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우월주의 폭력사태에 양비론 꺼내 든 트럼프
우호 세력, 트럼프에 등 돌리고 군에서까지 비판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공인이라면 미국이든 어느 나라에서든 말을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 미국에서는 인종주의적 편견이 들어간 발언을 하면 큰일 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즘 겪고 있는 설화(舌禍)는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에서 가장 큰 은행인 JP모건 체이스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미국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유혈사태를 촉발한 백인우월주의에 맞서는 반(反)인종주의 후원 대열에 합류해 인종주의에 맞서는 2개 단체에 총 200만 달러 기부를 선언했다. 이 은행은 또 시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샬러츠빌에도 별도로 5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JP모건은 “최근 (백인우월주의) 사건들이 미국 사회의 깊은 분열상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이에 맞서는 노력을 더욱 배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P모건의 결정은 제이미 다이먼 회장의 뜻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군으로 꼽혔던 다이먼은 최근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사실상 백인우월주의를 옹호한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해, 임직원의 적극적인 호응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백인우월주의 반대 움직임도 확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JP모건에 앞서 애플의 팀 쿡 CEO는 총 200만 달러를,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아들이자 21세기 폭스를 이끄는 제임스 머독도 100만 달러를 각각 반(反)인종주의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할리우드 미남 배우 조지 클루니(56)와 부인 아말 클루니(39)도 증오·인종주의 반대운동 단체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할리우드 연예 매체들이 지난달 21일 보도했다. 클루니는 성명에서 “아말과 나는 현재 진행되는 동등함을 위한 싸움에, 우리 목소리와 재정적 지원을 보태고자 한다“면서 “증오와 편견에 양면이란 없다"고 강조했다. 클루니 부인인 아말은 레바논계 영국인 인권변호사로, 옥스퍼드대와 뉴욕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인권 변론에 주력해 왔다.

미국에서는 지금 샬러츠빌 사태의 후유증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샬러츠빌 사태는 지난달 12일 백인우월주의 시위가 폭력사태로 번져 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문제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태에 대해 내놓은 반응이었다. 그는 “많은 쪽의 증오, 편협, 폭력”을 비난했다. 그런 다음 강조하느라고 “많은 쪽의(on many sides)”라는 대목을 한 번 더 되풀이했다. 이것이 문제였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명백히 나빴다”라고 했어야 했는데 발언을 “이 쪽도 나빴고 저 쪽도 나빴다” 식의 양비론(兩非論)으로 몰고간 것이다. 이것은 인종문제, 미국에서 구체적으로 흑백 문제에 대한 트럼프의 본심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었다. 즉각 트럼프에 대한 비난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실언(失言)으로 자초한 트럼프의 고립이 확연히 드러난 날은 지난달 17일이었다. 경제계의 트럼프 우군들과 공화당 동료 정치인들, 심지어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두 전직 공화당 대통령까지 트럼프를 비난하고 나섰다. 남미 방문을 중단하고 황급히 귀국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휴가 중인 트럼프를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만난 뒤 그가 트럼프 편이며 그의 발언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이 거의 유일한 트럼프 감싸기 사례로 보일 정도였다. 펜스는 역시 트럼프 편이었다. 그는 남미 출장 중 칠레 대통령과 함께한 자리에서 “대통령은 이 비극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 왔다. 그리고 나도 그래 왔다”며 “나는 일요일 밤 이 가슴 아픈 상황에 대해 길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과 함께 하며 그 발언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양분된 반응을 보였다. 일부는 트럼프를 거명하며 비난했지만 다른 일부는 인종주의와 백인 우월주의가 나쁘다는 식으로 일반론을 펴는 데 그쳤다.

샬러츠빌 관련 발언으로 졸지에 인종주의자가 돼 버린 트럼프는 이후 며칠 동안 발언 후유증을 톡톡히 겪어야 했다. 그 자신이 기업가인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후 제조위원회와 전략·정책포럼이라는 대통령 직속의 두 자문기구를 세우고 주요 기업인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런데 ‘인종주의자 트럼프’에 환멸을 느낀 거물급 CEO 8명이 트럼프 발언이 나온 뒤 사흘에 걸쳐 제조위원회에서 탈퇴했고, 전략·정책포럼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해산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떠나는 위원들에게) 압력을 넣느니 내 쪽에서 이들 기구를 해체한다”고 발표했다. 모두 7명으로 구성된 미국 합동참모본부(JCS)의 장성 5명이 대단히 이례적으로 미국 국내정치에 관여해 백인 우월주의에 반대한다는 공식 성명을 냈다. 미국 해병대 사령관 로버트 B. 넬러 대장은 “미 해병대에는 인종적 증오나 극단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명예, 용기, 헌신이라는 우리의 핵심가치는 해병이 생활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규정한다”고 말했다. 존 리처드슨 해군 참모총장은 “샬러츠빌 사태는 수용할 수 없으며, 불관용과 증오에 영원히 반대하는 미국 해군에서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육군참모총장 마크 밀리 대장, 공군 참모총장 데이브 골드파인 대장, 국가방위군 사령관 조지프 렝웰 대장도 각각 비슷한 성명을 냈다. 밀리 대장은 자기가 트위트에서 하는 말은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그것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것이다. 나는 국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나는 내 동료들의 좋은 질서와 기율을 원한다”고 말했다.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공동성명을 내고 “인종적 편협, 반(反)유대주의, 그리고 모든 형태의 증오”를 비난했다. 공화당 국회의원들이 슬슬 트럼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심지어 바다 건너 영국에 정치권에서도 트럼프 비난이 나왔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관한 의견을 물은 기자에게 “파시스트 견해들을 제기하는 이들과 그것에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는 아무런 같음이 없다고 본다”며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모든 이는 극우 견해들을 비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함으로써 트럼프의 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트럼프의 단골 비판자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의 비판은 매우 매섭다. “어제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샬러츠빌 집회에 참석한 백인 우월주의 신나치 및 KKK 단원들과 헤이어 여사(샬러츠빌 사태 희생자의 어머니) 같은 사람들 사이에 도덕적 같음이 있다고 다시금 주장함으로써 한 걸음 퇴보했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나는 이러한 도덕적 같음에 찬성하지 않는다.”

곽상순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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