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익 한국외교협회 명예회장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미국과 북한의 ‘말폭탄’으로 한반도에 때 아닌 전쟁위기론이 불어닥쳤다. 북한이 지난 7월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게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이후 미국과 북한은 전례 없던 설전으로 전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일각에서는 지나친 전쟁위기론에 대해 비난도 쏟아졌다. 하지만 북한을 둘러싸고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의 입장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탓에 무턱대고 안심하고만 있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일요서울은 외교관계 원로인 한국외교협회 정태익 명예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핵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북 대화 제의…“가능성 희박, 현실적인 평화 대안 아니다”
대화 환경 조성 먼저… “핵에는 핵으로, 공포의 균형 필요” 

 
한국외교협회 정태익 명예회장은 외무고시 2회 출신으로 이집트·이탈리아·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외교부와 청와대 등을 두루 경험한 그는 외교관계 원로로 지금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 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8일 오전 11시 서초동에 위치한 한국외교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북한은 미국독립기념일인 7월 4일 대륙간 탄도미사일 화성-14형을 쐈고 7월 28일에는 다시 대륙간 탄도미사일 14형을 발사했다. 2006년 10월 첫 번째 핵실험을 강행한 이래 2016년 9월까지 다섯 번의 핵실험도 했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북한의 행위가 국제평화와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야기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이를 중지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결의해 왔다.

유엔안보리는 8월 6일 북한산 석탄, 철광석, 해산물 등의 전면 수출금지 내용을 담은 안보리 대북제제 결의(2371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중단할 의사가 없다고 전명했다. 더 나아가 8월 9일 화성-12형으로 괌 주변에 포위사격을 단행하겠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발언에 이어 생각지 못한 일이 북한에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궁극적으로 미국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시설을 미국이 무력으로 파괴하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북한에 무력을 사용할 때 북한이 무력으로 보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면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끊임없이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8.15 경축사를 통해서도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촉구하고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외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를 제의했다. 문제는 북한이 우리 측 대화 제의에 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평화 대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핵전쟁이 일어날 심각한 안보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강력한 한미동맹이 우리의 안보 초석임을 인식해야 한다. 대북 대응 과정에서 한·미 양국은 일방적인 제의나 조치를 자제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미국은 어떠한 군사 옵션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최대 압박과 대북협상이라는 두 가지 대안으로 대응하고 있다.

첫째는 최대 압박방안으로 중국과 러시아로 하여금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토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둘째는 최대 압박 방안을 철저히 시행한 후 적정한 시점에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장하는 쌍중단(북핵 미사일 실험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방안과 유사한 협상에 의한 타결방안이다.
 
- 문재인 정부는 북핵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가 쥐었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런가.

▲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레버리지(지렛대)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 정부는 핵 도발을 계속 강화하고 있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선제적 자세로 미국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조만간 핵 장착 ICBM을 실전에 배치하면 확장억지(핵우산)는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한미가 핵 사용 결정권을 공유하거나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핵에는 핵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북억지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핵 보유에 대한 미국의 여론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국가가 된 상황에서 한국의 핵무장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플러스가 된다면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해 남북한 간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북한에 대한 위험한 선제공격이나 예방공격을 통해 전쟁 가능성을 야기하는 것보다 평화적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위해서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

▲ 문재인정부의 남북대화 의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희망적인 사고는 국민의 인식과 이해를 오도할 수 있다. 북한에게 베를린 제안을 수락하고 군사회담 및 적십자회담에 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현실적인 대화가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구체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과 한미원자력협정 범위 내에서 핵무장이 필요한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북한과 중국은 상당히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중국과 북한이 대미 대결의지를 명백히 천명하고 나선 지금의 판도에서 한·미의 대중, 대북 유화자세와 대화 제의는 유용한 전략으로 평가 되기 어렵다.

핵무장 노력은 끊임없는 난관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한·미 동맹의 테두리 안에서 지속돼야 한다. 북핵문제는 북한 문제며 북한 문제의 궁극적 해법은 한반도 통일이다.
 
-올바른 대북정책을 위해 문재인정부에 조언한다면.

▲ 한반도 통일은 어떠한 경우라도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이어야 한다. 평화통일은 전쟁을 각오하는 무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로마의 격언이 새삼 우리의 각오를 일깨워주는 금언으로 인식되는 현재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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