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국회의 꽃’이란 말 무색할 정도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지난달 12일부터 20일간 실시된 정기국회 공식 국정감사가 끝났다. 국가정보원에 대한 국정감사는 공식 국정감사가 끝난 지난 2일 실시되었으며, 곧 대통령실에 대한 국정감사도 실시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첫 국정감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올해는 추석연휴가 길어 다른 해에 비해 국정감사 일정을 줄여서 실시했는데, ‘국회의 꽃’이라는 국정감사가 제대로 꽃을 피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엊그제 실시된 국가정보원 국정감사에서 이름도 어마무시한 국가정보원의 ‘특수공작활동비’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주기적으로 상납되었다는 사실 정도가 겨우 꽃봉오리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 꽃을 피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국정감사제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제헌국회 때부터였다. 그러나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을 통해 국회의 국정감사제도는 폐지됐다. 국회가 제도적으로 권력의 시녀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러다가 다시 부활한 것은 독재 시대를 끝내게 한 1987년 민주항쟁 이후 현행 헌법이 실시되고부터다.
 
우리 헌법은 제61조 1항에서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2항에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절차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국정감사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또한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국정감사의 운영에 관한 구체방안을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입법기관인 국회가 3권 분립에 입각해서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는 것은 물론 각종 공공기관, 그리고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 이르기까지 국정감사를 실시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3대 국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국정감사는 야당이 정부를 향해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가끔은 공포탄으로 끝나기도 했지만, 1년 중 야당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일한 시기다. 또한 국정감사를 열심히 준비한 국회의원 개인에게는 ‘국감 스타’로 등극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여 ‘일하는 국회의원’이 주목받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은 주목도가 떨어지는 시기이기도 한데, 국정감사 시기의 여당 국회의원은 야당에게 공격당하는 정부를 엄호하여 주목받는 경우가 있다. 이때 여당 국회의원을 주목하는 것은 일반 국민도 아니고 언론도 아닌 청와대이다.
 
국회의 3대 기능과 역할은 첫째, 사람과 지역을 대표하는 대표 기능이고, 둘째, 권력분립에 입각한 감시와 견제를 주 임무로 하는 감독 기능이며, 셋째, 국가예산과 입법과정의 심의 기능이다. 이 중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주로 국정감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 점에서 국정감사는 야당의 역할이 아닌 국회의 역할인 것이며, 이 역할을 수행하는 데 여당과 야당의 역할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만약 여당이 이러한 점을 망각한다면 그것은 엄연한 직무유기이며, 권력분립의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국정감사에서 야당과 여당의 역할은 정부에 대한 반대와 옹호의 논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국정감사가 부활한 지 30년이 되었지만, 지난 30년 동안 일관된 모습이다.
 
지난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의 첫 번째 국정감사였던 이번 국정감사는 과연 이러한 논리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혀 아니었다. 1년 전에 비해 여야당의 입장이 뒤바뀐 상태에서 진행된 국정감사였지만, 여당, 야당 모두 자신의 위치를 망각했다.
 
‘적폐 청산’을 내건 여당의 국정감사는 지난 보수 정권 9년에 칼끝을 겨눔으로써 정부와 청와대를 옹호하는 전략을 선택하였고, 보수 야당은 이에 맞서 ‘신적폐청산’, ‘무능심판’이라는 그럴싸한 구호를 내걸었다.
 
하지만, 1년 전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를 파헤치던 당시의 야당 칼끝과 비교하면, 무디디 무딘 칼끝에 불과했으며 칼끝이 향한 방향도 달랐다. ‘극중주의’를 내건 국민의당은 스스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와 국정감사에서 자신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당초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의 전황은 야당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였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에 실패하였고, 이는 정부 여당에 큰 짐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협치를 내세우면서도 협치의 구체상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정권 기반의 불안정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에 북한의 핵실험과 연이은 미사일 발사에 따른 안보 불안, 한미FTA 재협상, 설익은 탈원전정책 등 야당의 공격 소재는 차고도 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가 끝난 지금 그러한 이슈는 울림이 없는 단발성으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과거 정권의 적폐를 파헤치겠다는 여당의 성과가 더 컸고 국민적 관심과 공분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왜일까? 답은 하나다. 야당이 무능했고, 국정감사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망각했다. 앞서 지적했듯이 국정감사는 야당의 전유물과 같은 존재였고, 자신들의 존재 의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기회이다. 그래서 당초 추석 이전에 국정감사를 실시하자는 논의를 거둬들이고 추석연휴를 대부분 투자하면서 국정감사 준비에 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성과는 미미했다. 야당들이 처해 있는 위치가 이를 응변해 준다.
 
지난 대선 이후 주요 야당은 모두 대선에서 패한 후보가 당대표에 있거나 당대표를 노리고 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홍준표 후보가 일찌감치 당대표로 복귀하여 보수 정당의 재건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자신이 국회의원도 아닐뿐더러 그에게는 박근혜 출당 여부가 더 큰 숙제이고 정치적 업적이 될 것을 알고 있다.
 
보수 대통합을 이루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보수 기반을 재정비할 수 있다면, 향후 그의 정치적 이익은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서 얻는 정치적 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국정감사를 통해 야당 발 정치 이슈가 분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정치 9단에는 못 미치지만 프로 정치인임에 틀림없다.
 
제2야당인 국민의당도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가 당대표로 복귀했다. 그의 정치적 목표는 아마도 ‘잊히지 않는 정치인’인 것 같다. 그러한 조급증은 대통령병이라는 중증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다. 정치가 종합예술이라고 한다면 그는 그 퍼즐을 맞추는 실력이 부족한 상태인데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단편적인 이벤트에 골몰한다. 그가 이번 국정감사 기간에 골몰한 이벤트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이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당과 당의 통합은 상대가 있고, 정치 상황을 고려해야 하고, 당내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데 욕심이 앞선 나머지 국민의당이 국정감사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했다. 그가 국정감사를 주도한 경험이 없었던 것이 국정감사에 대한 정치적 의미를 과소평가한 것은 아닌가 싶다.
 
바른정당은 당대표 유고 상황에서 대선 후보였던 유승민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가 되고자 하지만, 당의 존속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정당이 국정감사를 정상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바른정당이 국정감사에 제대로 임하지 않았다는 것은 국회의원으로서 직분을 망각한 것임에 틀림없다.
 
규모에 비해 국정감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정의당은 정권이 바뀐 이후에는 민주당의 우군 정당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국정감사장에 드러누운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통합과 체제정비,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야당의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국정감사에서 그나마 그 역할이 기대됐던 것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물론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국방부 댓글부대 의혹,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어느 정도 성과를 낸 것도 있었다.
 
그렇지만 국가정보원의 폐지를 포함한 국가정보원 개혁안,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개헌 문제 등 자신들이 주도해야 할 이슈에 대해서는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5년 전 대선에서 패한 민주당 지도부가 국립현충원을 찾아 큰절을 하며 국민들에게 도와 달라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그 모습이 진정이었다면,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원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보다 적극적으로 국회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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