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주의’라 쓰고 ‘바른정당과 통합’이라 읽는다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가 지난 3일 당 대표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제보 조작’ 사건으로 자숙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밝힌 안 전 대표의 ‘돌발 등장’에 국민의당은 깊은 내홍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안 전 대표의 출마를 둘러싸고 찬반 목소리가 정면으로 부딪히며 갈등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안 전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함에 따라 8·27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대’ 개편은 물론 향후 ‘정계’ 개편까지 연쇄 지진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안 전 대표가 ‘중도 정치’ 복원을 위해 분당을 감수하고 정치적 승부수를 띄웠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대’ 개편 이어 ‘정계’ 개편 가속화 조짐
‘安이 사느냐 호남계가 사느냐’ 치열한 당내 갈등 예고

 
안 전 대표는 지난 3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일들에 매진하는 것, 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갖고 행동에 옮기는 극중주의의 중심에 국민의당이 있다”며 ‘극중주의’를 강조했다.
 
안 전 대표가 밝힌 극중주의는 국민의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중도 개혁’ 성향의 정당에서 ‘중도 보수’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의 탈바꿈을 선언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는 곧 합리적 중도 보수를 지향하는 바른정당과의 연대·통합을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는 출마 선언문에서도 “함께하는 정치 세력을 두텁게 하겠다”며 제3의 정당으로서 중도 세력의 힘을 모으겠다는 의사을 내비쳤다. 실제 안 전 대표 측 핵심 측근은 통화에서 “독자 노선을 우선 공고히 한 뒤 만약 (통합)한다면 바른정당하고 맞는 게 옳다. 이것이 다당제 취지를 살리는 것”이라며 “민주당과의 합당은 죽는 길”이라고 밝혔다.
 
독자 노선을 우선시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향후 바른정당과 통합에 나설 뜻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안 전 대표는 이미 전당대회 출마를 논의하며 만난 인사들에게 향후 바른정당과의 정책 공조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친안계 초선 의원들 일부는 바른정당과 함께하는 정책연구모임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안 전 대표의 ‘중도 개혁→중도 보수’ 선언은 한편, 이에 동조하지 않는 세력이 탈당을 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데이터앤리서치 엄경영 소장은 “출마 선언의 핵심 키워드는 중도 정치 부활”이라며 “여기 동의하는 세력은 같이 가겠다는 메시지로 들리지만 이는 곧 나갈 사람은 나가라는 뜻의 고육지책으로 읽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본인 중심으로 중도 세력을 모아나가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이다.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며 “탈당·분당을 감수하겠다는 뜻을 대내외 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호남계와 갈등 불가피
‘헌 동지’ 버릴까

 
안 전 대표가 ‘중도 보수’로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당내 호남 세력과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호남 의원들은 안 전 대표의 출마를 강력 반대하는 한편 탈당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조배숙·주승용 등 호남 의원 8명과 이찬열·이상돈 등 비호남 의원 4명은 안 전 대표의 출마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호남 중진 박지원 전 대표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김경진 의원, 전당대회 출마 선언을 한 호남 지역 정동영 의원과 천정배 의원까지 다수의 호남 인사들이 집단 반발하는 상황이다.
 
권노갑 상임고문 등 동교동계 고문단 20여명은 탈당을 결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은 안 전 대표를 ‘출당’ 조치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당내 정동영계 의원들도 긴급회의를 소집해 탈당을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일부 의원들은 분당 압박까지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대표 출마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정동영 의원은 안 전 대표의 출마 선언에 “선당후사라고 말하지만 내용은 선사후공”이라고 비판했고, 천정배 의원은 “안철수 전 후보 출마는 최악의 결정으로 국민의당의 존폐를 결정할 중대한 사태”라고 맹비난했다.
 
안 전 대표가 승부수를 띄운 데에는 당이 이 상태로 가다간 더불어민주당에 흡수될 것이라는 정치적 위기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안 전 대표는 과거 당내에서 민주당과의 통합론이 불거질 때도 결사반대 목소리를 낸 바 있다.
 
또 국민의당이 대선 패배와 제보 조작 사건으로 호남에서 설 자리를 잃을 만큼 ‘헌 동지를 버리고 새 동지를 찾아가는 행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안 전 대표 측 핵심 측근은 “호남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도 호남의 생각”이라며 “비호남권 지지가 있어야 한다. 호남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의 호남 지지율도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호남 민심은 정부·여당에 협조를 촉구하는 분위기인 만큼 이에 동승할 경우 안 전 대표 입장에선 존재감이 약화돼 대선 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출마 배경으로 꼽힌다.
 
외나무다리 싸움 격화
정계 개편 ‘가늠자’는?

 
안 전 대표의 출마로 국민의당은 향후 전당대회를 통해 ▲안 전 대표가 남고 호남 정치인이 나가느냐 ▲호남 정치인이 당에 남고 안 전 대표를 내보내느냐의 ‘외나무 구도’로 치열한 싸움이 전개될 전망이다. 친안철수계와 반(反) 안철수계 간 계파 싸움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만약 전당대회에서 안 전 대표가 당선될 경우, 향후 바른정당과의 연대·통합 등 구체적 정계 개편 시점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오는 8·27 전당대회 직후 열릴 ‘정기 국회’가 지방 선거 전 분당을 점칠 가늠자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전당대회 이후 바로 정기 국회가 예정돼 있다. 안 대표 체제에서 호남 의원들이 보수 야당과의 연대를 묵인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과의 정계 개편 키는 민주당에 달려 있다고 서 소장은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이 국민의당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력에게 거물급 자리를 제안하면 움직이겠지만, 민주당은 인력이 넘치는 상황인 데다 추미애 대표도 국민의당을 배척하는 스탠스를 보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내에서도 통합론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대통령 지지율이 추락할 경우 통합 가능성이 있다고 서 소장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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