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제동 걸린 脫원전 정책… 속도 조절 불가피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지난 7월 잠정 중단됐던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이 재개된다. 정부가 ‘숙의 민주주의’라고 치켜세웠던 공론화위원회에서 건설 재개 쪽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왔다. 당초 예상보다 큰 차이로 건설 재개 결론이 난 만큼 정부와 여당 내에서 탈원전을 주도했던 이들에 대한 책임론이 일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자체에 수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그동안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와 상관없이 탈원전은 선거 공약인 만큼 강행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 중 가장 상징성이 큰 것이 바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이었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동력이 약화될 것은 자명하다.
 

- 3개월 공론화로 손실 1000억 원, “정부에 보상받긴 힘들어...”
- 與 “탈원전 정책은 별개” 野 “文, 대국민 사과해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지난 20일 오전 최종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공사 재개 쪽을 선택한 비율이 59.5%로 공사 중단을 택한 40.5%보다 훨씬 높았다”며 정부에 공사 재개를 권고할 것을 밝혔다.

김지형 공론화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등 9명은 이날 10시 정부 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론화위가 지난 석 달간의 숙의를 거쳐 이날 오전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의결한 내용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공론조사에서 공사 중단과 재개 사이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편차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급격한 脫원전...
책임론 거세질 듯


이는 95% 신뢰 수준에 오차범위 ±3.6%인 이번 공론조사에서 양측 의견 차가 19% 포인트로 나타나 오차범위를 크게 넘어섰다는 의미로 읽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원인으로 공정률이 29.%인 상황에서 공사를 중단하면 2조 6000억 원의 매몰비용이 발생하고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여론이 컸음을 꼽는다.

결국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전적으로 수용키로 한 정부의 기존 원칙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건설 공사는 3개월여 만에 전면 재개될 전망이다. 다만 정부·여당으로서는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조사됐던 일반 여론조사 등과는 달리 공론조사에서 공사 찬성 입장이 압도적으로 집계된 데 대한 책임 화살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부가 ‘숙의 민주주의’라고 치켜세웠던 공론화위에서 건설 재개 쪽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정부·여당 내에서 탈원전을 주도했던 이들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동안 국민 의견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대표적인 ‘탈원전파’로 분류된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탈원전 정책 동력도 약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공사 중단 3개월 동안의 금전적 손실에 대해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당초 문재인 대통령은 신고리 5·6호기의 중단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이미 1조 6000억을 투입해 종합공정률이 29.5%에 달하자 3개월 간 공사를 일시 중지하고 공론조사 후 영구중단과 건설 재개 중에서 결정을 내기로 선회했다.

그런데 20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공론화 기간 3개월 동안 일시 중단으로 발생한 협력사 손실보상 비용은 약 1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비용은 자재와 장비 보관 등 현장 유지관리비용, 공사 지연이자, 사업관리를 위한 필수인력 인건비 등이다.

실제로 두산중공업은 이미 약 400억 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어 막대한 손실에 대한 보상까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나기용 두산중공업 부사장은 지난 12일 산업부 국감 증인으로 참석해 “3개월 공사 중지로 한 400억 원 정도 (손해를 볼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용을 정부에서 보상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앞서 한수원은 지난 7월 7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관련 법률 검토’에서 “정부 정책에 협조하기 위해 이사회 결의에 따라 공사 일시 중단을 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손실보상 청구가 인정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봤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지난 2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손실의 책임은 전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으며, 대국민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을 통해 “특정 이념에 경도돼 5년짜리 정부가 국민적 동의 없이 밀어붙이는 정책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좌초할 것이며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즉각 대국민 사과하고 잘못 가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전반에 대해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탈원전 정책 기조 유지,
신규 원전 운명 촉각


한편 신고리 5·6호기 다음 타깃은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다. 신고리 5·6호기는 건설 재개 결정이 나왔지만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는 풍전등화의 신세다. 이미 정부가 신규 원전 백지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울진 신한울원전 3·4호기와 영덕 천지원전 1·2호기, 삼척 또는 영덕에 지어질 원전 2기(대진원전 1·2호기 또는 천지원전 3·4호기)를 포함해 6기 백지화 방침을 밝혔다.

현재까지 신한울 3·4호기에는 종합설계용역비 등 2703억 원, 천지 1·2호기에는 부지매입비 등 699억 이 투입된 상태다. 이 밖에도 원전 건설 인근 지역 일부 지자체는 원전 건설에 따른 특별 지원금을 수백억 원 이상 받은 상황이라 원전 공사 중단으로 지원금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해진 게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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