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정보 누설했나, 은폐 시도 있었나 등 의혹 제기
옷값 대납 요구·호피 무늬 반코트 배달, 반환 시기 등 쟁점

‘고급옷 로비’ 의혹 사건은 1999년 당시 한국 사회를 강타한 최대의 스캔들이었다. 사건의 발생 시점은 당시 고위 공직자 부인들이 주무대인 강남의 ‘라스포사’ 등 의상실을 드나든 때를 기준으로 지난 1998년 12월 중순부터 1999년 1월 8일까지 불과 20여 일간이었다.

사건의 외형적 성격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일부 고위공직자 부인들의 ‘해프닝’으로 치부될 정도의 것이었다. 그러나 1억 달러가 넘는 외화 유출 범죄를 저지른 재벌회장 부인과 그 재벌을 수사하던 검찰총수의 부인, 그들 주변의 다른 고관부인 등 사건 관계자들의 특수한 신분과 함께 한 벌에 수백만∼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의류가 로비용으로 쓰인 의혹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사직동팀 내사→서울지검 수사→국회청문회→특별검사 수사→대검 수사로 계속 이어져 ‘5심(審)’이란 말을 낳을 정도로 굴곡과 반전을 거듭했다.

결국 이 사건의 실체는 최순영(崔淳永) 신동아그룹 전 회장 부인 이형자(李馨子)씨가 남편 구명을 위해 김태정(金泰政) 전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延貞姬)씨를 상대로 로비를 시도하다 남편의 구속 방침이 확정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로비를 포기한 후 김 전총장을 낙마시키려 전면적인 공격을 벌인 것으로 특검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이 씨가 로비를 포기한 줄 모르고 강인덕(康仁德) 전 통일부장관 부인 배정숙(裵貞淑)씨와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鄭日順)씨가 이 씨에게 로비 명목으로 옷값 대납을 요구했던 것이 사건의 빌미가 됐던 것이다.

이 씨측은 배 씨등의 옷값 대납 요구를 거절한 뒤, 이들의 비리를 청와대에 투서하는 한편 주변의 기독교 지도자 등을 통해 소문을 확산시킴으로써 사직동팀의 내사도 시작됐고, 결국 언론을 통해 공개되도록 했다.

이 와중에 연 씨가 정 씨로 부터 호피무늬 반코트를 공짜로 건네받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라스포사 장부 조작에 개입하고 정 씨로 하여금 남편인 김 총장에게 자신을 두둔하는 내용의 허위 편지를 쓰게 하는 등 은폐조작과 함께 ‘거짓말 게임’에 나섬으로써 의혹이 증폭됐다는 것이 당시 특검의 판단이었다.

특검팀은 두 달간의 수사를 통해 사직동팀이 연 씨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내사를 진행한 사실을 확인했으며, 위계질서가 엄격한 검찰이 법무부장관 부인을 조사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졸속수사를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옷로비 의혹사건은 특검의 수사가 진행되던 중 배정숙 씨가 최초보고서를 신동아그룹 전 부회장 박시언(朴時彦)씨가 최종보고서를 각각 공개하면서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결국 박주선(朴柱宣)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부터 전달받은 최종보고서를 박시언 씨에게 건네준 김 전총장이 전직 검찰총장으로는 사상 처음 구속되고, 박 전비서관이 낙마한뒤 사법처리되는 미증유의 사태로 비화됐다.

또 박 전 비서관에 대한 수사를 둘러싸고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간에 갈등이 표출되면서 이종왕(李鍾旺) 당시 수사기획관이 사표를 제출, 검찰 조직이 술렁이기도 했다.

‘옷 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국회 법사위의 진상조사는 사흘간의 증인신문을 끝으로 1999년 8월 25일 종료됐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연정희, 배정숙, 이형자, 정일순 씨 등 핵심 관련자 중 누군가는 진실을 호도했음이 분명하나 대질신문까지 벌였음에도 이를 가려내지 못했다.

오히려 여·야 간 정치공방의 장으로 변질, 그간 제기됐던 의혹을 더욱 증폭시킴으로써 청문회의 한계를 다시 한번 드러내는 전철을 답습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검찰이 내린 결론은 배정숙 씨가 최순영 회장의 구명을 빌미로 이형자 씨에게 실체도 없는 옷값 2천 400만 원의 대납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배 씨는 “옷값 대납을 요구한 적이 전혀 없다”면서 자신을 희생양으로 만들기 위한 ‘짜맞추기식’ 수사였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연정희 씨도 “옷 로비를 받은 적도 없고, 옷값 대납요구 사실도 알지 못한다”면서 무관함을 강조했다.

이형자 씨는 그러나 배 씨가 옷값 2천 200만원을 대납할 것을 요구, 이를 준비해 뒀으나 배 씨와 정일순 씨로부터 전화 등을 통해 연 씨에게 실어보낸 옷값(밍크코트 긴 것, 짧은 것, 망토 등) 기천만 원을 추가로 요구해 거절했다고 증언했다.

이 씨의 동생 영기 씨는 정 씨로부터 옷값이 1장(1억원) 가까이 된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그런 전화를 한 적이 없다”고 부인, 이번 사건을 성립시키는 옷값 대납 요구가 실제 있었는지, 없었는지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혼선을 가중시켰다.

연정희 씨는 자신도 몰래 호피무늬 반코트가 집에 배달된 사실을 2∼3일 뒤 발견, 운전기사를 통해 돌려줬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결과와 일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형자 씨의 동생 영기 씨는 “정일순 씨가 1998년 12월 19일 전화를 걸어와 ‘연 씨의 차 트렁크에 밍크 몇벌과 외제옷을 실어보냈다’면서 옷값을 대납하도록 언니를 설득해 달라고 했다”고 증언, 호피무늬 반코트가 당일 연 씨에게로 건네졌음을 확인했다.

이 씨도 동생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밝히면서 “정 씨로부터 12월 21일까지 대납하라는 독촉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배정숙 씨는 “이은혜(본명 이순희·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씨로부터 연 씨가 1999년 1월 7일 포천기도원에 갈때 호피무늬 반코트를 입은 것을 봤다고 들었다”고 진술, 코트 반환일자가 1월 7일 이후임을 시사했다.

정 씨는 이에 “이형자 씨 자매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면서 “12월 26일 차에 실어보냈고 1월 5일 돌려받았다”고 강변, 연 씨가 호피무늬 반코트를 영득(취득)할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해소되지 못했다. 최순영 회장 외화유출사건 수사기밀을 연정희 씨가 누설했다는 의혹은 배정숙 씨의 증언을 통해 제기됐다.

배 씨는 “1998년 11월 7일 신라호텔에서 무색회 봉사모임이 끝난뒤 연 씨로부터 (최 회장 사건을) 12월말까지 보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며 당시 연 씨는 최 회장이라고 하지 않고 ‘63’이라고 지칭했다”고 진술했다.

이형자 씨와 이 씨의 사돈 조복희 씨도 배 씨로부터 이런 얘기를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연 씨는 그러나 조 씨를 ‘낮은 울타리회’에 가입시키자는 배 씨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최 회장 사건 때문이라고만 했다”면서 “연말까지 수사를 보류하고 있다는 등의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형자는 “사직동팀 내사를 받은후 김태정 씨가 보낸 검찰계통 사람들로부터 입다물고 있으라는 위협을 받은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씨는 또 배정숙 씨가 사직동에서 조사를 받을 때 ‘총장 부인이 이 말을 불면 나를 중수부에 잡아넣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 씨의 동생 영기 씨도 “1월 초 라스포사로 정일순 씨를 찾아갔을 때 정 씨가 벌벌 떨면서 ‘연정희 씨가 자신은 라스포사에 온 적도 없다’는 진술서를 써서 보내라고 했다”면서 “정 씨가 이 문제를 상의하기에 ‘연 씨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고 말해줬다”고 진술했다.

당시 사건에 대한 연 씨의 개입 의혹을 은폐하려는 시도 의혹에 대해 연 씨는 강력 부인했으며, 정 씨도 연 씨로부터 진술서를 쓰라고 강요당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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