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0대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거주하던 중 1942년 16살의 나이로 중국 지린성 훈춘 위안소로 강제 동원됐다.
김 할머니는 2007년 2월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하원이 주체한 미국 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하루에 40여명을 상대했고 죽지 않을 만큼 맞아서 고막이 터졌다”며 끔찍했던 과거사를 증언했다.
김 할머니는 정부에서 받은 보상금 등을 고스란히 모았다가 자신처럼 부모 없는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써달라며 2000년,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총 1억 원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했다. 이 밖에 퇴촌 성당에 학생들 장학금으로 1억5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의 빈소는 23일 경기 서남시 분당구 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국무총리, 여야 당대표 등 각계 인사의 조문이 이어졌다.
지난 23일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 등 각계 각층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24일에는 이낙연 국무총리,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정미 정의당 대표,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잇따라 조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우리가 무슨 죄가 있나. 할머니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정부는 일본에 얽매여 10억 엔에 우리를 팔아먹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화해와 치유재단은 없어져야 할 기구”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기도 싫으니 없애달라”고 말했다. 또 이 할머니는 “일본이 지은 전쟁범죄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따져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이 밖에 발인은 25일 오전이며 장지는 나눔의 집 추모공원이다.
조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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