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능력 상실한 사법기관 이번엔 개혁 가능할까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새 정부 틀 짜기가 시작됐다. 청와대를 비롯해 각 정부기관의 장·차관 인사도 하나둘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그동안 쌓였던 적폐청산을 위한 움직임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법원, 검찰, 경찰 등의 사법기관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사법기관들의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법과 정의가 아닌 권력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정치 검찰’ ‘정치 경찰’이라는 말이 더 익숙할 정도다. 무엇이 문제일까.
 
관료주의에서 비롯된 기수·상명하복 문화 사라져야
靑, 윤석렬 지검장·김형연 법무비서관 발탁으로 개혁 시동 

 
사법기관은 국가의 3대 권력 중 하나인 사법권을 관장한다. 법원, 검찰, 경찰 등의 사법기관들은 사법권을 통해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해결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법기관은 오히려 더 많은 분쟁을 야기해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개인·조직의 생존과 이익만 쫓은 결과다. 이들의 잘못된 행태는 결국 조직을 병들게 했다. 그동안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이들은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번엔 해결될까?

 
법원은 최근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둘러싼 법원행정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위기를 겪고 있다. 대법원에서는 결국 오는 19일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열기로 했다. 지난달 마무리된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제대로 된 조사를 마쳤다면 조기수습이 될 수 있었겠지만 조사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각급 법원에서 열린 판사 회의 등에서는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담겼을 것으로 의심되는 컴퓨터 등을 조사하지 않고 결론을 내린 만큼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재조사나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제한을 위한 제도적 장치 등도 논의될 예정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법원행정처의 비대한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 등이 언급될 가능성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예산 및 사법제도연구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면서 권한이 독점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만큼, ‘출세 코스’로 인식되면서 사법부의 관료주의화를 부추겼다는 평가도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제도화하자는 목소리도 법원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만큼, 회의에서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주도로 열리는 회의에서 일선 판사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우려가 제도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로 대법원이 이번 사태 논의에서 빠져야 한다는 지적이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집 요구 당시부터 나오기도 했다. 이는 2009년 신영철 대법관 재판 개입 논란 이후 진행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법원행정처 주도로 진행되면서 법관들 불만이 회의 이후에도 가라앉지 않았던 경험이 반영됐다.

법원 내부에서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 가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사법부의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 온 김형연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를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했다. 김 법무비서관 발탁이 사법개혁의 신호탄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오랫동안 쌓여 온 적폐가 인사 하나로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법원 관계자들은 19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범죄의 종합백화점
공수처 필요성 커져

 
검찰은 총체적 난국이다. 개인·조직 비리부터 성범죄까지 ‘범죄의 종합백화점’이다. 검찰조직인지 범죄조직인지 헷갈릴 정도다. 스스로 고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검찰개혁 카드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검찰은 최근 ‘돈봉투 사건’으로 쑥대밭이 됐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적폐 청산의 대상이 돼 버렸다. 고질적인 관료주의화 문제가 검찰을 구제불능 상태로 몰아넣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

‘돈봉투 만찬’ 사건을 감찰하고 있는 법무부·대검찰청 합동감찰반이 최근 만찬 참석자 전원에 대한 대면조사를 마무리했다. 이와 함께 참석자 전원에게 경위서를 넘겨받았고, 이들의 통화내역 및 계좌내역 등도 확보한 상태다. 향후 만찬 장소에서 70만~100만 원 돈봉투가 오간 사실이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작업 정도가 남은 셈이다. 이 과정을 거쳐 만찬 참석자들에 대한 징계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법리 검토 결과 ‘돈봉투 만찬’이 현행법에 저촉된다고 판단될 경우 감찰이 수사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돈봉투가 특수활동비로 채워졌을 경우 횡령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위반이라는 해석도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돈봉투 사건’ 감찰이 윤석렬 서울지검장 임명과 함께 개혁의 신호탄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기수문화를 깬 임명은 과거 정권에서도 있었지만 그 대상이 윤석렬 지검장이라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컸다.

현재 검찰은 내외부에서 끊임없이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국민들이 원하는 변화를 해 내지 못했다. 결국 공수처의 필요성은 더욱 더 높아졌고 경찰이 끊임없이 요구하는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도 거부 명분이 약해졌다.
 
인권경찰 할 테니
수사권 달라?

 
경찰은 법원과 검찰에 비해 개혁 대상에서 조금 비껴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개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경찰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친정부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각종 집회, 시위에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보다는 제한하고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다 보니 물리적 충돌도 잦았다. 대표적인 사건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는 경찰이 ‘인권 경찰’로 거듭날 것을 주문했다. 경찰도 발 빠르게 각종 개선방안을 내놓고 있다.

경찰은 1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다양한 인권 보호 등을 위한 개선안을 공개했다. 집회·시위 현장에 경찰 차벽·살수차 비배치, 국가 중요 시설 부근 집회 허용 등이다. 이 밖에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채증 기준을 명확하게 개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정권 맞춤형으로 개선안을 쏟아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도 나온다. 또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 그동안 문제가 됐던 부분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 어린 눈초리도 있다. 인권도 중요하지만 경찰로서 본연의 임무를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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