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개헌 밀어붙이는 與... 무산되든 성사되든 잃을 것 없어
- ‘자유민주’ 없애고 헌재 합헌 결정은 ‘뒤집고’... 野 “사회주의 국가 만들 텐가”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제헌 70주년을 맞은 2018년은 더할 나위 없는 개헌 호기다. ‘개헌’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이 무르익었다. ‘개헌’ 자체에 부정적이었던 한국당도 ‘연내 국민투표 개헌’으로 입장을 선회한 상태다. 이로서 ‘31년 만의 개헌’에 청신호가 켜지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개헌’을 주도해야 할 정부·여당의 속내엔 다른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여권은 6월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다. 투표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그 속내엔 지방선거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 깔려있다는 게 정치권의 정설이다. 급기야 정세균 국회의장은 ‘대통령 개헌안’까지 꺼내 들며 6월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적 열망인 ‘개헌’이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필승 전략’으로 전락된 모습이다. 설상가상으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제출한 개헌안엔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에 반(反)하는 내용이 다수 담겨있어 개헌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대로라면 자칫 ‘개헌’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일 “오는 2월 말까지 개헌안을 마련해서 지방선거와 동시에 투표를 해 국민과의 대선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6월 개헌 국민투표를 주장하는 근거는 국민투표에 들어가는 비용과 투표율이다. 지방선거와 별도로 개헌 국민투표를 진행하게 되면 1227억 원이 더 소요되고, 투표율 역시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개헌에 적극적일 수 있는 데는 여론이 개헌과 지방선거 동시투표에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이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7~2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 포인트)에서 응답자의 44.7%는 오는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치러야 한다고 답했다.
 
與 ‘대통령 개헌발의’ 압박
한국당 ‘개헌 반대 세력’ 프레임 우려
 

이는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6월 개헌이 무산되더라도 한국당은 지선에서 ‘개헌에 반대했던 세력’으로 또다시 ‘적폐’ 프레임에 갇힐 수도 있게 됨을 뜻한다. 민주당 입장에선 6월 개헌이 성사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설사 좌절돼도 지방선거를 이길 수 있는 손해 볼 것 없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민주당이 새해부터 연일 2월까지 개헌안을 마련하자고 시기를 재촉하는 것 역시 이 같은 구도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신년하례회에서 “헌법상 대통령도 개헌을 발의할 권능을 부여받고 있다”고 ‘대통령 개헌안’까지 언급하며 야당을 압박했다.
 
정치권은 ‘2월 중’ 개헌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6월 국민투표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점친다. 개헌안 공고와 국회 의결, 국민 투표에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시점은 3월 초가 될 공산이 크다.
 
개헌안은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회 297석 중 개헌 저지선(3분의 1)을 넘는 116석을 보유한 한국당이 반대하는 한, 개헌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어렵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민주당이 ‘대통령 개헌안’까지 언급한 것은 개헌안이 무산되어도 한국당을 ‘개헌 반대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지방선거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정치권은 분석하는 것이다.
 
개헌안 “대통령 권력 분산 없고,
좌파 헌법안 등장... 헌재도 부정”
 

한편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제출한 개헌안엔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에 반(反)하는 내용이 다수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특위는 국회 공식 위원회다. 여기서 참고하려고 전문가 53명을 통해 11개월간 만든 안이다. 지금까지 나온 가장 공식적 개헌안이다
 
그런데 개헌특위가 제출한 개헌안엔 사형제 폐지나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등의 내용이 다수 담겼다. 자문위 개헌안 제11조엔 '생명권'을 신설하는 내용과 함께 ‘사형은 폐지된다’는 문구가 담겼다. 헌재는 지난 1996년과 2010년 등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의 근거 조항인 형법 250조에 대한 위헌 여부를 심판했다. 헌재는 이 과정에서 “사형이 (다른 형벌보다) 가장 강력한 범죄 억지력을 갖는다”며 두 차례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1996년엔 헌재 재판관의 의견이 7(유지) 대 2(폐지), 2010년엔 5대4 였다.
 
자문위는 또 개헌안 52조 3항을 신설해 ‘누구든지 양심에 반하여 집총(執銃) 병역을 강제받지 아니하고,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대체복무를 할 수 있다’라고 했다. 최상위법인 헌법으로 군(軍) 대체복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대체복무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는 지난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았다. 2011년 헌재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병역법에 대해 7대 2 합헌 결정을 내리며 “(현행 병역법은) 국가안보 및 병역의무의 형평성이라는 중대한 공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개헌특위는 헌법 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를 빼고, ‘자유시장경제’ 대신 ‘평등한 민주사회’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4조에서는 통일 정책의 전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민주적 기본질서’로 바꿨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를 크게 약화시켰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2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아마도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것이 문재인 정부 5년이 하려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며 “자유한국당은 이런 사회주의 헌법 개정, 문재인 개헌을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개정, 국민 개헌을 끝까지 관철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정권이 왜 이렇게 국민 개헌을 걷어차고 졸속 개헌을 밀어붙이려는지 알 것 같다”면서 “자유시장경제가 없어지고 사회적 경제가 자리 잡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 역시 “이번 개헌은 순전히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바꾸자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나온 개헌안은 대통령 권력 분산은 온데간데없고 엉뚱한 좌파 헌법안이 등장했다. 좌파 세력에게 권력 분산 개헌이 이용당한 것이다. 심지어 헌재까지 부정하고 있다”라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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