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에코퍼(eco-fur)’를 선호하는 소비 트렌드가 패션업계의 판도를 뒤바꾸고 있다. 저렴한 가격에 합리적 소비를 조성하고, 동물·환경까지 보호하는 ‘착한 패션’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돼 에코퍼를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더욱이 에코퍼는 ‘싸구려’라는 오명에서도 점차 벗어나고 있다. 보온성·디자인 면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만큼 생산 기술까지 날로 향상된 것. 이러한 소비 트렌드는 오랜 시간 지속된 모피 반대 운동에도 꿈쩍 않던 패션업계의 빗장도 열어젖혔다. 명품 브랜드들도 줄이어 ‘퍼-프리’를 선언하며 에코퍼 선호 반열에 올라서고, 국내 패션업계도 앞 다퉈 에코퍼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동물·환경보호 및 합리적 소비 이미지 형성
기술력까지 향상되며 명품 브랜드도 ‘퍼-프리’


과거에는 ‘싸구려’라고 폄하받기 일쑤였던 에코퍼가 ‘착한 패션’이란 날개를 달고 패션 시장의 대세로 떠올랐다. 부유층 중년 사모님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2030 젊은 여성들의 패션 트렌드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인기 비결은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를 따른 것. 에코퍼는 리얼 퍼 가격의 3분의 1, 적게는 4분의 1 수준까지 저렴할 뿐 아니라, 리얼 퍼보다 실용성과 활용도가 높다. 특히 리얼 퍼가 동물학대라는 이유로 지탄받았던 점에 반해 에코퍼는 동물과 환경을 생각하는 ‘윤리적 패션’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르며 소비자들에게 각광받았다.

패션업계에 부는 ‘에코퍼’ 바람

‘에코퍼’란 이름만 봐도 그렇다. 기존에는 ‘페이크(fake, 가짜)퍼’라는 단어로 통용됐으나, 긍정적 인식이 확산되며 부정적인 뜻의 ‘페이크퍼’ 대신 ‘에코퍼’로 일컫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 같은 에코퍼의 인기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김용섭 날카로운 상상력 연구소장은 그의 책 ‘라이프 트렌드 2018-아주 멋진 가짜’에서 패션을 대하는 소비자들의 달라진 인식을 소개했다. 김 연구소장은 “2030세대들은 천연 모피나 가죽보다 ‘멋진 가짜’를 선호한다. 그들은 소비할 때 기성세대의 관성에 의존하지 않고, 동물 복지와 환경 문제 등 윤리·사회적 소비를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전 세계의 명품 브랜드도 점차 ‘퍼-프리’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반스(Vans),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 팀버랜드(Timberland) 등 20개 이상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VF그룹이 “더 이상 모피나 앙고라, 가죽 제품을 쓰지 않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VF그룹에 소속된 브랜드들은 그동안 모피나 가죽을 사용한 제품을 대량 생산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에는 명품브랜드 구찌가 전 세계를 발칵 뒤집었다. 구찌의 CEO 마르코 비차리(Marco Bizzarri)가 지난 10월 ‘세계 소녀의 날’을 맞아 런던에서 열린 ‘2017 케어링 토크’에서 이른바 ‘퍼 프리(Fur-free)’를 선언한 것. 2018년 S/S 컬렉션부터 리얼 퍼 제품을 일절 생산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마르코 비차리는 “사회적 책임은 구찌의 핵심 가치 중 하나다. 우리는 계속해서 동물과 환경 보호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구찌는 의류뿐 아니라 신발, 가방 등 소품에도 리얼 퍼를 애용하던 브랜드였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이에 전 세계 패션업계에서는 구찌의 ‘퍼 프리’ 선언을 기점으로 대세는 리얼 퍼가 아닌 에코퍼로 기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미 앞서 스텔라 매카트니·아르마니·랄프 로렌·드리스 반 노튼·휴고보스 등 주요 명품 브랜드가 모피 사용을 중단한 바 있다. 특히 조르지오아르마니는 2016년 가을·겨울 컬렉션부터 모피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기술적 발전으로 모피를 대신할만한 다양한 대체 재료를 확보할 수 있다”며 “모피를 얻기 위해 더는 동물들에게 잔혹한 방법을 쓰는 것이 불필요해졌다”고 밝혔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조르지오아르마니에 이어 구찌까지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퍼 프리’를 선언했는데 리얼 퍼에서 에코퍼로 흐름이 바뀌는 건 이제 시간문제”라며 “생산 기술도 날로 발달해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예측했다.

2018년 트렌드로 자리 잡을 전망

국내 시장도 에코퍼(Eco fur)에 주목하는 추세다.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업계 뿐 아니라 일반 패션업체도 에코퍼 제품을 앞 다퉈 출시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운영하는 여성캐주얼 브랜드 ‘지컷(g-cut)’은 지난달 에코퍼 컬렉션을 출시했다. 지컷은 우수한 품질의 에코퍼를 사용, 촉감 및 보온성이 우수하면서도 리얼 퍼 가격의 절반 수준인 제품들을 내놓았다. 특히 지컷은 이번 컬렉션을 위해 원단을 자체 개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동규 신세계인터내셔날 지컷 상품 파트장은 “과거에는 모피가 중년 여성들이 입는 옷으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모피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페이크 퍼는 동물 모피보다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하고 가격이 좋아 매년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LF의 액세서리 브랜드 닥스액세서리와 질스튜어트뉴욕도 에코퍼로 제작한 가방, 슬리퍼 등 패션 소품들을 출시했다. 특히 래비티, 길트프리, 몰리올리, 케이미 등 에코퍼 전문 브랜드까지 생겨났다.

박아름 기자  pak5024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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