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도 늘고 ‘기간’도 느는데 SKT·KT… 통신사만 ‘잇속’ 챙겨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정치권에는 ‘여론조사 무용론’이 팽배해 있다. 20대 총선에서 예상과는 다르게 당시 새누리당이 참패하는 결과가 나오면서부터다. 그러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급히 진화 작업에 나섰다. 선관위는 지난해 선거여론조사기관의 공표·보도용 여론조사에도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긴 선거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여론조사 무용론의 대표적인 근거인 ‘표본 추출’의 부정확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다. 개정된 선거법은 올해 2월부터 도입됐고 5월 조기 대선에 적용됐다. 그 결과 총선과 달리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가 상당 부분 일치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개정된 공직선거법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요서울]은 ‘여론조사 안심번호제’ 및 개정된 공직선거법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선관위 “사용 유도하지만 강제 못해… 정착돼 가는 과정”
- ‘안심번호’ 받는 데만 10일… 현안 조사일 땐 사실상 ‘무의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전국 SNS 커뮤니티 대표단 워크숍’ 인사말에서 “여론조사 기관이 조작된 국민 여론을 언론에 퍼뜨리고 있다. 더 이상 이 나라가 괴벨스가 지배하는 그런 허위 선전장이 판치게 놔둘 수는 없다”며 “그래서 SNS가 선거를 앞두고 가장 중요하다. 여러분 명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도 “일부만 답변하는 여론조사를 믿지 않는다”며 일관되게 ‘여론조사 무용론’을 주장해 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 한다’, ‘본인의 지지율이 낮게 나오니 하는 말’ 등 비난을 가했지만 전문가들과 정치권 관계자들 일부는 홍 대표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고 말한다.
 
국민 다수도 ‘여론조사 무용론’에 일부분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자료를 봐도 ‘선거 여론조사는 과학적이며 정확하다’는 물음에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이 71%에 이를 정도로 국민의 상당수가 여론조사 신뢰도에 물음표를 달고 있다.
 
이처럼 ‘여론조사 무용론’이 팽배해진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전화조사 방식의 문제점을 꼽는다. 젊은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주로 이용하는데 여론조사 대부분이 집 전화를 대상으로 조사해 실제와 상당한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대 총선에서 예상과 달리 새누리당이 참패한 결과가 나온 것이 젊은 층의 여론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2월 개정된 공직선거법,
긍정적 효과 기대하지만...

 
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선거여론조사기관의 공표·보도용 여론조사에도 휴대전화 가상번호 이용 가능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기관만 선거여론조사 공표·보도 허용 등의 내용이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의견을 제출했고 개정된 선거법은 올해 2월부터 본격 도입됐다.
 
‘안심번호’란 휴대전화 사용자의 개인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이동통신사업자가 임의로 부여하는 일회용 전화번호를 말한다. 이동통신사가 중앙선관위에 고객의 성별, 연령 등을 고려해 여론조사의 표본인 개인별 전화번호를 안심번호로 전환해 넘기면 여론조사 기관이 이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 같은 ‘안심번호제’에도 몇 가지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선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 ‘안심번호제’에 강제력마저 없기에 유명무실한 법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여론조사 전문업체가 자체 DB만으로도 할 수 있는 여론조사를 굳이 강제성이 없는 ‘안심번호제’를 비용까지 더 들여가며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개정된 선거법의 실효성이 사라지고 만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심번호제’는 개인정보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분명 존재한다”면서도 “그러나 강제성이 없는 탓에 비용이 더 드는 ‘안심번호제’를 여론조사업체가 적극 활용하진 않을 것이다. 기존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DB를 최대한 활용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관위 측도 ‘안심번호제’와 관련 개인정보유출을 막을 수 있다는 점만 강조할 뿐 강제성이 없는 데 따른 부작용 해결에는 별다른 ‘묘수’가 없는 듯하다. 선관위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존 제도에서는 개인정보 침해 논란이 있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출처 등에 의구심을 품고 전화를 끊어 버린다든가 제대로 조사에 응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안심번호’ 도입으로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본다”면서도 강제성이 없는 점에 대해선 “각 정당과 언론사 등이 여론조사를 실시할 때 ‘안심번호’ 사용을 유도하고 있긴 하나 강제하고 있진 않다. 올해 2월에 개정된 법안이기에 정착돼 가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어느 정도의 ‘허점’이 있음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대 15일 소요 여론조사,
‘왜곡’ 가능성 높아져

 
설상가상으로 ‘안심번호’를 받기 위해선 ‘비용’뿐만 아니라 ‘기간’도 상당히 걸리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론조사 전문업체가 선관위에 안심번호를 요청하면 선관위가 통신사에게 안심번호를 받게 되는데 이 기간이 대략 10일 정도 소요된다. 이후 안심번호를 수령한 여론조사업체가 3~5일 정도의 기간에 여론조사를 실시하면 결국 최종 공표는 대략 15일은 지나야 가능하다.
 
이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지지율, 정당 지지율과 같은 정례 여론조사는 시간이 좀 경과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중국 방문 등과 같은 현안 조사는 그 현안이 발생한 뒤 10일 뒤 여론조사가 실시된다면 사실상 결과는 무의미해지고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며 “비용도 늘고 기간도 느는 안심번호제는 통신사만 배불리는 제도” 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은 ‘안심번호제’의 부작용뿐만 아니라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심위)에 등록된 기관만 선거여론조사를 공표·보도 허용하도록 한 개정안에도 문제점을 제기한다. 공직선거법에는 ▲여론조사 기관에 2년 이상 근무한 1명 이상을 포함한 3명 이상 상근 ▲여론조사 실시 실적 10회 이상 또는 매출액 5000만 원 이상 ▲조사시스템과 상근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무소 등을 충족시켜야 등록이 가능토록 했다. 그런데 이는 반대로 상대적으로 업체 규모가 작은 여론조사기관은 등록을 할 수 없게 됨을 뜻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떴다방’식 여론조사 업체들을 걸러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성실히 여론조사를 시행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등록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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