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라는 아늑한 섬의 품안에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보물이 한가득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해안 길을 따라 펼쳐진 바다에는 남국의 바다가 품은 이국적인 정취가 배어 있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은 여행자의 마음을 언제나 설레게 만든다.

슬그머니 다가와 눈 깜빡하면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없을 이 계절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싶어 지도를 펴고 남쪽의 도시들을 짚어보았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섬, 남해가 눈에 들어왔다.
남해라면 어느 곳보다 너그럽고 따뜻하게 여행자를 품어줄 것 같은 그림이 그려졌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차를 몰아 남해로 내려간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푸르러지는 차창 밖 풍경은 짧지 않은 여정에 주어진 뜻밖의 즐거움이다. 두 개의 다리가 남해와 육지를 잇고 있지만 여전히 남해가 품고 있을 섬 특유의 정취를 기대하며 봄빛으로 물들어가는 남녘의 풍경을 가로지른다.
남해의 관문, 남해대교와 충렬사

40년이 넘도록 남해의 관문 역할을 해오고 있는 남해대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노량해협 위로 이어진 대교의 주황빛이 여전히 선명하지만 머지않아 바로 옆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신 남해대교에게 그동안 짊어져 왔던 무게를 옮겨줄 예정이다.
대교 아래로 흐르는 노량해협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이 시작된 곳이며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유배객들이 나룻배를 타고 건넜던 한 맺힌 바다이기도 하다. 바다가 품은 애달픈 이야기가 무색하게 수려한 경관과 햇살은 맑기만 하다.
다리를 지나니 길 양옆으로 하늘을 가릴 만큼 풍성한 벚나무들이 늘어서 남해에 도착했음을 환영해주는 듯하다. 다리 아래의 노량마을로 내려가 본다. 성웅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충렬사가 그곳에 있다. 남해의 충렬사는 다른 지방에 있는 동명의 충렬사에 비해 다소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1599년 아산 현충사로 이전되기 전까지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이곳에 안치돼 있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언덕을 올라가니 나무숲에 안겨 있는 아담한 충렬사가 등장한다.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니 거북선이 떠 있는 노량해협이 굽어보인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오늘의 노량 바다를 있게 한 장군과 이름 모를 선조들을 위한 기도를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에 실어 보낸다.

별이 저문 자리,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

충렬사에서 나와 관음포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장관을 지나 ‘이락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유허’에 닿았다.
관음포는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숨을 거둔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처음 육지에 오른 곳으로 충무공이 숨을 거둔 지 234년이 지난 1832년에 세워진 비각과 유허비가 자리하고 있다.

당시 충무공의 순국지인 관음포에 충무공을 기리는 유적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이순신 장군의 8대손으로 삼도수군통제사에 부임한 이항권이 왕에게 건의해 사당을 짓고 유허비를 세운 것이 지금에 이른다.

당당하게 세워진 충무공 순국 400주년 기념비 뒤로 땅에서부터 붉은 가지를 여러 갈래로 뻗으며 자라난 반송들이 만들어내는 운치 있는 오솔길이 이어진다. 구불구불 뻗어있는 솔가지의 모습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애끓는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오솔길 끝에는 ‘대성운해-큰 별이 바다에 잠겼다’라는 현판이 걸린 비각과 그 아래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던 장군의 말씀을 새긴 비석이 있어 작은 울림을 준다.

비각의 뒤편으로 이어진 소나무 길을 따라 첨망대에 도착하니 노량해협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급박했을 전장의 흔적은 바람과 파도에 사라졌지만 임전무퇴의 충혼은 영원히 노량바다에 서려 있는 듯하다.
억척스런 삶이 빚은 보물 같은 풍경, 가천다랭이마을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선정된 남면 해안도로로 접어든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쪽빛과 에메랄드빛이 뒤섞인 바다와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이국적인 풍광을 빚어내고 차창 밖으로 불어오는 봄바람은 더없이 아늑하다.
어느 순간 바다로 이어지는 산비탈에 크고 작은 논 수백여 개가 층층이 자리하고 있는 수채화 같은 풍경이 나타나 차를 멈추게 만든다. CNN 선정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3위에 이름을 올린 가천다랭이마을이다. 옛날에 한 농부가 일을 하다가 해가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논의 숫자를 세어 보니 한 배미가 모자랐다.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포기하고 집에 가려고 벗어둔 삿갓을 들어 보았더니,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있었다는 ‘삿갓배미’ 일화에는 산비탈의 자투리땅도 논으로 만들어 활용해야 했던 이곳 주민들의 고달팠던 삶이 해학적으로 녹아 있다.
마을 위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을길을 내려가 본다. 예스러운 시골 풍경을 예상했는데 마을 곳곳이 펜션과 카페 등 조금은 현대적인 풍경으로 바뀐 모습이다. 곳곳에 벽화가 그려진 마을길을 벗어나니 층층이 이어진 다랑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초록의 논과 파란 바다 그리고 유채꽃의 노랑과 라벤더의 보라까지 알록달록하게 어우러진 이색적인 풍경을 눈에 담고 내려온 언덕을 다시 올라가는 길,
젊은 사람도 중간 중간 걸음을 쉬어가게 만드는 급경사에 마을을 일궈온 이들이 겪었을 고단함이 떠오른다.

풍요롭지 않았던 지난날, 먹고 살기 위해서는 가파르고 척박한 땅에라도 논과 밭을 일구어야 했다. 땅을 고르고 거기서 나온 돌로 석축을 쌓고 다시 땅을 고르는 일이 수백 년 동안 이어졌다. 오랜 세월 쌓여온 피땀이 지금의 다랭이 논에 남아 좁고 가파른 길을 내딛는 발걸음마다 다랭이마을을 일궈온 이들의 억척스러움이 지그시 밟히는 것만 같다.
<info> 가천 암수바위
조선 영조 27년, 이 고을 현령의 꿈에 한 노인이 “가천에 묻혀 있는 나를 일으켜 달라”고 부탁해 땅을 파 보니 암수바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높이 5.9m의 수바위와 4.9m의 암바위로 이뤄진 암수바위는 각각 남성과 여성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남해에서 만나는 세계의 정원 원예예술촌

원예예술촌은 20명의 원예인들이 집과 정원을 개인별 작품으로 조성해 이룬 마을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길 양옆으로 색색의 꽃 들과 알록달록한 조형물들이 이어져 완연한 봄 느낌이 풍긴다.
핀란드 풍, 뉴질랜드 풍, 스페인 풍, 네덜란드 풍 등 저마다 아름답고 개성 있는 집과 정원들이 나라별로 테마를 담아 조성돼 있어 마을 전체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원예인들이 실제 거주하며 가꾸고 있기 때문에 작은 부분까지 섬세한 손길이 닿아 있어 보물찾기 하듯 집과 정원 곳곳에 숨어 있는 집 주인의 정성까지 살펴보게 된다.
집집마다 색다르게 펼쳐지는 풍경에 감사하며 걷다보면 이내 전망대에 도착한다. 원예예술촌 자체가 언덕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도 시원스럽다. 전망대 다음에 등장하는 원예예술문화관에는 전시실, 체험실 등이 마련돼 있다.
체험실에서는 수제 초콜릿, 우드아트, 가죽공예 등의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레인보우 가든과 레이디스 가든, 유리 온실 등 세심한 시설들이 뒤를 잇는다. 꽃과 조형물들이 예쁘게 어울려 있어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많이 머무는 곳으로 내리막길이 시작되면 원예예술촌 산책도 막바지에 이른다. 멕시코나 일본 풍 등으로 꾸며진 집과 정원이 마지막까지 시선을 붙잡는다.
그리움의 종착역, 독일마을

독일마을은 1960년대 독일로 파견돼 한국경제 발전에 기여한 독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남해군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해준 곳이다.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독일 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는 여행지로 널리 알려지며 남해를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가장 먼저 독일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로 향한다. 주황색 지붕을 머리에 얹은 하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독일의 작은 마을을 연상시킨다.

그럼에도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왔던 것처럼 푸른 남해 바다와 초록 언덕으로 둘러싸인 남해의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발걸음을 돌려 인근의 파독전시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국적인 풍경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에서 뒤로 물러난 이곳 주인공들의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나타나는 타임터널에는 파독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인 순간들이 기록돼 있어 파독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일로 건너가 청춘을 바친 광부와 간호사들의 유물과 영상을 보니 이역만리에서 그들이 겪었을 고단한 삶이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 한편이 아련해진다.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지이기 전에 조국 근대화의 주역이 된 이들이 고국에서 노년을 보내고 정착할 수 있게 해준 그리움의 종착지로써 독일마을의 의미를 되새기며 전시관을 나선다.
숲의 가호 물건리 방조어부림

통상적으로 어부림은 물고기가 살기 알맞은 환경을 만들어 물고기 떼를 유인하려고 만든 숲을 말하지만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강한 바닷바람과 해일 등을 막아 농작물과 마을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역할이 더 크다.
1.5km에 달하는 길이에 너비 30m의 반달 모양 숲인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약 370여 년 전에 전주 이 씨 무림군의 자손들이 정착하면서 조성한 것이다. 한때 흉년이 들어 숲의 일부를 벌채해 팔았던 적이 있는데 그 뒤 천연재해와 폭풍우가 덮쳐 큰 피해를 입은 뒤로 숲이 파괴되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숲의 보호에 힘써 오고 있다.

현재 300년 된 40여 종류의 수종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방조어부림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50호로 지정돼 있다. 숲속으로 잘 정돈된 꼬불꼬불한 산책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평탄하고 한적한 길로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깊은 숲에 들어온 것처럼 신비로운 분위기가 스며 있다.
마침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을 나왔다. 울창한 숲속에 노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선생님이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다니면서 노니는 소리가 동요 속의 한 소절처럼 마음에 담긴다.

비단결처럼 고운 모래, 상주은모래비치

상주은모래비치는 은빛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넓은 백사장이다.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아름다운 전경에 차를 잠시 멈추고 보니 바로 상주은모래비치다.
바다는 완만하고 수심이 얕아서 가족 물놀이에 안성맞춤으로 해마다 여름이 되면 백만 명에 가까운 여행객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이름난 해변이지만 해수욕을 즐기기에 다소 이른 시기의 바다에는 겨울과 여름 사이, 쓸쓸하지도 번잡하지도 않은 봄 바다의 정취가 아늑하다.

신발을 벗어 맨발로 모래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본다. 2킬로미터에 이르는 반달 모양의 백사장을 따라 바닷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고운 모래 위를 거닐어보기도 하며 봄이 찾아든 남쪽의 바다를 느껴본다.
잔잔한 물결에 더해 부드러운 백사장과 하모니를 이루는 송림은 거센 해풍을 맞으며 자라난 솔가지가 구불구불 이어져 운치를 더하는 모습. 나무 아래 마련된 평상에 누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잠시 눈을 감아본다.
남해 최고의 보물, 금산 보리암

남해가 품은 최고의 보물은 금산 보리암이 아닐까. 해발 704m의 그리 높지 않은 금산은 산 전체에 기암괴석이 빚어내는 눈부신 비경들이 숨어 있다.
원래 이름은 보광산. 원효대사가 이 산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훗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 와서 백일기도를 올리다가 하늘의 계시를 받고 조선을 건국하게 되자 그 보답으로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한 것에서 금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금산의 정상에는 강화도 보문사,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이 있다. 구비구비 이어진 산길을 올라 보리암 중턱까지 오른 후 차에서 내려 다시 15분여를 걸어 보리암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보리암 바로 뒤에 창공을 찌르고 서 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 대장봉이라 이름 붙여진 큰 바위와 대장봉을 향해 마치 허리 굽혀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는 형리암이 나타나 보리암으로 향하던 이들의 발걸음을 한 번씩 멈춰 세운다.

보리암에 앞서 들른 곳은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망대. 사방으로 탁 트인 시야에 금산과 남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정상까지 올라온 수고로움을 단번에 잊게 만든다. 상주은모래비치와 앞바다에 떠 있는 많은 섬들이 해안선을 아름답게 수놓은 모습에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금산 일출이 얼마나 황홀한 풍경을 선사할지 상상해 보게 된다. 높은 곳에 오르니 자연스레 지나온 길들을 되짚어 보게 된다.
돌아보니 남해의 길 위에서 만난 것들은 하나 같이 보물이었다. 따뜻하고 빛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던 길이었다. 망대에서 내려와 암자로 향한다. 3대 기도처라는 명성답게 많은 사람들이 암자를 찾은 모습이다. 묵묵히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해수관음상 앞에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끝이 없다. 해수관음상을 마주하고 좋은 계절 남해에 다녀갈 수 있음에 짧은 감사의 기도를 드려본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프리랜서 박건우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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