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그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 사례로 알려진 중견 식품기업 ‘오뚜기’가 청와대의 초청을 받아 눈길을 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대화에 선정된 15개 대기업들 사이에 중견기업이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오뚜기의 미담을 살펴보자. 지난 3월 말을 기준으로 본사 전 직원 3099명 중 기간제(계약직) 근로자는 36명이다. 비정규직 비중이 1.16%로 거의 없는 셈이다. 또한 오뚜기 함영준 회장은 1500억 원대의 상속세를 5년에 걸쳐 분납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종근당 회장의 운전기사 상대 폭언, 대한항공 땅콩회항, 미스터피자 경비원 폭행 사건 등 오너들의 갑질 행태로 실추된 기업가정신이 재조명된 것 같아 반갑다.

우리 역사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선각자들이 많이 있다. 신라의 화랑 관창은 황산벌에서 홀로 적군에 뛰어들어 자기희생을 실천했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털어 의병을 모은 후 ‘정암진 전투’에서 왜병 2만 명을 몰살시키는 등 일본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승전(勝戰)을 거듭했다. 또한 GS그룹 창업자인 효주 허만정 선생은 일제 강점기 때 진주 일대에 거액을 쾌척해 학교를 짓고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효성의 조홍래 사주들에게 도움을 준 큰 기업인이다. 2년 전에 이준용 전 대림산업 회장은 통일을 위해 전 재산에 해당하는 2000억 원을 기부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

역사상 세계사를 주도했던 국가는 어김없이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발휘되었다. 초기 로마는 귀족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에 힘입어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매김할 할 수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영국은 제1차, 2차 세계대전에서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다. 100년 가까이 팍스아메리카의 위치를 지키는 미국은 6·25전쟁 때에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12~3위권의 당당한 나라로 성장했음에도 선진 강국(强國)의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인 이유 때문일까. 북한 리스크 때문일까.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선진국에는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우리 지도층에는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진자, 성공한 기업인, 정치인, 법조인, 고위공직자들이 이기심과 탐심(貪心)을 버리고 희생과 봉사에 앞장서야 한다. 먼저 가진자와 성공한 기업인들은 기부와 나눔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국의 부자 1위와 2위인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은 거액을 기부해 사회적 책임 수행을 다한다. 영국의 ‘자선원조단(Charities Aid Foundation)’은 해마다 세계 각국의 기부 현황을 조사해서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2014년에 세계 60위 수준이다. 재벌이 상속세, 증여세를 포탈하는 관행은 국민의 ‘반재벌 정서’를 키운다. 기업인의 기부행위가 늘어날 때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기업 정서’도 극복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당보다는 국가를 위하는 선국후당(先國後黨)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등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나아가 국난극복을 위한 헌신으로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법조인들은 전관예우 등 ‘전관범죄’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고위 법조인(법원장 이상, 검사장 이상 등) 출신들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변호사 개업을 지양해야 한다. 이들이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다면 ‘유전무죄(有錢無罪)’ 등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대 거의 모든 정권은 검찰공화국의 유혹에 빠져서 실패했다. 전직 검찰총장들은 “검찰총장의 힘이 막강하면 법치 후진국이다”라고 진단했다. 무소불위의 검찰도 변해야 살 수 있다. 검찰개혁은 국민의 인권의식이 높아진 만큼 수사관행을 개선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반성적 고려가 필요하다. 더 이상 ‘정치 검찰’ ‘봐주기 수사’ ‘표적 수사’ ‘별건 수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검찰은 검찰권을 절제해 행사해야 한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가 나오면 그 책임을 세게 물어야 무리한 수사를 못 한다.

어느 시대나 정부는 포퓰리즘을 멀리하고 안정성을 가져야 한다. 우파 정부건 좌파 정부건, 정권은 5년을 주기로 바뀌게 마련이다. 청와대를 임대해서 사용하다 비워주고 나와야 하는 ‘세입자 정부’인 것이다. 안정된 정부가 되려면 법질서 유지, 조세정책의 형평성이 유지되어야 한다. 장관이 평균 1년~2년 임기로 바뀌기 때문에 무엇보다 고위공직자들이 무사심(無私心)으로 ‘탐위모록(貪位慕祿, 지위를 탐하고 녹을 사모하는 행위)’를 멀리해야 한다. 권력과 명예와 부의 3위 일치가 되는 사회는 후진 사회이다. 역사의 동력은 지도층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나온다. 지도층들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할 때 선진 통일이 앞당겨 질 수 있다.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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