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정기국회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국민들에게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에서의 활약이 도드라지지는 못했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국정감사 이후의 새해 예산안 심사, 그리고 국회 본연의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로 꼽히고 있는 법률안 심사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이들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역할보다는 정당인의 역할을 우선시하며, 마음은 내년 지방선거, 그리고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 더 멀리는 2022년 2월 23일에 실시될 예정인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가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국회는 싸우는 곳이다. 사회의 다양한 지역과 집단과 생각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각각 자신들의 대의를 위해서 국회라는 장소를 빌려서 싸우는 것이고, 그 대표선수를 국회의원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싸움은 국회라는 장소로 한정되고 스포츠와 같이 엄격한 규칙도 적용된다. 이들의 싸움은 물리력을 동원하는 폭력적인 싸움이 아니라, 말과 표를 사용하는 고도의 두뇌를 필요로 하는 싸움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정치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싸움은 그런 싸움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장소도 국회가 아니고, 싸우는 목적도 국민의 이익, 국가의 이익이라는 대의와는 거리가 멀다.

임의기구에 지나지 않는 정당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국회와 정부의 힘을 동원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규칙도 없고, 대의도 없는 오로지 생존만을 목적으로 하는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싸움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대략 3군데에서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이 전투들은 향후 5년, 10년의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전쟁의 전초전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전선은 현 정권과 이명박 전 정권과의 전선이다.

원래는 현 정권과 이명박·박근혜 정권과의 전선이었지만, 탄핵 이후 무장해제당한 박근혜 세력은 전선의 한 축을 담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마땅한 무기도 가지지 못했지만, 유민들조차 그들을 지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간헐적으로 존재감을 어필하는 행위는 있겠지만, 이미 그들은 포로수용소의 수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세력과 현 정권과의 싸움은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이 두 세력은 현재 우리나라 정치 진영의 양 축을 대표하는 세력들이다. 가진 무기도 많거니와 그 성능 또한 살상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정교하기에 사용방법에 따라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도 있다.

다만 현 정권은 살아있는 권력이고 이명박 정권은 죽어지내는 권력이다. 게다가 현 정권은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국민적 지지여론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세력이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두 번째 전선은 보수정당 내에서의 헤게모니 싸움이다. 그들 싸움의 주전장은 자유한국당 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킨 홍준표 대표는 친박의 좌장 격인 서청원, 최경환 의원을 정리하여 자유한국당 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자조차 지우려고 안간힘이다.

그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바른정당에 대한 쪼개기를 단행하여 김무성 의원 등을 입당시킴으로써 소위 이이제이(以夷制夷)를 통한 실리를 취할 수 있었다. 서청원, 최경환 등은 정치적 생명의 기로에 서 있지만 그들의 정치적 운명은 이미 그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두 번째 전선에서의 싸움의 향방은 크게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변수는 있겠지만 친박의 몰락만큼은 확실하다. 이러한 결과는 첫 번째 전선에서 고전하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천군만마가 될 것이다.

장기판이라고 하는 커다란 싸움터에서는 수많은 병졸들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자유한국당이기 때문이다. 졸 장기를 두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수도 있다. 또한 세 번째 전선에서의 결과에 따라 자유한국당의 전력은 더욱 탄탄해질 수도 있다.

세 번째 전선이 형성된 곳은 국민의당 내부다. 사실 이들의 싸움은 불필요한 싸움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작년 4.13 총선에서 국민들은 정치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3당 체제를 만들어 주었다. 그랬던 정당체제가 박근혜 국정농단사건으로 말미암아 인위적인 4당 체제로 개편되었으며, 문재인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수 세력들이 박근혜만을 배제하고 통합하려는 과정에서 흘린 떡고물에 눈독을 들인 안철수 대표의 자충수에 가까운 싸움이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의 싸움임에 틀림없다.

안철수 대표는 지난 16일 덕성여대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당은 지난 4.13 총선에서 기적을 일궈냈지만, 대선에서 실패함으로써 다시 양당 구도에 짓밟힐 기로에 서 있다.

따라서 국민의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합쳐 2당으로 성장하고 1당을 제압하는 것은 전략적 상식에 속한다. 2당으로의 성장은 집권 가능성을 갖는 정당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기득권 양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이다. 이 말을 안철수 대표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했다면 말이다.

안철수 대표가 이러한 발언을 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 첫째는 지난 대선에서 실패한 자기반성과 자숙이 있어야 했다. 둘째는 안철수 대표 자신이 아닌 국민의당이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하며, 이러한 가치와 정체성이 바른정당의 유승민 대표와 어떻게 합치될 수 있는지, 그리고 바른정당의 구성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다고 해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대국민 설명이 있어야 한다.

셋째, 안철수 대표는 지난 2014년 역대 진보진영의 야권의석으로는 최대였던 130석의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를 역임했음에도 지방선거에서 패하며 체면을 손상했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이를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의 문제로 보고 있고 그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인데, 이를 불식시킬 만한 당내 리더십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이 세 가지 전제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대표의 가는 길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중도통합이라는 명분하에 과감하게 호남과 결별하고 유승민의 바른정당과 통합하는 길인 것 같다.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조만간 테트라포트를 형상화한 당의 로고도 바뀔 것이다. 제3당이 아닌 2당 1당을 노리는 당의 로고로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은 호남을 버리는 기호전략(棄湖戰略)을 통해 지역주의정치를 싹트게 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독재체제를 강화하며 장기집권을 이뤘다. 안철수 대표가 추구하는 기호전략(棄湖戰略)은 과연 어떠한 결과를 싹트게 할지 사뭇 궁금하다. 그가 꿈꾸는 지역주의 정치를 타파하고 양당 기득권 체제를 혁파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어리석은 정치인으로 이름을 남길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떤 싸움에도 적수가 있다. 이 싸움의 당사자는 안철수 대표와 호남의 의원들이다. 2006년 1월 개봉하여 100만 관중을 돌파한 백윤식 주연의 코미디 영화 “싸움의 기술”에서 주인공 백윤식은 사우나에서 건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 나한테 한 번만 더 손대면 그 땐 피똥 싼다!” 그러면서 싸움의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데 나는 그 영화에서 최고의 명대사는 백윤식이 재희와 화투를 치면서 말한 “싸움도 심리전이야!”라고 생각한다. 심리전의 중요성은 손자병법을 비롯한 동서고금의 모든 병서에서 강조하고 있을 정도다.

안철수는 기호전략, 중도통합,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면피용으로 활용 가능한 기초선거정당공천폐지라는 다양한 싸움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싸움의 기술보다 더 큰 무기는 호남 의원들에게 ‘당신들이 국민의당 둥지를 과연 벗어날 수 있겠냐!’라는 고도의 심리전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호남 의원들이 답할 차례다.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두 번째 전선의 자유한국당이 두터워질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첫 번째 전선에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정부 여당에게 커다란 힘이 될 수도 있다. 세 번째 전선의 싸움은 이달 중으로는 결론이 날 것이다.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싸움이 아니라서 몹시 아쉽지만, 국회에서의 진짜 싸움을 준비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이해한다면 이 싸움도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영필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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