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기업 공익재단을 바로 보는 시선이 두 갈래로 엇갈린다. 본래 대기업 공익재단은 학술과 예술, 자선사업을 통해 공익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본래 목적에 충실한 게 아니라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활용된 적이 많았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 이런 지적 이후 오히려 기업 기부금이 줄었다는 분석이 나와 공익재단의 양면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일각에선 돈을 필요로 하는 곳의 요청에 따라 재단 돈을 사용했다가 역풍을 맞은 기업들이 늘면서 공익재단의 역할이 위축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공정위 내 기업집단국 신설로 재벌 문제점 지적하겠다는 정부
최순실 국정농단 겪은 후 기부금에도 신중한 태도 보이는 재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이후 가맹점 갑을 문제 해소에 집중해 오다 최근 재벌개혁 1호로 공익재단을 겨누고 있다. 특히 공익재단을 승계에 적극 활용해 온 특정 대기업에 대해 면밀히 검토 중이다.

특히 공정위 내 기업진답국이 자산 10조 원 이상 대기업 집단 20곳 39개 공익재단을 전수조사할 계획으로 알려졌으나 조사 대상에 자산규모 5조 원 이상 57개 대기업이 포함될 수도 있다.

공정위 한 관계자는 “조사 대상을 자산규모 10조 원으로 할지 5조 원으로 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12월 중에 조사 대상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정요건이 충족되면 공익재단에 세제혜택을 부여하는데 과연 공익재단의 설립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는지 점검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직권조사 의결권 제한 등의 제도개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자산 10조 원 이상 대기업 집단 공익재단은 삼성생명공익재단·삼성문화재단·삼성복지재단·호암재단·현대차정몽구재단·SK행복나눔재단·LG연암문화재단·LG연암학원·롯데문화재단·롯데삼동복지재단 등이다. 

공정위가 주목하는 부분은 공익재단이 공익사업을 시행한다는 명분으로 상속세와 증여세 등 세제 혜택을 받으면서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이용해 대기업 총수가 부당하게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경영권 및 재산을 편법으로 승계했는 지 등이다.

조사대상 범위 10조 원, 5조 원?

기업들은 공정위의 행보가 내키지 않는다. 일부 기업은 억울함을 표출한다. 한 관계자는 “공익재단을 활용해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일부 기업 때문에 재단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곳까지 기부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조사에는 성실히 임하겠지만 (공정위가) 기업을 마치 잠재적 범법자로 바라보는 시각이 깔려 있는 것 같아 유감”이라며 “엄밀히 말하면 공정위는 공익재단에 대한 강제조사권이 없는데 사실상 권한영역을 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당분간 기업들의 이익 환원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축소, 상생협력에 허덕이는 현 상황에서 법인세마저 가중되면 무슨 수로 자발적 활동을 늘리겠냐고 하소연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법인세를 올리면 이익을 기반으로 환원 활동을 해야 하는 기업들의 자율성과 적극성은 당연히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연구개발(R&D)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더욱 줄어들면서 상생협력 세제 부담은 크게 늘어 자율적 공헌에 상당한 제약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미 재계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후폭풍으로 기업들이 기부금 집행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재해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돕기 위한 재계의 기부금 행렬도 줄어들었다. 지난달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포항 지진 피해에 써달라며 기부금 30억 원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탁했다.

SK그룹과 현대차그룹은  2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포스코는 회사 차원에서 5억 원, 포스코1%나눔재단 5억 원, 계열사 5억 원 등 총 15억 원을 모아 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했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포항 지진에 성금 모금을 참여하고 있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과거 삼성과 SK, 현대 등은 재난이 발생하면 앞다퉈 지원에 나섰지만 이번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는 재난재해 구호기금 조성의 총무 역할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위상이 하락했고 재계가 내부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기부금 집행을 보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기부금이 정경유착의 오해를 살 수 있다고 보고 기부금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라며 “기부를 하면서도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간 재계는 ‘불문율’로 통하는 ‘황금비율’에 따라 준조세 성격의 분담금을 내왔다. 주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해서 모금하는 경우 삼성그룹 ‘2’를 기준으로 현대차그룹 ‘1.2’, SK그룹 ‘1’, LG그룹 ‘0.8’로 적용했던 그 비율이다.

앞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고리였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이 비율에 따라 삼성은 204억 원, 현대차 128억 원, SK 111억 원, LG 78억 원을 각각 출연했다. 재계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대가성과 연관이 적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이 주도해 재계로부터 모금해 벌이는 사업의 경우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재계 순위에 따라 정해진 비율로 분담해온 게 관행화된 것”이라며 “각 기업별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기계적으로 모금 비율을 맞춘 고육책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의결권 내용 제한 담겨..결과는?

현재 국회에는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지난해 6월 박영선·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기업의 공익법인이 소유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두 의원의 개정안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상호출자제한집단) 공익법인의 국내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단, 법 시행 이전에 100%의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의 경우 의결권을 인정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 공익재단이 보유한 자사 계열사의 의결권이 제한돼 공익재단이 재벌 경영권 승계에 활용되는 악습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