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드라이브에 맞춰 일요서울은 ‘대한민국 적폐청산 정치 5敵’을 연재한다. 주제는 ▲철새 정치 ▲계파 정치 ▲세습 정치 ▲지역 주의 ▲묻지마 폭로 총 다섯 가지다. 지난 호에서 세습 정치의 실태를 짚어본 데 이어 이번 호에서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의 폐해를 짚어보고자 한다. 대통령 선거는 물론이고 기초의원 선거, 공무원 인사에까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지역주의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20대 총선·19대 대선, 영·호남 지역 구도 ‘약화’
- ‘대선’에서 ‘호남 몰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지역주의가 지금처럼 심화된 것은 87년 민주화 이후 유명 야당 정치인들의 반목과 불화 이후라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자민련 없어지자 영·호남으로
지역정치 ‘양분’


당시 야권과 시민들은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통치에 맞서 전국적 민주화 운동(6월 항쟁)을 벌였고 직선제 개헌까지 이뤄냈다. 그해 대통령 선거는 ‘군사 정권 종식’을 의미했고 야권은 이미 정권을 이양받은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는 각각 대통령이 된 듯한 자신감에 단일화를 거부했다. 각자 자신의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힘을 키워 나갔고 이는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당시 우리 사회의 양심으로 여겨졌던 ‘재야(在野)’마저 쪼개진 것이다. 투표 결과 야권의 표는 예상대로 YS-영남, DJ-호남, JP-충청으로 분산됐고 그 결과 여권의 노태우 후보는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이후 한동안 영남과 호남 그리고 충청이란 지역적 기반으로 움직여온 우리 현대사의 정치는 자민련이 없어지자 영남과 호남의 구도로 재편됐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인물’이 아닌 ‘출신지’를 판단의 잣대로 삼았다. 후보자의 자질을 의심케 할 만한 스캔들이 터져 나온다 한들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최연희 동부그룹 건설 디벨로퍼부문·농업 바이오부문 회장이 지난 2008년 성추행 스캔들로 구설수에 올랐음에도 무소속으로 강원도 동해·삼척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례를 들 수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006년 2월 24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동아일보 편집진 및 기자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동아일보 여성 기자의 가슴을 만진 사실이 알려지며 구설수에 올랐다. 이후 최 회장의 해명은 더 가관이었다. 그는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변명했다.

이에 세간에선 ‘여주인이면 만져도 되느냐’는 비난이 빗발쳤고 다른 당은 의원직을 사퇴하라고 요구했으며, 소속 당이었던 한나라당까지 최 회장을 압박했다. 그러나 그는 잠시 잠적하는가 하더니 2006년 3월 24일 의원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법에 따르겠다”는 발표를 했다.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최 회장은 의원직은 유지할 수 있었고 이후 자진 탈당한 그는 2008년 자신의 출생지인 강원도 동해·삼척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또 한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성추문으로 구설수에 올랐음에도 자신의 출생지에 출마해 당선된 사례는 비단 최 회장뿐만이 아니다. 자유한국당 유재중 의원도 성추문 의혹에 휩싸였으나 19대 총선에 새누리당 후보로 부산 수영구에 출마했다.

그러자 유 의원뿐만 아니라 성추문 파문에도 불구하고 그를 공천한 새누리당에까지 비난의 화살이 빗발쳤으나 선거 결과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선됐다.

그는 이후 20대 총선에서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유 의원은 경상남도 합천 출신으로 부산광역시의원, 부산 수영구청장을 각각 역임했다. 18대 총선 당시에는 친박연대 소속으로, 19·20 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소속으로 모두 같은 선거구인 부산 수영구에서 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김부겸·이정현,
지역주의 허문 ‘1등 공신’


이처럼 오랜 세월 변함없이 지속돼 온 지역주의에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난 것은 지난해 4·13 총선부터였다. 대구와 부산에서 진보 정당 후보가 당선됐는가 하면 호남에서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철옹성 같던 지역정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부겸, 이정현 의원은 각각 불모지로 평가받던 경상북도 대구와 전라남도 순천에서 당선되며 높아만 보였던 지역주의 벽을 허문 장본인들이다.

김 의원은 ‘대구의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수성갑에서 진보 정당 출신으로는 31년 만에,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45년 만에 배지를 달았다. 지난 2006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 군포에서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고 진보 정당으로 소속을 옮겨 내리 3선에 성공해 중진 의원으로 성장했다.

이후 그는 지역주의 구도를 깨기 위해 과감히 군포를 버리고 고향인 대구로 옮겨와 20대 총선에서 당선 됐다. 그는 대구에서만 19대 총선과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했지만 3차례 도전 끝에 목표를 이룬 것이다.

이정현 의원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으로 현재 전남 순천 지역구 의원이다. 18대 국회의원을 비례대표로 지낸 그는 2014년 7월 30일 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 26년 만에 처음 호남에서 보수 정당의 깃발을 꽂은 의원이 됐다.

2년 만에 실시된 20대 총선에서는 고향인 곡성을 다른 지역구에 떼어 주고도 순천에서 승리하며 3선 고지에 이르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그가 ‘박근혜의 입’이라 불리며 자타가 공인하는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평가받아 왔기에 이는 더욱 놀라운 결과였다. 이후 그는 호남 출신 최초의 보수 정당 당 대표가 되는 기염을 토했다.

한편 20대 총선 이후 실시된 19대 대선에서도 영·호남 쏠림 현상은 옅어졌다. 호남에서 문 대통령에게, TK에서 홍 후보에게 일부 쏠림이 있긴 했지만 역대 대선에 비하면 강도가 미미하다. 18대 대선에선 문 대통령이 호남 3개 권역에서 모두 90% 안팎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TK에서 80% 안팎을 득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17개 광역시도 중 어떤 지역도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물론 이번 대선이 보수-진보 양자 구도에서 벗어나 20년 만의 다자 구도로 치러졌다는 점,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보수 지지층이 분열한 점 등 몇 가지 변수가 있긴 했으나 기존의 ‘TK-보수, 호남-진보’라는 극단적 구도를 거부하는 신중도층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평가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영남에 비해 호남의 지역주의는 여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정치권의 분발이 요구된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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