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뇌사장기 기증률 9.96명’ 미국·이탈리아·영국에 절반도 안 돼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장기·인체조직 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기증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3만 명 이상의 환자들이 장기 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3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장기기증을 통해 생명나눔을 실천한 뇌사자는 573명이다. 이들의 신장·간장·췌장 등 기증 건수는 총 2306건이다. 또 285명의 뇌사자, 사망자가 뼈·피부 등 인체조직을 기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기증자 수는 턱없이 적다. 정부와 관련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장기 기증자 및 가족에 대한 예우 등에 관한 법률이나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기이식자 평균 대기시간 1185일, 대기 환자 사망수는 증가 추세 
 
우리나라 뇌사장기 기증자수는 2012년 409명, 2013년 416명, 2014명 446명, 2015년 501명 등으로 증가 추세다. 하지만 대기환자 수에 비하면 부족한 실정이다.

인구 100만 명당 뇌사기증률은 2015년 기준 9.96명이다. 미국 28.5명, 이탈리아 22.52명, 영국 20.2명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그나마 독일 10.8명과 비슷한 정도다.

이식 대기자수는 2012년 2만2695명, 2013년 2만6036명, 2014년 2만4607명, 2015년 2만7444명, 지난해 3만286명으로 늘며 지난해 3만 명을 처음 돌파했다.

자연스레 장기이식자의 평균 대기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장기이식자 평균 대기시간은 1185일이다.

매년 장기이식을 끝내 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환자 수도 적지 않다. 2013년 1616명, 2014년 1690명, 2015년 1811명, 2016년 1956명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올해는 지난 7월 기준 703명이다.
 
‘생명 이어 준다’
성인이면 기증 서약 가능

 
질병관리본부는 장기기증 활성화와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물을 제작해 지난달 8일부터 지방자치단체·보건소·의료기관 등 전국 약 70개소를 통해 공개 중이다.

부착형으로 제작된 이 홍보물은 광고인 이제석 씨가 참여해 장기 기증이 “신체 훼손이 아니라 신체 보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벽화 ‘천지창조’를 모티브로 삼아 ‘생명을 이어 준다’는 의미를 형상화했다.

질병관리본부는 홍보물을 건물 입구 자동유리문과 승강기 등에 부착해 문이 열릴 때마다 ‘생명 연결’이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게 했다.

앞으로 대형 현수막과 조형물을 제작하여 대중에 공개할 예정이며, 일반 의료기관에서도 장기기증 홍보에 동참할 수 있도록 장기이식관리센터를 통해 홍보물을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장기기증은 다른 사람의 장기기능 회복을 위해 특정한 장기를 대가 없이 제공하는 것이다. 뇌사 시 장기기증, 사후 각막기증, 생전 신장기증 등으로 참여할 수 있다. 성인이면 누구나 장기기증 서약이 가능하다.

장기기증 활성화만큼 중요한 것이 장기기증자 및 가족에 대한 예우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제대로 된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
 
기증 후 후회하는 가족도
기증자·가족 예우 부족

 
지난 9일 한 방송에서는 한 장기기증자 가족 A씨의 인터뷰가 전파를 탔다. A씨는 아들의 장기를 기증했지만 후회가 밀려왔다고 말했다. 아들의 장기적출 후 시신 수습과 장례식장 이송 등 대부분의 과정을 병원이 아닌 가족이 직접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A씨는 아들의 시신을 이송하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후회를 했다며 이런 꼴을 보려고 장기기증을 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 관련 법이 만들어진 것은 2000년이다. 하지만 당시 만들어진 법은 불법 장기매매 등을 막기 위한 성격이 컸다. 시간이 흐르면 현실에 맞게 재개정이 이뤄져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장기기증자 및 가족에 대한 예우가 부족했다.

현재 장기기증 유족에 대한 지원은 한국장기기증조직원과 업무협약을 맺은 병원에서만 제공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증원과 업무협약을 맺은 병원은 전국에 48개 병원뿐이다. 협약을 맺으면 병원은 지원을 받는 대신 콩팥 등 장기에 대한 우선확보권과 이식수술 과정의 수익 등을 기증원과 나눠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에서는 장기·인체조직 기증자 유가족에게 장제비와 진료비를 지급하고 있다. 당초 위로금도 지급됐었으나 지난 2월 1일 위로금이 이스탄불 선언의 금전적 보상 금지원칙에 위배되고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폐지했다.

대신 복지부는 위로금 폐지에 따른 갑작스런 장기·인체조직 기능건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 장제비를 위로금 지급기준만큼 상향한 360만 원으로 조정했다.
 
사후관리 프로그램
기억사업 등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련법 개정과 함께 기증자 사후관리 프로그램, 장기기증자 기억사업 등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기기증자는 보험 가입 시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많은 만큼 이들의 건강 관리기간을 길게 잡아 관리해 줘야 한다는 얘기다. 또 가족의 경우 기증자 사망 및 장기기증에 따른 후유증이 오래갈 수 있어 관리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 외국에서는 장기기증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념공원을 만드는 등 장기기증자를 예우하고 있다. 이러한 기념사업은 장기기증자를 기리는 공간과 동시에 장기기증의 필요성을 알릴 수 있는 홍보공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만큼 관련 부처에서는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정부의 기증자 가족에 대한 예우 등이 부족하다 보니 일반 지자체와 시민단체 등에서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다.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지난 7월부터 서울에 사는 장기 기증자 가족을 대상으로 ‘빚의 대물림 방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협약에 따라 공익법센터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을 통해 장기 기증자 가족 중에서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법률지원을 제공하게 된다. 기증자 사망에 따른 기증자 가족의 상속이나 가족법상 법률문제에 대해서도 무료상담을 실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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