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새 정부의 재벌 개혁 의지가 강경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교수를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한 데 이어 장하성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했다. 을지로위원회 성장의 주역인 우원식 의원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정경유착과 재벌 특혜,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 등 ‘적폐 청산’을 내세운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단호하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재벌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재벌 가운데서도 4대 재벌의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계에서는 벌써부터 새 정부의 강도 높은 재벌 개혁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지난 수십년간 대선 때마다 많은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그러나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재벌 개혁, 과연 이번에는 가능할까. 일요서울은 재벌·적폐 청산을 시리즈로 기획했다. 이번 호는 불공정 거래다.

국민참여재판, 집단소송제 도입, 국민심사위원회 설치로 유착 방지
과징금 상향, 영업정지제 및 하도급감독관제 도입과 동의의결제도 개선

민병두 의원이 지난 4월 발표한 ‘올바른 경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입법 방향’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공고히 하고 양극화 해소를 통해 동반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2006년 ‘대 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공정거래법, 하도급법 등의 개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기업-중소기업간의 갑을관계 해소에 노력을 이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막는 불공정 거래행위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대기업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는 물론 중소기업 기술·인력 탈취행위 등의 불공절 거래행위로 중소기업 피해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하도급거래에 있어 대기업의 ‘갑질’로 인한 피해 심각성이 늘고 있는데 2011년 이후 하도급 관련 분쟁은 126건에서 2016년 1033건으로 약 820%가 증가했다.

솜방망이 처벌, 피해보상 어려워

구체적인 사례를 들여다보면 황당 그 자체다. 국내 굴지 A마트는 삽겹살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100g에 1000원 이하 행사 상품을 출시했다. 그 이면에는 수년째 A마트에 삽겹살을 납품하는 중소상인 B의 눈물이 있었다.

B는 돼지고기 1400여 톤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이중 71%를 행사물량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삽결살데이 전후 적용된 돼지고기 납품단가의 경우 통상의 경우보다 현저히 낮은 단가로 납품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A사가 납품대금에서 자사 물류센터에 납품 이후에도 각 쇼핑센타로 배송하는 물류비용까지 부당하게 공제 처리한 것이다. 결국 공정거래조정원의 결정으로 피해금의 일부를 보상받았다.

또 다른 사례도 놀랍다. C전자는 휴대폰 케이스를 생산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케이스를 도입했고, 한발 더 나아가 세계 최초로 모듈형 타입 케이스를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C사는 1차 하청업체 3사에게 위탁해 양산에 들어갔고, 3사는 2차 하청업체에게 업무를 넘겼다. 결과적으로 C사는 1차 2차 하청을 두고 일을 진행한 것이다.

1, 2차 하청업체를 찾아 독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험 및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생산 물량이 현저히 부족해졌고, 그에 대한 책임을 하청업체가 지도록 했다.

C사는 1, 2차 하청업체들은 양품수율이 떨어지는 매출액이 현저히 낮아 손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미 제작 위탁한 제품의 단가를 인하하는 방식으로 하도급 대금을 감액케 했다.

문제는 1차 하청업체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이 손실을 2차 하청업체에게 전가하면서 2차 하청업체의 부도로 이어졌다.

더 큰 문제는 하도급과 관련된 ‘갑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1985년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제정을 통해 대기업의 갑질 해소를 위한 법적 환경을 구비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민 의원은 “법적인 장치가 오래전부터 강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도급거래에 있어 불공정해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불공정 행위)가 지속되는 이유는 거래관계에 있어 대기업에 속해 있고, 신고를 하는 경우 거래단절 등의 보복조치로 중소기업은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원하청 불법 뿌리뽑는 법안 내놔야

따라서 대기업-중소기업 간 거래관계 특히 그 피해가 심각한 하도급거래에 있어 하도급법의 준소 여부,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시정, 하도급분쟁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하도급감독관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현 정부에서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같은 중소기업 위에 군림하려는 재벌기업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화될 전망이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대폭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은 “소송을 하면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필요하다”면서 “최대 10배 수준으로 배상수위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4월 5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는 ‘불공정 적폐청산! ‘갑질타파’를 위한 개혁입법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발표회에는 원하청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6대 개혁안을 소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6대 개혁안은 불공정 행위 관련 재판에 ▲국민참여제도와 ▲집단소송제 도입으로 하청업체 보호 강화 ▲공정위에 국민심사위원회를 설치하여 공정위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 ▲하도급감독관제 도입 ▲과징금 상향 및 영업정지 도입 ▲동의의결제도 개선 방안을 담고 있다.

이날 발표자였던 김경협 더불어민주당(부천원미갑)의원은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고질적인 갑질, 불공정 거래 문제는 민생 경제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근본적 원인’이라 지적하며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6대 개혁안을 4월 중으로 입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학영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은 “을지로위원회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원하청 거래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고 갑과 을이 상생하는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라며 “개혁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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