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도움은 언제?”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을 쓰나미처럼 휩쓸고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등장할 만큼 많은 여성들에게 성폭력 발생해 왔지만 정부와 수사당국은 이들을 보호해 주지 못했다. 미투 운동이 본격화 되면서 여성가족부를 향한 눈길이 커지고 있다. 여성들의 권익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발 빠른 대응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 지 오래다. 여가부 수장마저 미투 논란에 휩싸였고 피해 여성들 구제 및 방지를 위한 시스템조차 제때에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여가부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디다 신고해야 하나?” 2월말에서야 성폭력 방지대책 발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성폭력에 대한 정부 안이한 대응 질타 


여성가족부 무용론 제기의 가장 큰 원인은 뒷북 행정이다. 지난해부터 미투 운동이 본격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가부는 올 2월까지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지 못했다. 매일같이 미투 피해자는 쏟아져 나오는데 신고·구제센터 등의 공식 창구가 만들어지지 못하다 보니 피해자들은 울분만 토할 수밖에 없었다. 

성폭력 예방·피해 위한
구체적인 대책 시급


지난달 22일까지만 해도 여가부는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각계로 확산되는 것과 관련 “피해사실을 알린 피해자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당시 이숙진 여가부 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스토킹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 브리핑에서 “정부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꾸기 위해 피해사실을 알리고 미투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이같이 말했다.

이어 “여러분들의 용기가 헛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 성희롱과 성폭력을 없애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여가부는 당시 지난해 11월에 발표됐던 공공부문 성희롱 방지대책을 보완해 발표하겠다고 했다. 11월에 여가부가 발표했던 성희롱 방지대책에는 공공부문에 대해 특별점검, 신고활성화와 공무원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관한 무관용 원칙 적용 등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지고 있는 성폭력이 민간 영역에서도 많이 발생하고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하겠다는 얘기다.

당시만 해도 여가부는 미투 운동 관련 컨트롤타워라 공언하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과 전문가들은 여가부가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미투 운동 대응에 여가부가 소극적이다 보니 성폭력 피해자들은 물론 국민들의 여가부에 대한 원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여가부의 이러한 태도는 국제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28일 “한국 정부가 최근 개최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회의에서 성폭력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질타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당시 기사는 “유엔 측은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상대로 무고 및 명예훼손 고소에 나서는 것의 문제점도 지적했다”며 “위원들은 우리 정부에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 등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하자 불만을 표한 것으로 28일 드러났다”고 전했다.

특히 루스 핼퍼린 카다리 부의장 말을 인용해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무고죄로 고소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모든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현백 장관은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죄나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는 문제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최근 정부도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두는 등의 2차 피해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을 내놓았다.

공공기관 성폭력 특별조사
신고센터도 만들겠다


이런 가운데 여가부는 지난 2월 관계부처가 모여 2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소관 분야에 대한 실태 점검 현황, 신고센터 개설 여부, 분야별 대책 등을 제출 받아 종합적으로 개선방안을 논의해 새로운 정책을 짰다. 

정부는 지난달 27일에서야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보완대책에는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해 범정부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성폭력으로 벌금형 이상 선고를 받은 공무원은 즉시 퇴출하는 등 강력한 대책이 담겼다.

정부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여가부의 예방교육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기관 내 성희롱·성폭력 등 피해경험, 사건 조치 적절성 등에 대해 사전 온라인 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대상은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기관 등 4946개 기관이며 3월부터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온 오프라인 특별점검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여가부 위촉 민간전문가나 관할 주무부처를 통해 정부기관, 지자체, 교육청, 소속 공공기관에 대해 현장 특별점검이 실시된다.

공공부문 대상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도 3월부터 100일간 운영된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피해자가 2차 피해나 기관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뢰를 갖고 신고할 수 있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 ‘온라인 비공개 게시판’을 개설해 사건 신고를 접수받는다.

센터에 접수된 사건은 여가부가 관계기관에 조치를 요청하고 모니터링, 재발방지 대책 수립 요청 등을 진행해 신고한 피해자가 기관 내에서 가해자 격리 등 적절한 보호조치를 받으면서 사건이 해결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대학 및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사안에 대해서는 온라인 신고센터(교육부) 운영으로 피해사례 은폐 방지 및 신고·처리를 활성화하고 사안을 은폐·축소할 경우 교육부와 여가부가 합동 특별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 아울러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대학 내 성폭력 신고센터 등 운영 실태를 조사하고 개선이 필요한 대학에는 컨설팅 등을 지원키로 했다.

이 밖에 정부는 각 기관 내 사건 축소, 조직적 은폐 등을 방지하고 전문적인 조사·상담 지원 등을 위해 외부 전문가를 활용해 가칭 ‘성희롱 고충처리 옴부즈만’을 운영토록 권고할 방침이다. 

옴부즈만은 기관에서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되는지 모니터링하고 2차 피해 방지 등 피해자 보호체계가 작동되도록 지원한다.

또한 변호사, 노무사 등 관련 전문가 등으로 ‘직장 내 성희롱 사건 처리 솔루션 위원단’을 구성하고 필요 시 공공기관 등 현장에 파견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상담지원, 2차 피해 방지 등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가해자에 대해서는 인사상 제재가 강화된다. 가해자에 대한 조치의 적정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대응 가이드라인’을 개발·보급한다. 공공기관의 경우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 인사제재를 공무원 수준으로 상향 조치키로 했다.

공무원 성폭력 가해자 ‘엄벌’
당연퇴직 시 공직 퇴출


공무원 성희롱·성폭력 사건, 부당인사에 대한 신고 및 제보 체계가 강화된다. 성희롱·성폭력 사건 발생시 직급과 무관하게 ‘중앙고충심사위원회’에 고충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한다.

현행 5급 이상은 중앙고충심사위원회, 6급 이하는 각 기관의 보통고충심사위원회에 청구토록 돼 있다. 고충심사위원회는 민간위원을 1/3이상으로 하고 위원에는 남성과 여성이 반드시 포함토록 구성한다.

공무원의 성희롱·성폭력 관련 부당 인사행정에 대해 누구라도 제보할 수 있도록 ‘인사불이익 종합신고센터’(인사혁신처 인사신문고 활용)가 구축된다.

사건 처리 과정의 관리자 책임과 피해자와 신고자 보호 제도도 강화한다. 신고, 조사, 적극적 피해자 구제, 가해자와 관리자 및 해당기관에 대한 조치 사항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반 절차 규정을 마련한다.

사건을 은폐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관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기관명 대외공표, 임용권자 통보 및 징계, 시정 및 조치계획 제출 의무화 등 책임성 확보 방안을 검토한다.

공무원 성희롱·성폭력 가해자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이 엄격히 적용된다. 정부는 공무원법을 개정해 모든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은 일정 벌금형 이상을 선고받으면 당연퇴직토록 할 계획이다.

파면, 해임과 달리 당연퇴직은 소청심사 등 이의신청이나 소송 등의 구제절차를 신청할 수 없어 사유 발생(형 확정) 즉시 공직에서 퇴출된다.

성희롱 등으로 징계 받은 공무원은 실·국장 등 관리자 직위에 보임하지 못하도록 보직을 제한하는 제도 도입도 검토한다. 또한 성희롱 행위에 대한 징계양정 기준을 ‘그 밖의 성폭력’ 수준으로 강화해 고의가 있거나 중과실인 경우 정직 이상의 중징계만 내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엄단하기 위해 테마별 인사감사(예:연 1회)를 실시하고, 불이익 신고, 고충심사 내용에 따른 수시 인사 감사도 연중 진행하기로 했다.

교육부는 초중고 및 대학에서 성희롱·성폭력 사안 발생 시, 대응체계를 강화하고 관계자를 엄중 조치하기로 했다.

컨트롤타워는 여가부
범부처 협의체 운영


정부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대한 컨트롤타워를 강화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범부처협의체를 구성·운영한다. 여가부 장관이 직접 챙기며 관계부처와 함께 그간의 대책이 현장에서 잘 작동되는지 샅샅이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은 계속해서 보완해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고위직 공무원, 관리자 승진 및 신규임용 교육시 ‘성평등 및 폭력 예방교육’이 강화된다. 또한 공무원의 성희롱 예방교육 등 이수 결과를 부서장 등 관리자 성과 평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한다.

특히 검찰 등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가진 정부기관 에 대해서는 ‘찾아가는 성인지 교육’도 진행한다.

대학의 성희롱·성폭력 예방 관련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학정보공시’에 폭력예방교육 실적 항목을 반영토록 하고 국립대의 경우 대학내 성관련 상담소 설치, 예방 및 대응 실적 등을 평등 조치계획·실적 평가시 반영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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