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학생들 점거농성까지 감행… 학교 측 ‘묵묵부답’

<뉴시스>
[일요서울 | 박아름 기자] 동국대(총장 보광스님) 청소노동자들의 올 겨울은 유독 추울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 및 긴축 재정을 이유로 청소노동자 인원 감축에 나섰던 고려대·홍익대 등이 기존 계획을 철회하고 노동자와 화합 국면에 들어선 반면, 동국대는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실 점거농성까지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 중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까지 청소노동자 인원감축을 우려하고 나선 상황, 학교 측이 계속해서 침묵을 고수할 경우 교내 안팎의 지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저임금 인상’ 이유로 인원 감축, 충원 없이 ‘근로학생’ 대체
정부 나서며 일부 학교 노조 합의 나섰지만 동국대 ‘요지부동’

 
동국대는 지난해 12월 31일 청소노동자 8명이 정년퇴직하자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재정 부담과 긴축 재정을 이유로 신규 채용 대신 청소근로장학생을 선발키로 공고했다. 청소근로장학생을 선발하는 것은 ‘인원 감축으로 인한 노동 강도 심화’의 문제뿐 아니라, 기존 전일제 근무자를 단시간 근무자로 대체함으로써 청소노동자 전반의 고용 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와 ‘동국대 청소노동자 인원 충원 문제 해결을 위한 동국인 모임’은 지난달 29일 낮 12시부터 본관 점거농성에 돌입하고 전면 파업을 시행, 학교 측과 대화를 요구했다.

이들은 이튿날인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인원감축 반대 및 신규고용 촉구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학교 측은)정년퇴직 청소노동자 8명의 자리를 청소근로장학생으로 대체함으로써 학생들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게 만들었다”며 “3차례에 걸쳐 학교와 면담을 요구했지만 학교는 묵묵부답이다. 900여 명의 연대서명과 질의서를 보냈지만 이 또한 무시했다”고 일갈했다. 결국 수차례 면담 요청과 질의서에 대한 학교 측의 무대응이 이들을 본관 점거농성까지 내몬 것.

그러면서 이들은 “학교는 재정적 어려움을 오로지 노동자들에게 전가했다”며 “학생이나 교직원이 청소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노동자들 노동 강도가 강화되고 학생들 학습 환경이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은 학교 측이 기존 계획을 철회할 때까지, 즉 청소노동자 인원 충원 계획을 세울 때까지 무기한 농성 및 전면 파업에 들어갈 계획이다.

비단 청소노동자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달 29일 익명으로 운영되는 동국대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는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다. 양심고백을 하고자 여기에 글을 쓴다”는 A씨의 글이 게재됐다.

글에 따르면 A씨는 동국대에서 청소노동자 인원감축 대신 감행한 ‘청소근로장학생’ 지원자였다. A씨는 청소근로장학생을 ‘오전 7~9시 2시간 청소하고 일 3만 원을 받아가는 좋은 돈벌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하지만 내가 지원한 청소근로는 어머님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행위였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쓰레기 몇 개 줍고 큰돈을 받는 좋은 기회지만 어머님들 입장에서는 더 고생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마음에 면접도 보지 않고 뛰쳐나왔다고 소회했다.

이처럼 학내에는 청소노동자 인원감축 반대 목소리가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학교 측은 요지부동이다. 일각에서는 동국대 총장 퇴진 운동처럼 학교 측과 학생 측의 불통(不通)으로 사태가 장기화될까 우려하는 시각도 크다. 동국대 학생 B씨는 “학교 측과 학생들 간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제대로 타협이 된 적이 없는 것 같다”며 “학내 총장 퇴진 운동도 2015년부터 현재까지 2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데 집회, 단식 등 모든 것을 해봤지만 소통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청소노동자 아주머니들도 같은 사태에 내몰릴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같은 갈등 빚었던 고려대·홍익대 화합 국면
 
이 가운데 고려대, 홍익대 등 일부 학교들은 노조와 갈등 대신 타협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 학교들은 앞서 동국대와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청소노동자 인원감축과 단시간 근로자 대체 방침을 세운 바 있다.

고려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이유로 정년퇴직한 청소노동자 자리를 단시간 노동자로 대체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지난달 30일 철회하기로 했다. 대신 전일제 노동자를 채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는 이날 “원청인 고려대가 올해 정년퇴직한 노동자 숫자만큼 10명을 하루 8시간 전일제 노동자로 고용하기로 했다”며 “고려대가 매년 고용불안에 떠는 청소노동자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도록 향후 고용안정 방안을 지속 강구하기로 했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서경지부 측 관계자는 “정부와 학생들 등 모두의 관심이 모여 학교 측의 이러한 결정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앞서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은 지난달 2~29일 청소노동자 10명의 자리를 단시간 노동자로 대체하겠다는 학교 측의 결정에 반대하며 매일 집회를 벌여 왔다. 이에 11일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려대를 방문, 최저임금 인상 후 청소노동자를 단시간 노동자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하고 학교 측에 대책 마련을 요청한 바 있다.

홍익대도 고려대에 이어 지난 1일 인원감축 방침을 철회했다. 홍익대는 용역비용을 줄이겠다며 청소노동자 4명을 해고했는데, 이들 모두를 원직 복귀시켰다.
지난달 2일부터 학내 집회를 벌인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는 “이번 승리는 단순히 청소노동자들의 승리가 아니다”며 “함께 싸워준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사회단체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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