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탄핵 정국 ‘철새’ 무더기 양산돼
- 안철수 ‘철’들지 않으면 ‘철수정치’ 계속돼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번식지와 추운 겨울을 나는 월동지가 따로 정해져 있어 일정한 철에 일정한 길을 날아서 이동하는 새를 철새라고 한다. 철새는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떼 지어 먼 거리를 오가는데, 우리나라에 봄에 와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에 남쪽으로 돌아가는 새를 여름철새라 하고, 가을에 와서 겨울을 나고 봄에 북쪽으로 돌아가는 새를 겨울철새라고 한다.
 
이러한 생물학적 철새들에 빗대어 정치권에서도 오래전부터 철새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져왔다. 정치권에서 이야기되는 철새논쟁이란 선거철이 되면 자신의 공천 가능성, 당선 가능성 등 정치적 이익을 좆아 당적을 이리저리 옮기는 정치인들을 철새정치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철새정치인으로는 한때 젊은 정치의 아이콘으로 대통령선거에까지 도전했던 이인제 전 의원, 여의도 정치권의 막후 실력자이자 책사로 꼽히는 김한길 전 의원 등이 있다.
 
여야 막론하고
정치권 철새 대이동

 
작년에는 현직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1년 동안 이러한 철새정치인이 무더기로 양산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새누리당이 와해되면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각각 갈라섰고, 또한 5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는 바른정당 의원들이 생기면서 철새정치인 논쟁은 가열되었다.

거기에 안철수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의 몇 몇 국회의원이 국민의당에 합류하면서 철새정치인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지난 2016년 4월 총선으로 3당 체제를 만들었던 유권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의도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4당 체제를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지금 여의도 정치권은 또다시 대이동을 시작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철새는 ‘철’에 따라 이동하지만, 이들의 이동엔 ‘철’도 없고, 또 ‘철’ 없이 이동하기 일쑤다.
 
하기야 이들은 자신들의 이동이 나름대로 철에 따라 이동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다가오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연명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짝짓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적 기반을 여당에게 잠식당한 국민의당과 국민적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이 아닌 바른정당으로서는 6월 13일의 지방선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적 짝짓기를 선택할 이유는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양당의 대표인 안철수와 유승민의 선택에 대해서 각각의 정당 내에서는 이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들 두 대표의 선택이 두 당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돌파라는 제3의길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의 생각과 달랐던 사람들은 각각의 회귀본능이 발휘되어 바른정당 출신들은 자유한국당으로 복귀하는 길을 선택하였고, 국민의당 출신들은 호남기반의 신당창당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진정한 의미의 철새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 지난 가을부터 시작되었던 철새정치인의 대이동이 일단락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당을 탈당한 사람들이 지난 6일에 창당한 민주평화당은 국회원내교섭단체 요건인 20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지방선거 이후의 국회 원 구성까지는 실질적인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하는 바른미래당은 자신들이 제3당의 지위를 활용하여 정치적 역할의 극대화를 꾀해 보려고 했지만, 생각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통합과정의 출혈을 감당해 내지 못한 안철수 대표의 리더십은 다시금 크게 손상되는 결과를 맛보았다.
 
안철수 대표는 오는 13일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완료되면 지도부 일선에서 퇴진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교묘한 선택이다. 이로써 바른미래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어떠한 결과를 얻든지 안철수 대표의 정치적 책임은 크게 감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안철수 대표가 생각했던 합당의 궁극적인 목표는 6.13 지방선거에서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이너스 통합이라는 출혈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생명은 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성인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그는 중학교 때에 가출을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 집에서는 말썽꾸러기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아 안심은 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학교에 붙들어 놓고 싶은 부모 욕심에 그는 중학교를 여러 군데 옮겨 다녔다. 물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시기, 그래도 수학만큼은 다른 아이들을 따라갈 정도는 돼야 한다는 생각에 학원을 보냈다.
 
학원에서는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했다. 우리도 그런 줄 알았다. 학원 선생님은 아이에게 문제집을 풀게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단다. 그런데 아이가 물어보지 않으니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문제집을 잘 풀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이의 대답은 문제집을 하나도 풀지 않았다고 했다.
 
문제집을 풀지 않았기에 그에게는 모르는 문제가 없었고, 그랬기 때문에 학원 선생님께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다. 전형적인 회피 전략이다.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회피하게 되면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날 일이 두려운 사람은 밤잠을 설치거나,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을 청할 뿐이다.
 
2011년 늦여름, 50%의 지지를 받던 그가 5%의 지지를 받던 이에게 했던 행위는 양보였다. 많은 이들이 그의 행위를 칭송했고, 그는 새정치의 아이콘이 되었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거대 정당의 융단폭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며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그럼에도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다. 그가 양보한 결과는 실패였고, 그의 양보는 평가받지 못했다. 그 이후 그의 정치는 ‘철수정치’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거대 야당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갔으며, 양의 탈을 쓴 호랑이에 쫓겨 줄행랑을 쳤다. 지난 대선에서는 통합과 연대가 절실했으나 무리에서 벗어난 외로운 늑대의 길을 택했다.
 
이번에도 6.13 지방선거라는 어려움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전략으로 ‘철수정치’의 길을 고집했다. 사물의 이치를 분별할 줄 아는 힘이나 능력을 ‘철’이라고 하는데, ‘철’이 들지 않으면 ‘철수 정치’의 길을 걷게 된다. 일 년 중 무언가를 하는데 가장 적합한 때도 ‘철’이라고 하는데, ‘철’을 모르면 ‘철새 정치인’이 된다. 그의 앞길이 암울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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