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철폐’ 정부 노선 역주행…“자회사가 관리하면 정규직·연봉인상 가능”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KT가 자사 소유의 수백 개 건물 관리를 위해 ‘다단계 식’의 하도급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를 통해 건물 유지·보수 업체들과 도급 계약을 맺고, 이 업체들은 다시 2·3차 하도급 업체와 계약을 맺는 식이다. 특히 일부 업체는 퇴직한 KT 임원이 최대주주로 있으며, KT 관계사와도 출자 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일요서울이 입수한 ‘KT 건물 관리 도급 현황’에 따르면 KT는 전국 450여 개의 건물 관리를 위해 KT → 1차 자회사(KT에스테이트·KT텔레캅) → 2차 도급(케이에프앤에스·케이에스엔시·케이에스메이트·굿모닝에프·KBS비즈니스) → 3차 도급(세화에프에스·더블에스텍·인투에스·복지21·그린비앤드·기타 청소업체 6곳) 순으로 계약을 맺고 건물 유지·보수 및 관리를 하고 있다.
 
KT 소유의 건물 관리를 위해 최대 세 단계에 걸친 수직구조의 거래 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3차 협력사는 비교적 소규모 건물을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KT에스테이트 관계자는 “FM(Facility Management) 업무에 대해서만 전문회사에 위탁하고 있으며, 이는 통상적 시장계약 방식 및 구조와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다단계식 구조’는 대기업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부동산 관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보통은 자회사, 드물게는 최대 2차 협력사와 계약을 맺어 관리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공급 업체인 KT에스테이트는 이 건물들의 여유 공간을 활용한 임대사업 등으로 쏠쏠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T에스테이트의 지난해 매출액은 3887억 원을 기록, 전년(3239억 원)보다 20%(648억 원)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전년(308억 원)의 배 이상 늘어난 625억 원을 기록했다.
 
건물을 팔지 않는 한 매년 고정적인 수익을 안겨주는 알짜회사인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KT에스테이트가 워낙 현금 창출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KT가 흡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KT 측은 그러나 이 구조에서 본사를 제외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전국에 있는 건물은 KT에스테이트 소유이기 때문에 KT 본사와 1차 협력 관계가 아니다”라며 “KT도 KT에스테이트에 돈을 내고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KT의 분기보고서와 대규모기업집단현황공시에 따르면, KT는 1조1581억 원의 투자부동산을 갖고 있고, KT에스테이트는 이를 관리해주는 대가 등으로 지난해 KT로부터 170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KT에스테이트 소유라 하더라도 이 회사의 지분을 100% KT가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KT 소유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해석도 있다.
 
2차 협력사 가운데 KBS비즈니스를 제외한 나머지 4개 회사는 전 KT 임원 출신이 대표이사 자리를 꿰차고 있다. 케이에프앤에스의 박모 대표이사는 KT 상무보 출신이다. 케이에스엔시 대표는 송모 전 상무(고객지원본부장), 케이에스메이트 대표는 정모 전 상무(고객최우선경영실 컨설팅 지원단장), 굿모닝에프 대표는 황모 전 상무(자산경영실장)다.
 
주목할 만 한 부분은 송 전 상무가 케이에스엔시의 대표이자 지분 44.21%를 갖고 있는 최대주주라는 점이다. 이 회사는 주기적으로 수천만 원의 배당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송 전 상무의 몫이다. 굿모닝에프 역시 황 전 상무가 대표이자 지분 29%를 보유한 지배주주다.
 
이 때문에 ‘KT가 제 식구 챙기느라 비정규직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3000명이 넘는 건물 관리(시설, 미화, 경비 등) 비정규 직원들의 서러움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KT 시설 근로자는 “연 2000만 원대의 최저임금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될 정도”라며 “회사 이익은 매년 늘어 가는데 비정규직 인건비는 동결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현재 KT 건물 관리 비정규직 직원들은 매년 계약 때마다 해고의 불안을 겪어야하는 상황이다. 고용 불안이 심해지면서 매년 20~30%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건물을 자회사에서 모두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한다면 수천 명의 비정규직 직원들을 정규직화 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KT가 자회사만으로도 충분히 운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회사들과 도급 계약을 맺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며 “계약 관계가 복잡해질수록 비용만 커질 뿐이다. 구조를 단순화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규직 급여의 상승 여력도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KT가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비정규직을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있기 때문에 KT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아마 내부적으로도 이 사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추측했다.
 
KT는 해당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에 대한 설명과 입장을 KT에스테이트로 넘겼다. 엄연히 부동산 관련 자회사가 있으니 그쪽에서 답할 사안이라는 게 이유다. KT에스테이트는 이를 협력업체의 문제로 넘겼다. KT에스테이트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해당 FM사(2·3차 업체)의 경영적 판단에 의한 것으로 KT에스테이트가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앞서 전 임원의 출자에 대해서도 “KT 퇴직임원의 개인적 판단에 의한 지분 인수이거나, 각 사에서 경영적 판단으로 해당 임원을 선임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KT와는 무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대부분의 2차 협력사는 KT텔레캅 및 관계사, KT동우회 등이 상당량의 지분을 갖고 있다. KT가 이들 회사의 ‘경영적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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