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지지부진하던 개헌 논의가 3월 정국의 뜨거운 화두가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 공약’ 실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청와대에 설치된 국민헌법자문위원회는 이달 13일 개헌안 보고, 21일 대통령 발의(發議) 일정을 추진 중이다. 여당도 이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앞세워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를 위한 여론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처럼 정부·여당이 개헌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여권이 개헌 논의에서 활용할 것으로 보이는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를 분석해 봤다.
 

-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빠지면?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데...
- 4·19 혁명·6·10 항쟁·부마항쟁·5·18 민주화운동에 ‘촛불 혁명’까지 포함?
 

더불어민주당이 ‘국민과의 약속’을 앞세워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를 위한 여론 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주당은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국회 개헌안을 마련하기 위해 야당을 압박하는 동시에 일반 국민 대상 여론전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제1야당 자유한국당을 압박하기 위해 여아 5당 원내대표, 원내수석부대표, 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헌정특위 간사) 간 회동을 통해 개헌 논의를 진행하자고 여러 차례 야당에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당 측은 이 방안에 대해 ‘교섭단체 간 회동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측은 교섭단체 간 논의라는 핑계로 야당이 개헌 논의를 피하고 있다는 논리로 맞불을 놓고 있다. 나아가 한국당에 대해서는 ‘트집잡기’와 ‘발목잡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당 자체 개헌안을 제안하라는 압박을 병행하고 있다.
 
민주당, 한국당 뺀
개헌 공동전선 구축 모색…

 
기세를 몰아 여권은 지난달 25일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를 위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야당에 ‘약속정치연대’를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김민석 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약속 파기 전문 한국당 외에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모든 당의 정책연구원 및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에 6월 동시개헌 실시 관련 합동세미나 개최를 제안한다”며 “약속정치를 공언한 모든 정당의 6월 개헌 대국민약속 재천명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개헌안은 재적의원 과반 요건을 충족하면 발의할 수 있다. 민주당과 야당들이 연대할 경우 발의가 가능해진다. 다만 개헌안 의결 정족수인 재적의원 3분의 2를 채우기 위해서는 한국당의 협조가 불가피하다.
 
이처럼 여권이 개헌에 고삐를 틀어쥐자 청와대도 지원 사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21일 “국회가 동의하고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개헌안을 만들어 올해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지난 대선 기간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께 드린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임 실장의 발언은 여야의 개헌 논의를 압박하는 동시에, 끝내 국회에서 개헌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할 경우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를 추진하겠다는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정치권에 6·1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놓고 전운이 감돌고 있음에도 정착 구체적인 개헌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민주당 개헌특위 간사인 이인영 의원 측은 개정 헌법의 시안을 공개해 달라는 한 언론사의 요청에 대해 “(조문 형태의) 페이퍼는 확실히 가지고 있으나 현재 130개 조항을 가다듬고 있다”고만 말했다는 전언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측 역시 “민주당이 도무지 알려주지 않는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개정 헌법 시안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권이 개헌 논의에서 활용할 것으로 보이는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유’ 빠진 민주주의,
오독(誤讀) 위험성 높아...

 
일단 1월 8일 발표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의 개헌안 보고서를 보면 총강 제4조에서 ‘자유’라는 말이 삭제됐다. ‘자유민주적’을 ‘민주적’이라고 고쳐서 표현했다. 전문(前文)에서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제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 역시 지난 2월 1일 “헌법 4조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보다 넓은 의미의 ‘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 4조에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다.
 
통일 관련 헌법 조항에서 ‘자유’를 삭제한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 또는 듣기에 따라 사회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 형태의 통일도 용인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학계에서 역시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라고만 표현하게 되면 오독(誤讀)의 위험성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 자체는 제도이기 때문에 특정 지향점을 부여해야 하나의 이념이 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사회, 인민, 숙의, 참여 등 노선과 방법론을 기준으로 저마다 수식어를 붙이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말살된 북한도 구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그러자 보수진영에선 당연히 반발이 터져 나왔고, 논란이 일자 민주당도 브리핑 4시간 만인 이날 밤 10시 30분께 입장자료를 내고 “자유가 빠진다는 내용은 조항이 많다 보니 대변인의 착오로 인해 잘못 전달됐다”며 “(자유 문구는)그대로 유지키로 했다”며 대변인의 실수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대변인의 실수임을 인정하면서 자유를 유지하기로 했지만,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개헌안 조항은 이게 다가 아니다.
 
경제민주화 강조... 토지공개념,
사회적 경제 관련 규정 강화

 
민주당은 헌법에 ‘사회적 경제’를 포함시키고, ‘토지공개념’을 강화하기로 했다. 사회적 경제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조직이 상호협력과 사회연대를 바탕으로 공공이익을 추구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토지공개념 역시 토지의 소유와 처분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적절히 제한할 수 있게끔 하는 것으로 둘 다 공공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와 토지공개념 등이 헌법에 조항에 포함되면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인 사유재산제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아울러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혁명 외에 6·10 항쟁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소수 의견으로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을 명시하자는 의견, ‘촛불시민혁명의 뜻에 따른다’는 문구를 넣자는 의견도 있었다.
 
민주당 개헌의총에선 ‘촛불 혁명’을 명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촛불 혁명의 경우 역사적 평가가 진행 중인 사안이거니와 가치나 의미가 확정되지 않은 개념이라는 게 보수진영의 시각이다.
 
이 밖에도 자문위원회 보고서 제11조에는 ‘사형은 폐지된다’고 명시돼 있다. 사형제도의 필요성에 찬성하는 여론도 있고,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도 일관되게 사형제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려 왔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형제 폐지를 헌법에 삽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제34조에는 ‘모든 사람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교육과정의 질 제고 및 형평성 보장을 위하여 노력하고, 평생교육, 직업교육, 민주시민교육, 사회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자문위원회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교육 격차의 원인과 배경이 균등한 공교육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교육,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그리고 지역교육격차에 있다”면서 “교육의 출발선과 중간 과정, 도착점 전반에서 교육 격차를 줄이려는 국가의 의무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획일적인 고교 평준화 정책을 고수하고, 자립형 사립고나 특수목적중·고등학교, 국제중·고등학교 등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봉쇄하고, 사교육을 금지하는 조치의 헌법적 근거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민주시민교육 진흥’은 그동안 좌파 교육감들이 시행해 온 이른바 ‘민주시민교육’의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특정 가치관을 주입하는 교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제35조 1항에는 ‘모든 사람은 일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근로의 권리(일할 권리)’의 주체가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변경됐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제한 없이 ‘일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한 일자리 침식, 이로 인한 사회갈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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