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정치적 타살’ 의혹… 테러 가능성
장준하 대책委 “머리 가격으로 숨진 뒤 추락”


“몸에 상처 하나 없는데 어떻게 추락사라고 할 수 있나요”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에서 항일운동가 출신 재야운동가 장준하(당시 57세) 선생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장 씨가 등반 중 실족사했다고 발표했지만 유족 및 재야단체 등은 ‘정치적 타살’ 의혹을 제기하며 줄기차게 진상규명을 요구해 왔다.

그의 사망을 둘러싼 수수께끼가 3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가운데 지난 2005년 한 언론은 당시 사법기관 관계자로는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 장 선생의 사체를 목격한 이 모씨를 인터뷰했다. 당시 순경으로 포천경찰서 이동지서에 근무하다 지난 2003년 퇴직한 이 씨는 30년 전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사고 당일 근무였는데 경기도경으로부터 장 선생의 추락사 소식을 알리는 경비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면서 “지서로 신고가 오지 않고 도경에서 먼저 사고 소식을 안 것은 장 선생의 집이 도청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씨는 “지서에서 4㎞여 떨어진 사고 현장 입구에 가보니 관광버스가 보였고 장 선생의 일행이라고 밝힌 등산객들의 안내를 받아 사고 지점으로 갔는데 현장에는 의료진으로 보이는 군인 2-3명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면서 “동행자가 누군지를 물었고 김모(약사봉 등정 당시 장 선생이 일행을 빠져나와 약사봉으로 향할 때 혼자 뒤따라간 뒤 사고 사실을 일행에게 맨 처음 알린 인물)씨라고 했는데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이 씨는 “물이 흘러 이끼가 낀 14m 높이 절벽에서 떨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 선생의 몸은 깨끗했다. 몸에 핏자국이나 상처 하나 없었다. 머리는 비스듬히 동쪽을, 다리는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귀 뒤에 상처로 보이는 점(장 선생 사체 검안 의사가 ‘사체 검안소견’에서 지적한 오른쪽 귀 뒷 지름 약 2cm 함몰 부문을 일컫는 것으로 보임)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본서에 보고하기 위해 현장에서 내려오다 3명의 건장한 청년을 만났고 그들 중 한 명이 ‘본 대로만 진술해라’라는 말을 했다. 정보요원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장 선생 사건 이후 3개월 만에 인근 다른 지서로 옮긴 이 씨는 이듬해 고향으로 내려와 근무한 뒤 2002년 퇴직했다. 이 씨는 2001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의 첫 현장 조사할 때 사고 현장 안내를 맡았다. 이 씨는 “당시 사고 장소를 아무도 몰라 안내를 맡았는데 사고 1개월 뒤 백기완 씨 등이 세운 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준하 선생의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김 씨와 관련해서는 “그가 정보기관 요원인지 포섭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001년 의문사위에서 대질신문을 했는데 김 씨가 당시 자신이 현장에 있었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말을 해 당황했었다”고 말했다. 의문사위에 9번이나 출석해 조사를 받은 이 씨는 “당시 현장에 첫 출동한 경찰관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추락사라고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장준하 선생이 “머리 가격에 의해 숨진 뒤 추락했다”는 정밀감식 결과도 최근 나왔다. 장준하선생 사인진상조사 공동위원회는 지난 2013년 3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장준하 선생 유골 정밀감식 결과를 발표했다.

정밀감식 조사를 한 이정빈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장준하 선생의 머리뼈 함몰은 외부 가격에 의한 것이며 가격으로 즉사한 이후 추락해 엉덩이뼈(관골)가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는 소견을 밝혔다.

이 교수는 “장 선생이 추락에 의해 머리뼈가 함몰됐으면 반대편인 왼쪽 눈 위 안와(안구 주위 뼈)가 함께 손상돼야 하는데 장 선생의 안와는 깨끗하다”라며 “이는 추락보다 외부 가격에 의해 머리뼈가 손상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머리뼈와 엉덩이뼈가 추락 때문에 손상됐다면 어깨뼈도 부러져야 하는데 장 선생의 어깨뼈는 멀쩡했다”며 “추락사라면 몸에 출혈이 있어야 하는데 출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머리에 강한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서 즉사하게 되면 목등뼈에 있는 혈액순환 기능이 멈춰 출혈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추락하면서 바위 등에 긁힌 상처가 몸에 없는 것으로 미루어 장 선생이 약사봉 계곡 지면 위로 미끄러져 떨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머리뼈를 가격한 물체는 두피 손상 부분이 좁은 것을 고려하면 망치보다는 아령이나 큰 돌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교수는 결과 발표를 마치고 “국민대책위의 의뢰를 받고 나의 전문 분야여서 참여한 것일 뿐 정치적 의도는 없다”며 “오히려 의뢰를 거절했다면 그것이 바로 정치적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장 선생의 유골은 지난 2012년 8월 묘소 뒤편 석축이 무너져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유족 측은 장 선생 의문사 사건 재조사와 진상 규명을 청와대에 요구, 사건이 국가권익위원회를 거쳐 당시 행정안전부로 배당됐지만 행안부는 조사권한이 없어 진상규명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장준하 암살의혹 규명 국민대책위원회, 민주당 장준하 선생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이 사인조사 공동위를 구성, 2012년 12월부터 유골 정밀감식 조사를 진행했다. 김대중 정부 때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 선생 의문사를 조사한 적이 있지만 당시 유족 측이 유골감식에 난색을 보이면서 ‘진상 규명 불능’으로 결론이 난 바 있다.

당시 장준하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정밀감식에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한법의학회에 참여를 요청했지만 참여가 어렵다는 회신을 받아 이 교수에게 의뢰한 것”이라며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할 것이지만 권력에 진상 규명을 청원하거나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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