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중한 실력에도 만년 2인자 설움…정교한 샷으로 예비 한류 골프스타 입증
-상금보다 LPGA 직행 티켓에 관심 집중…미국 무대 가능성 두고 저울질 돌입

 
고진영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의 대표주자인 고진영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9번째 도전 끝에 우승을 거머쥐며 미국 진출 가능성을 넓혔다. 특히 그는 이번 우승으로 LPGA 투어 직행 티켓까지 거머쥐면서 국내유일 LPGA투어의 5번째 신데렐라에 등극했다.

고진영은 지난 15일 인천 중구 영종도의 스카이72 골프장 오션코스에서 끝난 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 우승상금 30만 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2개로 4언더파를 쳐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를 적어내 경쟁자인 박성현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로써 고진영은 LPGA 투어 9번째 대회 출전 만에 생애 첫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더욱이 그는 2015년 브리티시 오픈 준우승의 한을 풀며 우승상금 30만 달러(약 3억4000만 원)를 거머쥐었다.

또 이번 우승으로 다음 시즌 LPGA 무대 직행 기회까지 손에 넣으며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이날 챔피언조에서 박성현, 전인지와 함께 플레이를 한 고진영은 2번 홀과 3번 홀 보기를 기록하며 주춤했지만 5번 홀을 시작으로 침착하게 버디쇼를 펼치며 박성현을 따돌렸다.

이후 14번 홀에서 박성현이 보기를 범하며 2타 차를 만들었고 결국 고진영에게 우승이 돌아가며 2인자의 설움도 함께 날려버렸다. 미지막 날 고진영은 경기를 풀어나가기에 쉽지 않았다.

실력에서 오는 부담감보다는 주위 갤러리 등에서 오는 분위기에서 압도당했다. 특히 최고 스타들의 샷 대결이 펼쳐진 챔피언 조인 만큼 홀 주위에는 갤러리가 겹겹이 둘러쌀 정도였다.

여기에 박성현 팬클럽 ‘남달라’와 전인지의 팬클럽 ‘플라잉 덤보’는 플래카드를 들고 열심히 응원을 펼쳤다. 물론 고진영의 팬클럽 ‘진영사랑’도 나왔지만 숫자는 많지 않았다.

이 때문에 고진영은 “성현, 인지 언니 팬들이 얼마나 많은지 느꼈다. 이동을 할 때 ‘전인지 파이팅’, ‘박성현 파이팅’ 소리만 나와서 속이 상했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고진영, 박성현, 전인지(왼쪽부터)
 2인자 설움
실력으로 날리다

 
하지만 팬클럽을 제쳐 두고서라도 지난 2년간 2인자로서 살아온 고진영에게는 이번 도전이 쉽지 않았다. 2015년엔 전인지가, 지난해엔 박성현이 KLPGA 1인자로 위상을 떨쳤다.

덕분에 고진영은 만년 2인자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고진영은 “아주 당황했다. 캐디 딘 허든과 왜 긴장하는지 이유를 얘기해 보니 그럴 이유가 없는데 스스로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있는 대로 생각 없이 경기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그가 부담감을 털어버리면서 정교한 샷이 구현됐다.

엎치락뒤치락해 온 고진영과 박성현의 승부는 16번 홀에서 갈렸다. 박성현을 2타 차로 앞선 고진영은 16번홀을 파로 마무리했고 박성현은 보기를 범하면서 3타 차로 벌리며 우승을 굳혔다.

이후 고진영은 남은 2홀을 파로 마무리 하며 우승을 확정 지었다.
박성현
 반면 준우승 싸움은 마지막 홀까지 치열했다. 박성현과 전인지가 동타를 이룬 상황에서 마지막 홀을 박성현이 버디, 전인지가 파를 기록하며 명암이 엇갈렸다.

더욱이 고진영은 이번 대회를 통해 한층 성숙한 모습을 선보여 기대를 한껏 모았다. 그는 처음 출전한 해외 대회인 2015년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 기회를 잡았다가 박인비에게 막판 역전패한 아픔이 있다.

하지만 그는 최종 라운드에서 초반 보기 2개를 한 뒤 버디 6개를 잡아 내는 뚝심을 선보여 한결 성장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LPGA 직행
5번째 신데렐라 탄생
 

고진영의 기쁨은 우승에서 멈추지 않는다. 바로 다음 시즌 LPGA투어 진출 자격을 획득했다. 2003년 안시현을 시작으로 2005년 이지영, 2006년 홍진주, 2014년 백규정에 이어 5번째 신데렐라가 됐다.

고진영은 경기 직후 “(LPGA 진출에 대해)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 LPGA투어에 가고 싶지만 지금 준비가 돼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챔피언 조를 함께한 박성현과 전인지도 고진영의 우승을 축하했다.

이번에 우승을 했다면 세계 랭킹 1위 등극이 가능했던 박성현은 “우승은 놓쳤지만 만족스러운 라운드다. 챔피언 조에서 4타를 줄인 건 쉽지 않다. 진영이가 아주 잘했다. 15번 이글 퍼트를 놓친 것과 16번 홀과 7번 홀 3퍼트는 아쉽다”면서도 “진영이가 지난해보다 훨씬 좋아지고 단단해졌다. 미국에 가도 전혀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인지도 “내가 무너진 경기가 아니고 다른 선수가 더 잘한 경기여서 만족한다. 진심으로 우승을 축하한다”고 전했다.
전인지
 고진영을 비롯해 박성현, 전인지 모두 맹활약을 펼치면서 KEB하나은행 챔피언십도 어느 때보다 흥미로운 기록을 남겼다. 우선 고진영이 19언더파 269타로 우승을 차지해 이 대회가 2014년 4라운드 경기로 전환된 이후 최저타 우승 스코어를 기록했다.

또 스타 선수들이 열띤 경쟁을 펼치면서 6만 명 이상의 갤러리가 모여 이 대회 역대 최다 갤러리 기록을 달성했다. 첫날부터 5772명의 갤러리가 모였고 3라운드 4라은도 역시 각 라운드 최다 갤러리 기록을 수립하며 뜨거운 골프팬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이에 4라운드 최종 집계 결과 6만1996명이 대회장을 찾아 종전 최다 기록 5만6732명을 가뿐히 제쳤다. 이와 함께 박희영이 2004년부터 올해까지 14회 연속 대회에 출전해 최다 연속 출전 기록을 기어갔다.
 
기쁨도 잠시
미국행은 심사숙고

 
한국 유일 LPGA투어 경기가 훈훈하게 마무리 되면서 고진영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장 미국 진출의 물꼬를 튼 고진영이지만 섣불리 도전하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그는 이번 경기를 마친 뒤에도 “미국 진출 같은 큰 문제는 혼자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 에이전트와 상의 후 결정하겠다”고 말해 심사숙고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고진영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갤럭시아 SM의 한 관계자는 “어떤 것도 결정 내려진 것이 없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미국 진출과 잔류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고민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비회원인 고진영이 다음 시즌에 LPGA 투어에서 활동하려면 11월 21일 전까지 LPGA에 입회 신청서를 내야 한다.

이 때문에 고진영 측은 남은 시간 동안 모든 시뮬레이션을 돌려 미국 진출과 잔류에 관한 모든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더욱이 9번의 도전 끝에 얻은 기회지만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실제 2014년 이 대회에서 우승한 백규정이 미국 무대에 진출했지만 막상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국내로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고진영이 미국 진출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조언을 내놓고 있다.

먼저 고진영은 전략적이고 안정된 골프를 추구하고 있다. 기록을 살펴보면 드라이브샷과 아이언샷의 정확성은 국내 무대에서 1인자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드라이브샷 페어웨이 적중률 82.19%, 아이언샷 그린 적중률 79.73%로 모두 1위에 올라있다. 정교함을 앞세워 이번 시즌 평균타수 69.67타(1위)를 적어내며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

다만 그의 최대 약점은 거리로 좁혀진다. 이번 대회 준우승을 차지한 박성현은 270야드가 넘는 장타를 때린다.

반면 고진영은 마지막 날 평균 251야드에 불과해 거리 싸움에서 다소 밀란다. 이는 국내보다 코스길이가 조금 더 길고 까다로운 LPGA투어에서는 고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고진영
 성장한 KLPGA
대안으로 떠올라
 

또 이미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국내 무대를 떠나는 것도 고민이다.

2014년 데뷔한 그는 첫해 1승을 치지했고 2년차와 3년차 시즌엔 각각 3승씩을 추가했다. 상금 랭킹도 2015년 3위(5억3350만5416원), 지난해 2위(10억224만9332원)으로 한 단계씩 성장했다.

올 시즌도 2승(LPGA 1승 제외)과 상금 7억635만8090원 벌어 4위에 올라있다. 국내 무대에서 연간 2~3승씩을 꾸준히 올릴 수 있기에 상금과 스폰서 후원금 등을 더해 10억 원~15억 원 이상의 안정된 수입도 올릴 수 있다.

이에 반해 LPGA로 진출한 경우 국내에서보다 더 나은 활약을 펼친다면 걱정할 게 없지만 그 반대의 상황이라면 수입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실력파가 즐비한 상황과 장거리 이동에 따른 체력 문제, 시차 적응, 음식, 언어 등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라는 점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여기에 지난 5월 LPGA 투어를 포기하고 국내로 복귀한 장하나의 사례도 고민을 깊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장하나는 2015년 LPGA투어에 진출한 이후 통산 4승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장거리 이동으로 생긴 체력 문제, 가족 건강 문제 등을 들어 국내 복귀를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에는 KLPGA 투어가 성장함에 따라 힘든 타지 생활보다 국내 잔류가 선수들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는 데에 힘이 실리는 것도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고진영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생각이다.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어떠한 결전도 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50대 50”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을 통해 실력을 입증한 만큼 LPGA투어 진출이 고진영이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제기돼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고진영은 이번 우승으로 지난 16일 발표된 여자골프 세계 랭킹에서 지난주 보다 12계단 상승한 21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3위를 차지한 전인지는 세계 랭킹 7위에서 4위로, 박성현은 우승을 놓치며 세계 랭킹 2위 자리를 유지했다. 김인경과 리디아 고는 8위와 9위를, 박인비는 11위로 내려갔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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