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확인해 보니…누군가 담당 경찰 컴퓨터 사용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가 없음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새로운 경찰’로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경찰 조직이 지난 16일 경찰개혁위원회를 출범하고 조직혁신 작업을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경찰에 인권 경찰로의 변화를 주문했다. 이에 발 맞춰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는 인권보호, 수사개혁, 자치경찰 등 3개 분과를 구성해 경찰이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새롭게 만들 계획이다. 특히 수사개혁분과는 수사·기소 분리 등 수사권의 합리적 배분방안과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 신뢰도 높이기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어서 전 국민적인 관심이 크다.
 
수사 및 정보보안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건으로 비난
수사권 가져오기 위해 개혁 꾀하는 경찰 조직에 ‘찬물’ 

 
경찰개혁위원회는 오는 10월 21일 경찰의날에 ‘경찰개혁권고안’을 마련해 최종 발표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위원회는 정기·수시 회의를 통해 주요 안건을 심의·의결하고 각 회의 직후 논의된 사항을 공개, 심의·의결된 과제를 즉시 추진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위원회 구성과 함께 초대 유엔 대한민국 인권대사였던 박경서 씨를 위원장으로,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19명을 민간위원으로 위촉했다.

최근에는 위원회를 지원하는 경찰 조직 내 태스크포스(TF)팀도 구성했다. 기존 경찰청 현장 활력TF가 경찰개혁TF단으로 변환된다. TF에는 총경급 2명을 포함해 15명 정도 인력이 활동한다.

하지만 위원회에서 의결된 권고안에 대한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일각에서는 위원회 출범 배경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기회가 검·경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현안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호기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경찰 조직이 혁신과 변화를 위해 분주한 가운데 일선 경찰서에 찬물을 끼 얹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의 제기한 지 한 달
범인 찾았다더니 말 바꿔

 
서초경찰서는 최근 진술조서 유출 의혹에 휩싸였다. 진술조서는 사법경찰관이 고소인, 피의자, 참고인 등의 진술을 기재한 조서로 정당한 절차를 통하지 않고는 외부로 유출될 수 없다.

A씨와 B씨는 지난해 11월 C씨가 사기죄로 고소한 사건의 관계자들이다. 당시 C씨는 11월 4일 서초경찰서에서 담당 사법경찰관 D씨와 함께 고소사건 관련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그 이후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C씨가 작성했던 진술조서가 외부로 유출된 것이다. 유출된 진술조서는 지난 5월 말경 A씨와 B씨에게로 전해졌다. 진술조서 문서를 받아 든 A씨와 B씨는 황당해하며 서초경찰서 D씨에게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애초 C씨와 함께 진술조서를 작성했던 D씨는 진술조서 유출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만큼 상관에게 보고한 후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전했다.

이들이 D씨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한 것은 지난 5월 말 진술조서를 입수한 직후였다. D씨가 진상조사 요청 보고를 하겠다고 말하고 일주일쯤 뒤인 6월 초 A씨는 서초경찰서 내 E씨에게 진척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E씨는 A씨에게 CCTV를 확인해 보니 4월 중순 누군가 D씨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서초경찰서 측은 말을 바꿔 감사를 진행 중이라며 자세한 상황을 밝히지 않았다.

기자는 사실 확인을 위해 서초경찰서와 D씨에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먼저 경찰서 내 감사 등을 진행하는 서초경찰서 청문감사관실 관계자는 지난 26일 오전 전화 통화에서 진술조서 유출과 관련해 진행하고 있는 감사는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통화가 된 D씨는 현재 CCTV를 확인 중이라 자세한 이야기는 상급자와 통화해 보라며 말을 끊었다.

A씨와 B씨가 진술조서 유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지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서초경찰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보인다.

진술조서 유출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게다가 경찰 내부의 누군가가 타인의 컴퓨터를 무단으로 사용해 자료를 유출했다면 경찰 보안 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인 만큼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수사권, 경찰에게?
경찰·검찰 몸조심 中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을 조정하는 안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JTBC는 지난 24일 뉴스를 통해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검·경 수사권 조정안 초안이 확정된 것으로 JTBC 취재 결과 확인됐다”며 “완성된 조정안의 핵심은 검찰이 독점해온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보충적 수사권만 갖는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민감한 시기인 만큼 경찰과 검찰은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내부 단속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돈 동투 만찬 사건’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터다. 경찰도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등으로 국민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터진 서초경찰서 진술조서 유출 사건은 경찰 조직에 악재가 될 전망이다. 게다가 철저한 진상조사 대신 사건을 은폐하려는 정황을 보인 만큼 개혁을 주문한 문재인 정부의 요구에 반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서초경찰서 진술조서 유출사건은 수사 및 정보보안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건이다. 게다가 진상조사 과정에서 흘러나온 내부인에 의한 진술조서 열람 및 유출이 사실이라면 검찰의 수사권을 가져오려는 경찰의 입장에서는 기초적인 원칙도 지키지 못하는 조직이 수사권까지 넘보냐는 비판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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