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피해 여성 비정규직, 두려움에 ‘미투’도 못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지난 7일 오전 서울교육청 앞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학교비정규직도 #Me too(미투)!’란 슬로건 아래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본부 관계자들이 투쟁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고은별 기자>
[일요서울 | 고은별 기자] 학교비정규직 조합원 4만여 명을 보유한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최근 교내 여성비정규직의 성희롱·성폭력 경험유무를 공개하며 조직적인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나섰다. 이들이 자체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학교에서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한 여성비정규직은 21.2%로 나타났다. 본부 관계자는 피해 여성들이 2차 피해를 우려해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길 극도로 꺼려하고 있다며 이는 생계수단과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정부 및 관계기관에 성교육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피해 여성 보호를 위한 조치를 요구하는 등 적극 투쟁할 계획이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학교비정규직 性 피해 고발…조직적 ‘미투’
이민정 조직국장 “성교육 감독 강화, 피해자 방어조치 마련해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지난 7일 오전 서울교육청 앞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 학교비정규직도 #Me too(미투)!’란 슬로건 아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성폭력과 차별에 대한 피해자의 외로운 외침을 함께 단결한 여성들과 비정규직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려 한다”며 “이 자리를 중심으로 이중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바꿔내기 위한 활동을 시작한다”고 기자회견의 취지를 밝혔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안명자 본부장은 이날 “여전히 미투가 성행하는 이 시간에도 학교비정규직 근로자들은 (2차 피해가 두려워) 선뜻 누구도 피해 사실을 고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학교 안에서 고통 받는 비정규직들이 교육주체로 나서 계급사회의 최하층이 되지 않도록 조직 차원에서 미투를 전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진숙 부위원장은 “미투는 단순히 성희롱·성폭력 행위를 고발하는 것보다 상사라는 이유로 사건을 은폐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본다”며 “노조는 비정규직의 차별문제를 드러내고 여성 학교비정규직 근로자가 여성운동의 주체가 되도록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발언했다.

여성 학교비정규직 21%
“성희롱·성폭력 당한 적 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근무 중인 학교비정규직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학교비정규직 성희롱·성폭력 실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4일까지 이뤄졌으며 응답은 504명, 여기서 여성의 비율은 99.6%에 해당한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한 여성 비정규직 근로자 41.7%는 학교 내 성희롱 고충상담원 및 고충심의위원회가 ‘없다’고 답했다. ‘있다’고 답한 비율은 22.6%, ‘들어본 적 없다’는 응답자는 35.7%였다.

또 학교에서 받는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의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16.9%, ‘보통이다’ 42.7%, ‘불만족스럽다’ 12.9%, ‘받아본 적 없다’는 27.6%로 집계됐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이민정 조직국장은 “성희롱 예방교육은 연 1회 이상 받도록 돼 있지만 사인만 받는다든지, 유인물만 받는다든지 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설문에 참여한 여성비정규직 근로자 중 21.2%는 학교에서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없다’는 77.4%였다. 성희롱·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 중 50%는 불이익이나 주변 시선이 두려워 참고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싫다는 의사를 밝히고 행동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는 32.5%, ‘동료나 상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10%, ‘여성단체, 국가인권위원회나 고용노동부 등에 신고하고 시정을 요청했다’는 3.5%, ‘학교나 교육청 고충상담창구에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2% 등이었다.

기자회견에서는 학교현장의 실태 고발도 이어졌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 이지순 지회장은 “성희롱·성폭력 피해사실을 얘기해도 오히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게 되는 것이 사회”라고 지적했다. 이 지회장은 “여성이란 이유로,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어떤 억압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로 다짐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교장이 조리 실무사들에게 조리복이 아닌 비키니를 입히면 밥맛이 더 좋아지겠다고 했다’, ‘성희롱 판정받은 장학사가 징계 없이 교장발령을 받았고 신고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부당해고와 부당전직을 당했다’, ‘교감이 다른 사람들과 성적 농담을 주고받을 때 자리에 있었다’, ‘종이 한 장 주고 성폭력 교육을 연수했다고 하는 학교가 대다수’. 이는 본부가 주관식 문항을 통해 보고 받은 성희롱 사례 및 성교육 관련 의견들이다.

‘미투’ 단체운동 계속된다

본부는 이번 설문조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근거로 실제 현장실태는 더욱 참혹할 것이라고 봤다. 이 국장은 “조리실무사, 돌봄교실, 방과후 교사 등 근무환경상 온라인 설문에 응답하지 못한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깊숙이 조사를 해보면 수치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본부로 성 피해와 관련한 상담 요청이 들어오고 있으나, 피해자들은 대부분 2차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며 “몇몇 분들에게 이번 기자회견에서 함께 ‘미투’를 외칠 것을 요청드렸으나 외부에 나서길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고 피해자들의 고충을 전했다.

본부는 교육부, 교육청, 여성가족부 등 관계 부처에 제대로 된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를 요청하는가 하면 생계를 위해 피해사실도 드러내지 못하는 학교 현실을 개선하고자 학교비정규직 여성 근로자들에 대한 저임금·고용불안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국장은 “관련 부처에 성교육 관리감독 강화, 피해자에 대한 방어조치 등을 요구하며 앞으로 단체운동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성희롱 등 피해 고발로 해고를 당한 피해자의 경우 3개월 이내 고용부 노동위원회를 통해 구제신청을 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정부는 2차 피해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을 돕고 심리치료 등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권고사항에 그치고 있는 성희롱 고충상담원 및 고충심의위원회 필수 설치에 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정착이 안 된 부분이 있지만 개선을 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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