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지배력 차단·순환 출자 해소 母기업 ‘갑질’ 사라질까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새 정부가 지난달 19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재벌 개혁을 예고하자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특히 정부는 총수 일가의 편법 지배력 강화를 차단하기 위해 기존의 순환 출자를 해소하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적용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재벌 상당수가 여러 사안으로 개혁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어서 앞으로의 행보에 이목이 쏠린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새 정부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구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 발표…기업들 앞 다퉈 구색 맞추기 나서
경영권 안정 대책 없이 막무가내식 고리 끊기는 오히려 역풍 불 수도
현대삼호중공업, 롯데·GS그룹 등 일감몰아주기 의혹 벗어나기 안간힘

순환출자란 한 그룹 안에서 A기업이 B기업에, B기업이 C기업에, C기업은 A기업에 다시 출자하는 식으로 그룹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자본을 늘리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상호출자는 피하면서도 기업그룹 내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또 실제 자본금은 회사들을 거쳐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변화가 없지만 장부상엔 자본금이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하면 지배주주가 실제 투자한 금액 이상의 의결권을 가지는 방법으로 이용되는데, 개정 공정거래법은 2014년 7월부터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기업 간 합병이나 주식 교환 등을 통해 생기는 새로운 순환출자 건에 대해서는 즉각 지분 매각 명령을 내린다.

재계 한 관계자는 “신규순환출자의 문제는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기존순환출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며 “기업 간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기존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 재벌 총수에게 집중된 지배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 부분이 새 정부 들어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 김상조 위원장은 내정 발표 직후 “2012년 대선 당시, 14개 그룹의 9만8000개 순환출자고리가 지금은 7개 그룹의 90개 순환출자고리로 줄어들었다”며 개선 가능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주회사 전환 추진, 그룹은 어디

이미 현대삼호중공업이 현대미포조선 지분 42.3%를 현대중공업에 넘기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 지분의 양도가 이뤄질 경우 현대중공업그룹은 지주회사의 행위제한 요건을 충족하는 동시에 15년 가까이 이어진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한다.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증손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단 지분 100%를 갖는 건 가능하다. 공정거래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현대미포조선 지분을 모두 처분하거나 57.7%를 추가로 매입해 100% 자회사로 만들어야 한다.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는 것보다는 처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지분을 매입하려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타 주주들과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그룹은 매입보다는 처분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그룹의 지주사 전환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주사 역할(투자회사)을 맡은 롯데제과는 증권신고서 제출까지 마쳤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10월 롯데지주(가칭)가 출범한다. 지주사가 출범하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신동빈→롯데지주(투자회사)→사업계열사’로 변한다.

지난달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제과는 지난 6일 롯데그룹 지주사 전환을 위한 분할·합병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신고서를 금감원이 승인하면 오는 29일 주주총회를 열고 분할·합병을 승인받을 예정이다. 예정대로 진행하면 오는 10월 1일이 분할·합병 기일이다.

앞서 롯데제과와 롯데쇼핑·롯데푸드·롯데칠성음료는 각각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분할하기로 했다. 이후 롯데제과를 중심으로 각 투자부문 회사를 합병해 롯데지주로 출범한다.

기존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법인의 주식을 나눠 갖는 인적 분할 방식으로 진행한다. 분할·합병에 반대하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기간은 오는 29일부터 9월 18일까지다.

1분기 말 기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이 50%를 웃도는 상황에서 분할·합병 작업은 무난하게 진행될 전망이다. 롯데제과와 롯데쇼핑의 최대주주(특수관계인 포함) 지분율은 각각 62.73%·64.62%에 달한다. 롯데칠성음료는 54.24%고 롯데푸드는 50.16%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일정에 맞춰 분할·합병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큰 무리 없이 지주사 전환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GS그룹은 일찌감치 지주사 지에스를 세워 순환 출자 비판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다만  GS그룹 역시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의혹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비상장사가 많은 GS그룹 내에서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겪는 곳은 8개사다. 삼양통상(상장사), 삼양인터내셔날, 보헌개발, 승산, 지에스아이티엠, 켐텍인터내셔날, 엔씨타스, 삼정기업 등으로 이들은 지주사 지에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다. 대신 오너 일가 지분이 높고 대부분 비상장사다. 오너 일가 지분은 적게는 24%에서 많게는 100%에 이른다.

오너가 지분율이 20% 이상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조건의 일부가 충족된다. 거론된 기업 중 상장사는 삼양통상 하나뿐이다. 내부거래율이 높고 지주사의 지배력에서 벗어나 있다 보니 GS그룹은 오너가 3~4세들에게 일감을 몰아준다는 비판이 계속 나왔다.

공정위 관계자는 “오너의 지분율, 거래 매출액 등은 일감 몰아주기를 조사하기 전 사전에 보는 최소 요건일 뿐이다”며 “요건이 충족된다고 해서 무조건 위법이 아니며 자세히 알아보고 판단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대응 방안 모색, 쉽지 않을 듯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경영권 안정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막무가내식으로 순환출자만 끊으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는 주장도 나온다. 여러 논란에 재계 관계자는 “기업 차원에서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내놓지는 않고 있지만 새 정부 방침에 맞춰 경영 투명성 강화에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새 정부에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맡은 국정기획위원회는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추진할 정책방향으로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완성,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대국민 발표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참석해 국민에게 앞으로 5년간 중점적으로 추진할 국정운영 과제를 소개했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은 ▲국가비전 ▲국정목표·전략 ▲100대 국정과제 ▲복합·혁신과제 등으로 구성됐다. 100대 국정과제는 대선기간 중 국민들께 약속한 201개 공약, 892개 세부공약 하나하나를 꼼꼼히 확인 선정했다고 국정기획위는 밝혔다.

내용이 유사한 공약은 하나의 국정과제로 통합하고, 다양한 독립된 정책을 포괄하는 공약은 복수의 국정과제로 분리한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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