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 여론에 대한 아전인수가 낳은 보수파의 오판
- ‘화염’과 ‘햇볕’ 대립시대 넘는 새로운 안보 전략 요구
 

평창올림픽은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는 중이다. 사실 대회 시작 이전에는 국가를 걱정하는 입장으로 메달 개수나 순위조차 마음 편히 바라지 못하고 다만 대회의 원활한 집행을 바랄 만큼 아슬아슬한 구석이 많았다. 전임 정부 비선실세가 대회의 각종 이권을 착복했다는 의혹에,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그로 인한 각국 스포츠리그의 불참 선언 등 도대체 경기가 제대로 진행될지조차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이를 타개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평화올림픽’을 선언했는데 그 결실 중 하나였던 여성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대한 국내 여론도 싸하게 식는 상황이 불과 대회 직전에 왔다.
 
그 모든 악재를 두고 봤을 때엔, 의외의 성과가 왔다. 문재인 정부가 평창올림픽에 너무 많은 것을 걸었다는 우려가 가능했지만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왔다. 펜스 부통령과 이방카가 만날 뻔한 상황 역시 그 사례일 것이다. 비록 만남은 불발됐지만 이방카 방한과 북한 고위급 대표단 파견으로 가능성의 불씨는 남아 있다.
 
대회 직전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현재 중년 세대의 감상적 민족주의와는 다른 감수성을 보여준 것이 확인되긴 했지만 그 불만이 정부 여당 지지율을 낮추는 쪽으로 가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를 활용하여 인공기 논란이나 김일성 가면 논란을 만들려했던 제 야당이 머쓱한 상황이 됐다.
 
2030 ‘감상적 민족주의’에
동의하지 않지만…

 
이러한 상황은 변화무쌍한 여론에 대한 아전인수를 경계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소위 ‘86’과 그보다 조금 연배가 어린 4050세대의 감상적 민족주의가 현재 2030의 정치사회적 감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 때에, 2030세대가 보여준 반북 성향을 자신들의 반공주의와 비슷한 것으로 이해한 6070세대나 보수 언론의 대응이 여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를 따져보아야만 한다.
 
2030세대가 북한을 싫어한다면, 더 나아가 공산주의까지 싫어한다면, 그것이 찌질하고, 가난하고,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덧붙여 6070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사악하다는 판단을 명징하게 내리는 이들 역시 적지는 않을 것이다. 이 점은 그들이 4050세대의 감수성과 다른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2030세대의 반북·반공 정서를 6070세대의 그것과 포개어 생각할 수 있을까? 86 및 그 이하 세대를 미워하는 그들의 감수성을 지지하는 이들이 드디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노년세대는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명명하였고 이것이 대한민국의 멸망의 단초인 것처럼 설명했다.
 
2030세대의 입장에선 이렇다. 그들이 ‘극혐’(‘극도로 혐오함’의 약자인 인터넷 조어)하는 찌질하고, 가난하고, 비민주적인 북한이 남한을 적화통일할 수 있다는 6070세대의 상상은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생각만 해도 불쾌한 일이고, 피해망상이며, 자신들이 다른 이들의 선전·선동에 쉽게 놀아날 수 있는 허술한 상대로 여겨졌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평창올림픽엔 태극기가 존재하지 않기는커녕 개막식을 통해 태극기 문양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인공기는 없었고 한반도기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평양올림픽’을 우려한 사람들의 생각대로 인공기와 김일성 가면이 출몰했다고 한들 마찬가지다.
 
그것에 한국 시민들이 놀아나서 국가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발상은 너무 나간 것이다. 한국의 국력은 북한에 비해 월등하며 체체경쟁은 더 이상 없다. 86세대가 구닥다리임을 비난하면서 비판자들이 그 이전 시대의 감수성을 보여주면 청년세대가 무슨 수로 그들에게 넘어올 수 있을까.
 
북한 제재,
이제는 셈법이 달라야 한다

 
이번 대회가 보여준 한반도 안보문제의 변화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이 경제제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명제는 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명제가 부정된다면 지금까지의 전략적 접근이 모조리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양 당파가 경쟁했던 두 방책인 ‘화염’(군사적 대응책)과 ‘햇볕(경제원조를 통한 유인책)이 동시에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군사제재 이외의 제재 방책이 유효하다면 ‘타격이 답이다‘와 ‘교류협력이 답이다‘라는 양 당파의 싸움은 원점부터 재조명되어야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기존의 ‘화염’파와 ‘햇볕’파는 자신들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하는 것은 상대방의 편견에 의한 것이며, 자신들은 훨씬 유연하게 제반 상황에 대처하려고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사실상 보통의 시민들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그것이라 볼 수 있다.
 
어느 쪽 입장이든 현재의 변화된 상황에서 자신들의 입장이 이렇게 진전했으며 그걸 바탕으로 현재의 북한 핵문제 및 외교·안보 난맥 상황을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 여당이 화해 무드를 통해 섣불리 경제제재를 푸는 방향으로 간다면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제재를 기반으로 한 대화에 무조건적으로 찬물을 끼얹는 시도도 의아해보일 수밖에 없다. 현재 보수 야당들이 내세우는 ‘김영철 회담 불가론’을 생각해보자. ‘김영철이 천안함 사태 주범’이란 얘기를 국민들은 이전에 얼마나 들어봤을까?
 
북한 체제 특성상 주범 중 주범이라면 김정일과 김정은 부자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들을 배제하고 누구와 대화할 수 있을까? 만일 이방카와 김영철이 회담을 나누게 된다면 이젠 뭐라고 말할 것인가? 누구든 변화된 환경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혁신하는 계기로 삼지 않는다면 한순간에 우스갯소리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야당의 총공세에도 불구하고 평창올림픽이 의외로 문재인 정부 지지율 하락의 계기가 되지 못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 ‘장군, 멍군’의 정황을 살펴보면서 국민 여론을 이해하고 수렴하는 행위가 정치집단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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