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김이수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9월11일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집권 여당이 후폭풍을 맞고 있다. 청와대나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상상도 못했다’, ‘부결될 줄 몰랐다’는 반응이 나왔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해 표결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여당 핵심 인사들이 ‘몰랐다’는 반응에 당·청이 지지율 고공행진에 안일하게 여소야대 정국을 본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헌정 초유의 이번 헌재소장 후보자의 국회 부결 사태로 그동안 당청관계를 비롯한 협치, 인사 등 문재인 정부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향후 국정운영에 험로가 예상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당청·협치·인사 ‘삐그덕’... 정무·인사 책임론 대두
- 문재인 정부 야4당 ‘허니문’ 끝나고 ‘가시밭길’ 예고

 
“부결될 줄 몰랐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여당 법사위 간사를 맡고 있는 전해철 의원이 14일 본지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나온 한탄이다. 전 의원은 국회 표결 전까지만 해도 150석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부결이었다. 그러면서도 전 의원은 “민주당 이탈표는 없었다”며 반대표를 던진 국민의당에 섭섭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표결이 이뤄진 9월1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무기명 투표에 여야 293명이 참여했고 찬성이 145표, 반대 145표, 기권1표, 무효 2표로 부결됐다. 출석인원 과반 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는 점에서 2표가 부족해 부결된 셈이다. 청와대 역시 ‘상상도 못했다’며 발끈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바로 브리핑을 열어 “야당이 부결까지 시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오늘 국회에서 벌어진 일은 무책임의 극치, 반대를 위한 반대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윤 수석은 부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민의당을 겨냥해 “헌정질서를 정치적으로, 정략적으로 악용한 가장 나쁜 선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이번 사건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에게 있는지 국민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이런 반응이 나오자 야당은 발끈하고 나섰다. 야당은 일제히 “오만과 독선의 극치다”, “정부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된다”고 청와대를 거칠게 비판했다. 야당 4당 특히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김이수 후보자 부결을 계기로 반전을 노리고 있는 모습이다.
 
청와대·여당, “부결 전혀 예상 못했다” 당혹
 
그동안 원내 제1야당이지만 한국당은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70%대 높은 국민적 지지율에 압도를 당하면서 메아리 없는 비판만 쏟아냈다. 하지만 이번 부결 사태를 계기로 제1야당으로서 국민에게 존재감을 알렸다는 자평을 하고 있다. 한국당 소속 의원 107명도 단 5명을 제외하고 모두 참석, 반대표를 던져 결속력을 다졌다.
 
‘김이수 부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국민의당이었다.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대표가 홍준표 대표에게마저 밀리면서 굴욕을 맛봤다. 당지지 기반인 호남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크게 뒤졌다. 또한 당 대표 선거를 치르면서 사분오열되고 탈당설이 횡행하며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이번 자유투표를 통해 김 전 후보자를 부결시키면서 집권 여당에게 원내 3당으로서 캐스팅보트의 힘을 보여줬다.
 
여당에서는 낙마한 김 전 후보자가 전북 고창 출신이라는 점에서 국민의당이 호남 민심을 건드려 향후 호남에서 지지율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호남 출신 김이수가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문제”라며 “이번 투표 결과는 인사 난맥과 독선에 대한 경고”라고 강변했다.
 
실제로 이번 ‘김이수 부결사태’ 과정에서 청와대나 여당 모두 부결될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당 지도부의 경우 표 계산이나 야당 단속을 제대로 못했고 대통령을 대신해 대정치권 소통과 협력을 구하는 정무라인 역시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나아가 그동안 집권 여당이 강조해 온 당청일체나 야당과 협치 그리고 인사 시스템의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향후 후폭풍이 클 전망이다.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총대는 우원식 원내대표가 멨다. 부결된 이후 우 원내대표는 최고위원·중진의원 긴급 연석회의에서 임명동의안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강력히 만류해 사퇴의 뜻을 접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당 지도부에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남겼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당 지도부는 급한 발등의 불을 껐지만 확실한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임명동의안 표결을 그것도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밀어붙인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할 전망이다.
 
아울러 ‘김이수 부결’이후 청와대는 야당과의 협상 테이블 최전방은 원내대표이기에 전적으로 일임했다며 책임을 당 지도부에 떠넘기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이에 대해 비문 진영에서는 청와대가 직접 야당을 설득하고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여소야대’정국에 당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울러 ‘김이수 부결’ 사태와 맞물려 벌어진 박성진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부적격자’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과정에서도 당청관계의 불협화음이 노출됐다. 야4당이 모두 박 전 장관 후보자에게 ‘부적격’ 의견을 당론으로 삼고 청문보고서 역시 그대로 표결로 이어졌다.
 
그 사이 여당 의원들은 상임위장을 퇴장함으로써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당 의원들에게 최선의 방법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는 것이었지만 국민의당 장병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위원장이 표결을 고집하면서 그마저도 무산됐다.
 
특히 박 후보자의 경우 8월24일 중기부 장관으로 내정된 이후 9월14일 부적격 보고서가 채택돼 자진사퇴할 때까지 당청 간 이견이 존재했다. 여당 일부 의원들도 청문 과정을 거치면서 역사관과 종교관 논란으로 청와대에 다양한 경로로 ‘부적합’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자진사퇴’나 ‘지명철회’ 등 해법을 내놓지 않다가 막판 쫓기듯 ‘자진사퇴’로 정리했다.
 
지지율 고공 행진에 ‘여소야대’ 현실 무시
 
당청 관계의 이상기류뿐마 아니라 문 대통령의 대야 협치 리더십도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청와대는 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사태에 한 발 떨어져 있는 모양새지만 대정치권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정무라인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은 애써 감추고 있다.
 
정무 라인의 수장인 전병헌 정무수석은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당일 책임지는 모습보다는 비판의 화살을 국민의당에 돌렸다. 전 수석은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헌법기관장 인사를 장기 표류시킨 것도 모자라 부결시키다니 참으로 무책임한 다수의 횡포”라며 “국회가 캐스팅보트를 과시하는 정략의 경연장이 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여소야대’정국과 국민의당을 탓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대국회 소통과 협치 관련 대통령을 대신해 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전 수석 역시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게 정치권 시각이다. 오히려 청와대가 그동안 높은 지지율에 기대 너무 낙관적인 태도로 야당을 대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민의당의 협조가 있었고 호남 출신인 만큼 국민의당이 차마 반대표를 던지지 않을 것이라는 내부 자신감이 부결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낳은 결정적인 배경이라는 해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무 라인에 대한 재점검론도 여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인식한 전 수석 역시 브리핑 말미에 “지금도 대화와 소통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고 우리는 대화와 소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야당도 말로만 협치를 얘기하지 말고 행동으로 협치의 실천을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이수 부결’로 노출된 당청 관계 불협화음, 대야권 협치 부재와 더불어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인사 문제는 향후 국정운영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이수 전 헌재소장 후보자는 그동안 새 정부가 선보인 코드인사, 보은인사로 야당 내 누적된 불만의 희생자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20일이 지난 지금 낙마한 인사는 김 전 헌재소장을 포함 7명이다. 안경환 전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기정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 박성진 중기부장관 후보자 등이 낙마하거나 자진사퇴했다.
 
특히 이번 ‘김이수 부결’로 기세등등한 한국당과 국민의당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표결을 두고 여권과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일단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했던 국민의당은 김명수 후보자 인준안이 본회의에서 처리하기전 추미애 민주당 대표와 우원식 원내대표의 발언을 문제삼아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과 어떠한 절차적 협의도 없다고 경고했다.
 
추 대표는 김이수 후보자 인준안 부결사태 이후 국민의당을 향해 ‘땡깡’이라고 표현했고 우 원내대표는 ‘적폐 연대’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당사자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국민의당의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인준안의 본회의 통과를 자신할 수 없는 처지다.
 
국민의당 투표가 원칙적으로 자유투표로 진행되는 만큼 최소 20표의 찬성표가 나올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121석의 민주당과 6석의 정의당, 새민중정당 2석, 무소속 정세균 국회의장까지 모두 찬성표를 던진다고 해도 130석에 불과하다.
 
김명수 부결? 임기 3년 동안 ‘여소야대’ 지속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경우 본회의에 참석하더라도 반대표를 던질 확률이 높다. 이번 김이수 부결사태로 오랜만에 존재감을 보인 한국당은 김 후보자까지 부결시켜 문재인 정부의 기를 확실하게 꺾겠다고 벼르고 있다. 바른정당의 경우 청와대 민정·인사 수석 책임론을 들고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여소야대 정국에 김명수 인준안까지 부결될 경우 정국은 온전하게 야권의 손아귀로 넘어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을 공산이 높다. 정국 주도권은 야당으로 넘어가고 김이수 부결사태 후폭풍과는 차원이 다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인위적인 정계 개편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다음 총선이 개최되는 2020년 4월까지 여소야대 정국은 지속될 전망이다. 최악의 경우 김이수 부결사태를 계기로 자신감을 되찾은 2, 3당이 김명수 후보까지 부결시킨다면 문재인 정부 임기 3년 동안 야당에 발목 잡혀 허송세월할 수도 있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당청, 협치, 인사시스템에 대한 전면적 쇄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의 리더십도 본격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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