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보수로 살아가기 힘들다”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보이고 있다. 연령층에 관계없이 문팬(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팬클럽)을 자처하는 모습이다. 보수 성향을 가진 20대들은 ‘청년 보수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한다. 주변인들에게 보수 성향을 드러내는 순간 ‘일베충’, ‘꼰대’, ‘적폐세력’ 등의 비난을 듣고 심지어 ‘왕따’까지 당하기 때문이다. 또 SNS에는 ‘이게 다 야당(자유한국당) 때문’이라는 문구까지 유행하고 있어 청년들 사이에서 보수의 입지가 축소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19대 대선, 20대 진보‧중도 성향 투표자 78.2%···한국당 8.6%에 그쳐
SNS서 유행하는 ‘이게 다 야당 때문’ 놀이···전문가들, 이념적 양극화 우려


대학생 A(24)씨는 대학 동기들과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입을 다문다. 자신이 가진 보수 성향 탓이다. 동기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대다수가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어 일명 ‘보수 커밍아웃’이 두려운 것이다.

A씨는 “부모님의 정치 성향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보수인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수적인 정치 성향에 관심을 가져 왔다”면서 “동기들에게 보수 커밍아웃을 하게 되면 ‘일베충’, ‘꼰대’, ‘틀딱충’ 등의 비속어들이 날아올 것이다. 그들은 평소에도 보수를 그런 식으로 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B(26)씨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B씨는 매번 직장 상사와 점심 식사를 같이한다. 상사에게 보수라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식사 중 텔레비전에서는 여러 정치적인 뉴스들이 가득하다. 직장 상사는 때를 놓치지 않고 진보 정권을 찬양하는 식의 말을 늘어놓는다. 적절한 논리로 다른 측면도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상사이다 보니 고개를 끄덕이며 불편을 감수한다. 상사는 ‘보수’라는 단어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B씨는 “전 정부의 탄핵 사태로 인해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진보로 많이 넘어간 것 같다. 대다수의 진보 성향을 가진 주변 친구들을 보면 그동안 정치에 1%도 관심 없던 사람들이 최근, 보수 죽이기에만 전념하는 양상을 보인다”며 “보수와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적절히 나뉜 균등한 사회가 되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나라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아쉬워 했다.

이어 “직장 상사는 업무적으로 배울 점도 많고 성실한 사람이다. 하지만 강요하는 식의 정치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은 심정”이라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쉽게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지 못한다. 이 시대에 청년 보수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라고 밝혔다.
 
“유행처럼 번지는
진보 집중 현상 우려“

 
20대 청년들 중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속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제19대 대선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투표자 중 47.6%는 진보 성향인 문재인 후보, 17.9%는 중도 성향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12.7%는 진보 성향인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찍었다. 20대 투표자의 78.2%가 진보 또는 중도 성향 후보를 지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보수 성향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8.6%에 그쳤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을 더해도 21.8%다. 이러한 결과를 봤을 때 20대의 10명 중 8명은 진보‧중도 성향, 2명은 보수‧중도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청년 보수들은 현 정부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들이 또래에게서 ‘적폐 세력이다’ ‘꼰대다’ ‘애어른이냐’ 등의 비난을 받으며 ‘왕따’ 당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C(27)씨는 “일부 보수의 그릇된 방향이 보수 모두의 정체성인 것처럼 왜곡된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적 성향이 중요한 부분인 것은 알지만 보수 성향의 사람들을 왕따로 모는 사회적 현상은 다수가 소수를 괴롭히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면서 “정치적인 적절한 논리로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10~20대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진보 집중 현상이 논리적인 분별력조차 사라지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야당 때문이다’, ‘이게 다 야당 탓’ 등의 문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칭찬하는 글과 함께 덧붙이는 이용자들이 있는 반면, 음식 사진과 본인의 일상 등을 기록해 게재한 글에까지 ‘#야당때문’이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현실이다.

이러한 문구가 퍼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한 누리꾼이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에 ‘이게 다 야당 때문, 자유한국당 때문으로 몰고 가자’는 취지의 댓글을 남긴 것이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친문(친문재인) 성향이 강한 커뮤니티 등에서 ‘야당 탓하는 거 재미있네’라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며 각종 패러디물이 쏟아졌다. 이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했던 문장을 패러디해 야당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고 있다는 프레임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들이 사회의 이념적 양극화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같은 성향의 집단에서는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지만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직장인 D(29)씨는 “진보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상한 유행들이 정치적 성향으로 번지고 있어 자세한 배경들을 모르는 10대들은 무방비로 노출된 격”이라며 “청년 보수들은 기존 기득권 세력에 대한 질타도 서슴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진보 성향의 누리꾼들을 보면 아무 논리 없이 보수에 대한 욕설과 비난을 늘어놓기도 한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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