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 대상 배기가스 실험 ‘발상 이해하기 어려워’

‘디젤게이트’ 이후 2년 만에 신차 판매 재개…악영향 끼치나
 
시민단체 “이익 위해 생명 등한시하는 모습에 여론 들끓어”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배출가스 인증 서류 조작 논란으로 주요 차량 인증취소 및 판매정지 처분을 받은 폭스바겐이 이번에는 ‘동물실험’ 파문에 휩싸였다. 폭스바겐의 주도로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디젤 자동차 배출가스 관련 실험에 원숭이 10마리가 동원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 특히 폭스바겐코리아가 2년의 공백기를 가진 뒤 국내시장에 복귀 신호탄을 쏘기 직전에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동물보호협회는 물론 자동차 관련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디젤 게이트에 따른 도덕적 비난이 여전히 이어지는 가운데 또 한 번 도의적 문제에 휩싸인 폭스바겐의 진통은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폭스바겐이 미국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의 러브레이스 호흡기연구소(이하 LRRI)에서 디젤 자동차 배출가스 관련 실험에 원숭이 10마리를 동원했다. 이 실험은 ‘유럽 운송 분야 환경보건연구그룹’(이하 EUGT)이 LRRI에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EUGT는 폭스바겐과 다임러, BMW 등 독일 자동차업체들과 부품업체인 보쉬가 자금을 대서 만든 단체다. 특히 ‘원숭이 실험’은 폭스바겐이 주도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실험 장비를 고안하는 과정 역시 폭스바겐의 감독 하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실험’ 논란은 폭스바겐을 상대로 미국에서 제기된 집단 소송 과정에서 밝혀졌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소송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폭스바겐 비틀의 최신 디젤 모델과 1999년형 포드 디젤 픽업 트럭의 배출가스 비교 실험을 진행했다.
 
해당 실험은 자동차가 주행하면서 배출된 가스를 원숭이들이 있는 방으로 보내 배출가스를 4시간 동안 흡입하도록 하는 흡입 실험이 진행됐다. 특히 실험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되지 않게 미리 만화 영화 시청 훈련을 한 원숭이들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실험에 이용된 원숭이들의 행방은 파악이 안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원숭이는 물론 인간을 대상으로 배기가스 실험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인간 대상 실험에 대해선 폭스바겐 측의 구체적인 공식 성명이 나오진 않았다.
 
또 해당 실험 대상 차량에 배출가스 조작장치가 설치돼 있었지만 연구진들은 해당 사실을 모른 채 실험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폭스바겐은 2015년 이같은 소프트웨어를 차량에 설치해 배출가스 검사를 속인 사실이 밝혀져 260억 달러 이상을 벌금으로 물은 바 있다.
 
신차 판매 현장서 침묵 고수
 
‘디젤게이트'로 판매정지 처분을 받고 2년 만에 한국 시장에 복귀하려던 폭스바겐코리아가 사업 재개 직전에 초대형 악재를 맞았다. 디젤 게이트에 따른 도덕적 비난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또 한 번 도의적 문제에 휩싸이며 향후 행보에 업계 관심이 쏠린다.
 
폭스바겐코리아가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폭스바겐 대치전시장에서 신형 파사트 GT의 출시를 알리는 포토세션을 열었다. 그러나 ‘디젤 게이트’ ‘동물실험’에 대해서는 침묵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디젤게이트’에 이어 ‘동물실험’까지 논란이 일자 폭스바겐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다. 한국동물보호협회 관계자는 “동물운동가들은 모두 동물실험을 반대한다”며 “학대의 의미로 실험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원숭이와 사람을 대상으로 굳이 실험을 했어야 했는지 의문이 든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약물 등의 동물실험 없이는 상용화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지만 이번 배기가스 관련 실험은 불필요한 실험으로 보인다”며 “배기가스 배출량은 기계로도 충분히 관측 가능한데 굳이 자동차와 관련된 실험에 왜 원숭이를 사용했는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원숭이가 이만큼 괜찮으니 이 차량을 이용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더 반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건지 의문이 든다”며 “목숨을 담보로 쓸데없는 고통을 주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생명을 경시하는 모습에 여론이 들끓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정주 한국자동차소비자연맹 회장은 “원숭이는 물론 사람까지 실험 대상으로 삼아 배기가스 실험을 했다는 발상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독가스 학살이 떠올랐다. 그렇게 무해한데 경영진이나 연구원들이 직접 실험에 참가했다면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 회장은 국내 신차 판매에 나선 폭스바겐에 대해 “리콜 이행률도 미미하고, 법정 다툼도 마무리되지 않고, 최고 경영자는 한국 사법부의 출두 명령을 무시하고 귀국하지 않는 상황에서 디젤게이트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아우디에 이어 폭스바겐까지 판매 재개에 들어갔다니 당혹스럽다”며 “한국 국민으로서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이제 소비자들이 나서서 바로 잡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라고 했다.
 
폭스바겐의 찜찜한 해명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측은 본사의 방침에 따라 해당 실험 관련 이슈에 대해서 한국 지사가 따로 의견을 낼 수는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며 배출가스 실험 관련 폭스바겐 그룹 입장문을 첨부했다. 이어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와 소속 브랜드는 고객께서 보내주신 믿음에 보답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앞으로도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폭스바겐 그룹 입장문에 따르면 “해당 연구의 목적은 직장(업무현장)에서의 질소산화물 기준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것이며 독일의 직장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 기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의 농도에 노출됐다”면서 “이 연구와 디젤 이슈, 그리고 EUGT에 의해 실시된 다른 연구와 디젤 이슈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는 것을 밝힌다”고 해명했다. 이어 EUGT는 조직 내부 사정으로 2017년 6월 30일부로 해체됐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