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인 정당발전위원회(정발위)를 둘러싼 당내 내홍을 계기로 추미애 대표와 친문 세력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양측의 ‘치킨 게임’은 일단락된 형국이지만 이번 사건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추 대표-친문 갈등설을 재확인시켜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은 혁신의 핵심 사항인 공천룰을 놓고 갈등을 빚었는데 ‘선수가 룰을 짜느냐’는 친문계의 반발과 ‘사심은 결코 없다’는 추 대표 측 반박으로 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에 민주당은 공천룰을 정발위가 아닌 별도 기구에서 다루기로 하면서 갈등은 봉합된 모양새다. 추 대표가 한 발 물러섰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일보후퇴’한 추 대표가 내년 지방선거를 넘어 더 큰 꿈을 꾸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대선 때부터 친문과 수차례 충돌…‘정발위 사건’으로 폭발
공천권 두고 “선수가 룰을 정하냐” vs “사심 없어…시도당 폐단 개선”
秋-친문 갈등설 재부상…“독단적 당 운영·자기정치 몰두” 비판도
秋의 종착지는? 내년 지방선거 승리 후 국무총리로 입각

 
현재의 민주당 공천룰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였던 2015년 김상곤 혁신위원장(현 사회부 총리)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이른바 ‘김상곤 혁신안’으로 불리는 이 안은 중앙당과 시도당이 공천권을 나눠 행사해 지방 권한을 강화하고, 공직선거 1년 전까지 경선룰을 확정해 발표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 격이 될 내년 지방선거를 1년도 안 남은 시점에 공천룰을 두고 ‘내전’이 발발했다.
 
秋, “직접 민주주의 실현”
vs 친문 “공천권 장악”

 
추 대표는 정발위라는 당 혁신 기구를 만들어 내년 지방선거에 대비해 공천 미세 조정을 추진코자 했다. 중앙당-시도당 간의 견제와 균형, 당원권 강화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 실현, 당의 현대화 등이 추 대표가 내세운 명분이었다.
 
그는 지난 21일 오찬 간담회에서 “혁신안이 중앙당의 패권을 개선하려고 만든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중앙당의 패권을 시도당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비판하며, “김상곤 혁신안이 ‘바이블’(성서)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시점과 관련해서는 대선 이후 산적한 현안 탓에 공천룰 문제를 다루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내 친문 의원들을 중심으로 다수 의원이 추 대표의 방침에 반발하면서 당은 깊은 내홍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발위에 대한 추진 시기, 과정, 방식 등을 놓고 추 대표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탄핵감”이라는 날선 발언도 등장했는데, 그간 추 대표의 독단적인 당 운영 방식에 대해 쌓였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현 시점에서의 공천룰 변경은 민주당 당헌 106조에 적시된 ‘지방선거 후보자 공천 절차를 선거일 1년 전에 확정해야 한다’는 규정을 위배한 것이고, 공당이라면 혁신을 위한 위원회 구성을 공론화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당 대표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소통이 없었다는 게 친문계 의원 측 입장이었다. 추 대표 측근인 최재성 전 의원을 ‘룰’을 다룰 정발위 위원장에 선임한 것도 비판 대상이 됐다.
 
결국은…
‘자기 밥그릇 싸움’

 
양측이 의견이 팽팽히 맞섰지만 이는 결국 ‘자기 밥그릇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친문 진영에서는 추 대표가 내년 지방 선거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만큼 “‘선수’가 룰을 정하냐”고 의심했다. 경기 지사 출마를 염두에 둔 최재성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자신의 페이스북에 “ 추 대표가 혁신을 하자면서 지방선거에 사심을 갖는다면 제가 가장 강력히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추 대표가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당 대표’로서 공천권을 최대한 행사하기 위한 수순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내년 8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추 대표가 시도당 공천권을 다시 중앙당으로 가져오려 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경우 추 대표는 내년 6월 13일로 예정된 지방선거 때 사실상 공천권을 쥘 수 있는 위치인 셈이다. 때문에 일부 의원들과 시도당을 중심으로 항의가 빗발쳤다.
 
반면 일부 친문 의원들과 시도당위원장이 시도당 공천 절차 과정의 권한에 대해 추 대표에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이를 지키기 위해 반발하고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 대표는 “지금 시도당 위원장은 9월부터 12월까지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을 평가한 뒤 자신은 공직자 사퇴 시한에 맞춰 위원장을 사퇴하고 출마할 수 있어 문제가 있다”며 시도당에 대한 견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에 대표적 친문이자 경기도당위원장인 전해철 의원 등 일부 의원들과 시도당 측에서 가장 앞장서 목소리를 내왔다는 해석이 나온다.
 
추 대표와 친문계와의 갈등은 이번 사건뿐만 아니다. 특히 인선과 관련해 친문 진영과 대립이 잦았다.
 
지난 대선 당시 추 대표가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김민석 전 의원(현 민주연구원장)을 선대위 상황실장에 임명한 데 이어 선거 직후에는 친문계로 분류되는 당시 안규백 사무총장을 경질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또 당에서 국무위원을 추천하는 공직자 인사추천위원회 제안을 했으나 대통령의 인사권 부담을 이유로 친문계가 반발해 무산됐다.
 
지난달 추경 불참 사태나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 추 대표가 쏟아낸 강경 발언은 한쪽에서는 “할 말 한다”는 지지가 쏟아진 반면, 다른 쪽에서는 “너무 자기 정치에 몰두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원내 지도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친문계와 원내지도부와 크고 작은 다툼을 겪은 추 대표는 이번 정발위 사안을 계기로 내년 지방 선거를 거쳐 더 큰 꿈을 꾸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우선 현재 추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박원순 현 시장의 3선 도전이 확정되면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출마하지 않으면 내년 8월까지 당 대표 임기가 보장된 만큼 지방 선거 이후 ‘국무총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추 대표 측은 “추 대표가 이번 지방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당 대표 임기를 마친 뒤 총리 입각을 기대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만약, 총리 입각이 불발된다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돼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에 도전할 의중인 것으로도 전해진다.
 
갈등은 봉합,
불씨는 여전

 
민주당이 공천룰을 지방선거기획단(기획단)이라는 별도의 기구를 꾸려 논의키로 결정하면서 일단 갈등은 봉합된 모양새다. 정발위는 당원권 강화와 당의 체력 강화, 체질 개선, 문화 개선, 그리고 100만 당원 확보와 인프라 구축 기구로 활동할 계획이며, 기획단은 지방선거와 관련한 당헌·당규의 해석, 지방선거 시행 세칙 등을 다룰 방침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지방 선거 관련 룰을 기획단에 제안할 수 있는 ‘제한적 제안권’이 정발위에 있어서다. 정발위의 활동·논의 범위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향후 기획단이 지방선거 공천룰을 당헌·당규에 수정하는 절차가 있을 경우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다만 정발위 참여 위원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 같은 지적은 기우라는 해석도 있다. 지방선거 출마가 확실시되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와 측근들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정발위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서실장 출신 천준호 강북갑 지역위원장과 안희정 충남지사의 측근인 이후삼 민주당 제천·단양지역위원장이 참여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본인이 직접 위원으로 합류했다.
 
지방 선거에 출마하는 당사자와 그 측근들이 참여한 만큼 이 기구에서 공천룰을 다룰 여지는 차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시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에 공천 관련 문제는 기획단으로 넘기고 여기서는 기본적으로 관여 안 하기로 했다”며 “당내 의견 충돌 문제에 관여할 일이 없어져서 장기적인 정당발전 문제와 정당혁신에 집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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