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로고 바꾸더니 현정은 회장 등 전 경영진 고소도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현대그룹(회장 현정은) 품을 떠난 현대상선(대표 유창근)이 독자노선 구축을 위한 보폭을 늘리는 모습이다. 앞서 현대상선은 현대그룹 시절 로고(logo) 대신 HMM(Hyundai Merchant Marine) 을 사용하면서 거리두기를 시작하더니 지난 15일에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전임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전을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어떤 배경이 작용했는지 업계에선 다양한 해석과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주인 찾겠다는 의지? 고소전 두고 각종 해석 난무
옛 가족에 발등 찍힌 현대그룹 “상세 내용 파악 중” 반박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현대상선이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 등을 고소한 것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현대상선이 현대그룹과 별개로 독자노선을 타기 위한 현대그룹 이미지 벗겨내기 작업 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대상선은 지난 15일 현정은 회장 등 현대상선의 전임 경영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전 경영진이 체결한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관련 계약으로 최소 1094억 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2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2013년 말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1400%까지 올랐다. 당시 현대상선은 현대로지스틱스·증권 등 자산을 매각해 3조3000억 원 규모의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구 계획안을 내놨다.

그런데 2014년 진행되기 시작한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계약이 약 3년이 지난 다음 문제가 된 것이다. 해당 계약은 우선 일본계 금융회사 오릭스가 6500억 원을 투자해 사모투자펀드(PEF) 오릭스 PE를 만든 뒤 현대로지스틱스 지분 88.8%를 인수한다.

이후 롯데그룹이 오릭스 PE가 가진 지분을 다시 인수하는 방식이다. 해당 방식은 롯데그룹이 오릭스 PE의 지분을 6500억 원 이하에 매입하게 되면 펀드투자자들의 손해가 발생하는데, 현대상선이 1064억 원을 펀드 후순위로 투자해 투자자들이 입을 손실을 부담해 준 것.

또한 현대상선은 1100억원 규모의 후순위투자는 물론 연간 영업이익이 162억 원에 미치지 못할 경우 미달 금액을 5년간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현대상선은 후순위 투자금 1100억 원은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지난해 이미 회계 상 손실 처리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현대상선은 1094억 원 규모의 후순위 투자, 연간 162억 원 영업이익 보장 등의 계약 내용이 현대상선에는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전임 경영진들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형태라는 설명이다.

장진석 현대상선 준법경영실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비용 절감 등을 목적으로 당시 계약 내용을 검토하다가 수상한 점들을 발견했다”며 “현대상선에 상당한 손실을 미치는 내용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거친 결과 고소를 한 것”이라고 소송 배경을 밝혔다. 

특히 롯데로지스틱스에 매년 160억 원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선 “(롯데로지스틱스로부터) 민사소송이 들어와 (현정은 회장 등을) 고소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곤란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현대상선에 따르면 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배임에 의한 피해는 반드시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후순위 투자를 계약한 것과 관련해선 “투자금액 이상으로 손해를 본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특히 “(매각 당시) 단순히 현대상선이 회수 가능성을 잘못 계산한 것이 아니라 후순위 투자 금액 회수가 거의 불가능한 구조의 거래를 했다”면서 “현대상선은 해당 계약으로 상당한 피해를 앞으로도 입어야 하지만, 현정은 회장 등은 확정적 이득을 실현했다”고 지적했다.

현정은 회장 등 특정 경영진을 지목해 배임 혐의를 묻 이유는 “당시 경영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고소했다. 현대상선에 기획부가 있기는 했지만, 주요 의사 결정은 현대그룹의 전략기획본부실이 많이 관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영상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되면 배임 혐의가 입증될 수 없다. 현정은 회장 등 전임 경영진이 손실 가능성을 인지한 상황에서 후순위투자 계약과 영업 손실 보전 계약 등을 한 정황이 있는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상선의 고소는 결과와 상관 없이 앞서 현대상선이 현대그룹 일원으로 있을 때 사용했던 회사 로고를 지웠던 행동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두 가지 행동 모두 현대그룹에서 완전히 독립해 새로운 주인을 적극적으로 찾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실제 현대상선은 지난해 9월부터 컨테이너 등의 현대상선 로고를 지우고 영문 이니셜인 HMM(Hyundai Merchant Marine)을 사용하기로 했다. 현대상선과 HMM 로고를 혼용하면서 해외 바이어들이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이유다.

또 HMM이 많이 알려진 데다 현대상선이란 이름은 부실 상황 때문에 해외에서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편이라는 게 현대상선의 설명이다. 현대상선은 2016년 7월 채권단 출자전환을 통해 경영권이 현대그룹에서 KDB 산업은행으로 넘어간 바 있다.

따라서 고소 및 로고 변경 모두 현대그룹 및 현정은 회장과 연결고리를 단절하는 의미로 읽히는 것이다. 현대그룹과 연관관계가 거의 없어진 만큼 향후 새 주인을 더 수월하게 찾겠다는 의도 역시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고소 건과 관련해 현대그룹은 “당시 현대상선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자산 매각 등 유동성을 확보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사회 결의 등 적법적인 절차를 거쳐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을 진행했으며, 현재 상세한 내용을 파악 중”이라고 반박한다.

더불어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 매각, 현대증권 매각, 현정은 회장의 300억 원 사재출연 등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현대로지스틱스 매각의 경우 주 채권은행과 협의해 진행했다”고 선을 그었다.

향후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피고소인 당사자들이 개별적으로 법률적 검토를 통해 적절히 대응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의 현대그룹 지우기 여정이 향후 어떻게 흘러갈지는 당분간 주목해 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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