범에 따라 남북관계를 새롭게 이끌어가기 위해 5·24 조치 제약을 인식하고 이를 전향적으로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으나, 해당 발언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일었다.
 
5·24 조치는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정부가 시행한 대북제재 조치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교류 물꼬를 트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청와대는 민간 교류부터 진행한다는 방침이어서 문 특보의 발언은 너무 앞서 간다는 지적이 있었다. 홍석현 특보의 경우 임명 당일 “특보 임명은 처음 듣는 이야기로 당황스럽다”고 언급해 임명권자와 교감이 없었음을 드러낸 듯한 돌발 발언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관리와 조율 필요
“연착륙 준비해야”

 
개혁 드라이브와 안정·통합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새 정부에 대해 전문가들은 팀워크와 균형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인사를 쓰고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지만, 팀워크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며 “주요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국민이 혼란을 느끼게 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파격과 안정이 균형감을 가지고 중심을 잡으면 시너지가 될 수 있지만, 잘못하다간 내부 이견으로 갈등만 불거질 수 있다”며 “파격과 안정 두 가지를 잘 관리·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윤태곤 정치분석실장은 홈페이지에 적은 글에서 “내각, 산하기관, 공기업 순으로 인사가 진행되면 잡음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대통령과 청와대는 무리하게 허니문 기간을 연장시키려 하기보다 이 시기에 자신들이 추진하고 싶은 개혁의 그림을 조금씩 드러내면서 연착륙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