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동교동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대북송금 특검을 비롯한 각종 비리 의혹과 관련해 김대중(DJ) 전대통령의 측근들이 속속 구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DJ의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의 사법처리도 임박해 오고 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DJ정권의 부정문제 만큼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따라서 정치권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신당창당 등과 맞물려 DJ와의 관계 청산을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DJ의 우산 아래서 대통령이 된 노 대통령이 이제 DJ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노 대통령의 DJ 그늘벗기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대북송금 특검, 신당문제, 각종 비리의혹과 관련한 DJ 측근 수사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특히 대북송금 특검은 DJ 청산작업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의 당론과 호남민심을 외면한채 대북송금 특검법을 공포한 순간부터 노 대통령과 DJ의 앙금은 서서히 쌓이기 시작했다.이미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이근영·이기호씨 등 DJ 정권 경제팀이 구속됐고, DJ의 핵심 측근인 한광옥·임동원씨, 박지원 전실장의 비서 등이 특검팀에 소환, 조사를 받았다.특검팀의 칼날이 DJ의 핵심 측근들을 겨냥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특검 수사가 DJ의 핵심 측근들과 현대그룹 수뇌부를 직접 겨냥하자 정치권은 특검수사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민주당내 신주류와 재야출신 의원들은 공동성명을 내는 등 집단행동에 돌입했고, 구주류도 “정상회담이 수사대상이 돼선 안된다. 특검의 과잉수사는 사법적 테러”라며 특검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DJ도 최근 특검팀이 대북송금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측근들을 잇따라 사법처리하자 강한 우려의 뜻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DJ의 한 측근은 “DJ가 2월14일 대북송금 관련 의혹에 대해 ‘남북 화해·협력의 큰 흐름 속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고, 이 부분에 대해 사법적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고, 책임이 있으면 내가 진다’고 밝힌바 있다”며 “DJ는 관련자들에 대한 최근의 잇따른 사법처리로 남북관계가 악화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이처럼 DJ와 민주당 신·구주류가 한 목소리로 특검수사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팀의 수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올 경우 노 대통령과 DJ의 앙금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나라종금 사건을 비롯한 각종 비리의혹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인사들 대부분이 DJ와 가깝다는 사실도 노 대통령과 DJ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지난 1월 기업인수를 도와주고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민주당 김방림 의원을 시작으로 동교동계인 이윤수·최재승 의원이 검찰 수사를 받았고, 한광옥 위원도 최근 구속됐다.

또 검찰이 은밀히 내사를 벌이고 있는 석탄납품 비리, 수원 S건설 비리, 부천 범박동재개발 비리의혹 사건 등에 오르내리고 있는 정치인들도 대부분 민주당 구주류와 동교동계 인사들이다.특히 DJ의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는 DJ 청산작업의 최대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검찰은 지난 2일 김 의원을 소환, 조사한 뒤 이날 오후 돌려 보냈다. 검찰은 당초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김 의원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 바꿔 신문조서를 받았고, 지난 99∼2000년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에게서 나라종금 퇴출저지 명목이나 인사청탁의 대가로 수차례에 걸쳐 억대의 돈을 받았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했다.검찰은 국회회기 중 현역의원 불체포 규정에 따라 이날 오후 김 의원을 귀가조치했으나 조만간 재소환 여부와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김 의원이 사법처리될 경우 DJ는 홍걸·홍업에 이어 세 아들을 모두 사법처리 받게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여권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신당론과 관련한 노 대통령과 DJ의 미묘한 입장차이도 두 사람의 결별을 부추기고 있다.두 사람은 아직까지 신당론과 관련한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측근들과 주변 정황에 비춰볼 때 두 사람은 신당론에 대해 엇갈린 견해를 갖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현재 신당론과 관련한 민주당내 신·구주류간 기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노 대통령과 DJ는 각각 신주류와 구주류 입장을 내심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DJ는 동교동 자택을 방문한 측근들을 통해 ‘민주당 법통을 계승하는 신당’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DJ의 한 측근은 “민주당은 해공 신익희 선생 이래 50년 동안 민주화를 위해 애쓴 민주세력의 정통성을 이어온 전통있는 당인 만큼 민주당 법통 계승을 DJ는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반면 노 대통령은 신주류 강경파가 주장하고 있는 개혁신당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노 대통령은 지난 5월1일 TV토론에서 ‘신당창당에 대한 속내를 꺼내는 것이 낫지 않나’라는 패널의 질문에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 봤다”고 답해 신당창당에 상당한 관심을 보여왔음을 시사했다.노 대통령은 또 신당구상을 묻는 질문에 “이런 저런 생각과 판단은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신당창당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신당창당과 관련해 고민하고 있고 나름대로의 구상안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속은 뻔하지만 감놔라 배놔라 말 못한다” “나를 따르라. 당을 깨라. 당을 같이하라는 식이 아니라 개혁의 분위기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등의 발언에서는 직접적인 개입은 삼가겠지만 개혁신당 창당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예단케 한다.

노 대통령은 최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민주당이 가진 지역성은 결국 해소하거나 극복해야 한다”며 민주당의 한계를 거론하기도 했다. DJ가 만든 민주당이 지역정서의 벽에 기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만큼 그 틀을 깨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이 해체돼야 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이처럼 노 대통령과 DJ의 상반된 신당론 견해는 향후 전개될 정계개편 소용돌이와 맞물려 결국 결별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