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계도 ‘블랙리스트’ 정황

<사진=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블로그 화면캡처>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1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돌연 강사가 교체되거나 강좌 개설이 중단되는 사례가 잇따른 것으로 확인돼 이른바 ‘복지계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권미혁 의원 "청와대 문건 통해 복지계 블랙리스트 실체 확인"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지시로 국정원 개입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캐비닛 문건 중 ‘대통령 비서실장 지시사항 이행 및 대책 발췌본’에 “2013년부터 인력개발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회복지핵심리더 아카데미’ 강사진에 시위 주도자, 국보법 위반 전락자 등 이념 편향 인사가 적지 않다. 운영 실태를 점검한 후 보고하라”는 내용이 등장했다.

권 의원은 “이 문건을 통해 실체가 모호했던 복지계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복지계 블랙리스트의 골자는 수년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 산하 기관에 출강을 해온 이들이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 후 돌연 강의가 취소된 뒤 지금까지 강의 요청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권미혁 의원이 복지부 산하 보건복지인력개발원 관계자로부터 확보한 ‘2015년 사회복지핵심리더아카데미 교육계획안’에 따르면 아카데미의 각 강의 차수별 교육내용과 강사가 명시돼 있으나 실제로는 강사진이 교체됐다.

권 의원은 “갑자기 강사진이 변경됐는데 담당 실무진은 이 사안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내게 얘기했다”며 국정원 개입 의혹도 제기했다.

당시 교체된 강사진을 살펴보면 학생운동을 했던 A씨,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B씨, 전 서울시 대외협력보좌관 C씨 등이 있다.

이 중 B씨는 지난 2013년 아카데미를 초기에 설계하고 진행했던 주요 기획자로 갑작스러운 강사진 변경에 당시 크게 반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씨가 담당 실무자에게 해당 상황을 물어보자 이 사안에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개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권 의원은 B씨의 녹취록을 인용해 “새로운 원장이 담당 국정원 직원과 만났는데 국정원 직원이 좌파 성향의 강사들에 대해서 조정하라고 했다”면서 “그래서 가장 먼저 걸린 것이 핵심인력양성, 여기에 들어가 있는 강사들이 모두 그런 사람들이니까 서둘러 정리한 거다”는 내용을 밝혔다.

해당 설명을 들은 B씨는 실무자에게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달라고 했으나 담당 실무자는 해당 사건이 있은 며칠 뒤 보직이 변경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의원은 “이들이 당시 국정원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어렴풋한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설마 그랬을까’라는 생각만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의원은 지난 13일 한국일보의 [“종북 생태계 척결” 문화계 탄압 지휘관 이병기] 보도도 예를 들며 “보도에 따르면 실제 지난 2015년 3월 27일 이병기 전 비서실장이 청와대 최원영 전 고용복지수석에게 ‘사회복지핵심리더 아카데미의 이념 편향 강사진과 운영실태를 점검할 것이라는 지시를 했고 이후 강의를 하기로 했던 강의자가 변경됐으며 교육과정은 폐지됐다”고 설명했다.
 
우수 강사인데...
 
권미혁 의원은 이러한 과정에서 강의를 했던 많은 이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B씨의 녹취록을 인용해 “인력개발원 전신이 뭐였냐면 보건복지연수원, 20년 가까이 인력개발원에서 교육을 했고, 강사 중 탑 10에 들었기 때문에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우수강사인데 갑자기 잘렸다”는 내용을 밝혔다.

권 의원에 따르면 실제 B씨는 지난 2013~2014년 두 번이나 우수강사로 상을 받았으나 2015년 4월 이후 강의 건수가 줄어들다가 2016년에는 단 한 건의 강의도 하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야 한 차례의 강의를 할 수 있었다.

A씨 또한 지난 2013~2014 두 번이나 우수강사로 상을 받았지만 2015년 4월 이후 강의를 하지 못하다가 2016년 1회, 2017년 1회 그리고 최근 정권이 바뀌고 난 이후 강의를 할 수 있었다. 이병기 전 비서실장이 지적했던 ‘사회복지핵심리더아카데미’는 지난 2016년 폐지됐다.

권 의원은 해당 교육과정은 2013~2014년 교육만족도와 강의만족도가 평균치에 웃돌 정도로 강의 만족도가 높았으나 2015년 강사진 변경 이후 교육만족도와 강의만족도가 평균치 정도에 그쳤다는 설명이다.

이에 권 의원은 “(해당) 사안을 확인하면서 많은 분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어떻게 청와대에서 여기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냐는 점이었으며 터질 게 터졌다는 것”이라며 “지금까지 확인된 부분이 여기까지이고 많은 사람이 과거 이력으로 인해 블랙리스트로 관리되고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건복지인력개발원 역시 각종 교육에서 배제된 분들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최영현 보건복지인력개발원장은 “2014년 강의를 하던 분 중에 2015년에 제외된 분들이 있는 것으로 문서상 확인은 했으나 어떤 연유로 그랬는지 확인하겠다”면서 “전임 원장이 소상한 내용을 알고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 밖에 권 의원은 지난 12일 복지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복지계 블랙리스트 존재를 폭로한 바 있다.

권 의원은 “2014년 5월 작성된 블랙리스트를 보면, 박능후 장관의 이름도 올라가 있다”며 “당시 경기대 교수로서 ‘아름다운 동행을 지지하는 전국 교수 1000명, 담쟁이 포럼 발기인’이라는 설명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와 관련해 “사실이라면 확인하고 조사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