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 지역구, 정치생명이 달린 문제
- 헌법기관 역할 소홀, 지역구 매몰은 ‘인력 낭비’

 
지난 2월 여당의 모 의원이 험지(險地)라고 할 수 있는 경남 지역구 지역위원장에 임명되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다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당선 가능성 높은 수도권 빈 곳을 찾아갈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고향을 찾아갔다고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곳으로 내려간 선택이 놀라웠던지 지역사무실 개소식에도 20여 명의 의원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축하해 줬다고 한다. 어려운 지역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원들로서는 이심전심으로 힘을 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찾아가면서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수도권에서도 ‘물 좋은’ 지역구에서 내리 4선을 했던 야권 중진의원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호남지역으로 지역구를 옮긴 일이 있었다. 동료 의원들은 ‘중진답지 못하다’, ‘명분이 없는 선택’이라고 반대했다. 시민단체들까지 나서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지만 해당 중진의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선거에서 승리하고 국회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도 자유한국당이 MBC 아나운서 출신인 배현진을 송파을에 전략공천하는 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정치적 수세에 몰린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보궐선거에 내민 회심의 카드로 보인다. 해당 지역구는 이미 비례대표 의원이 당협위원장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당연히 선점하고 있던 의원이 반발했고, 당에서는 무마 차원에서 더 물 좋은 강남을 조직위원장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렇듯 국회의원들에게 지역구는 정치생명이 달린 문제다. 민주개혁 세력에게 영남지역은 오랫동안 난공불락의 험지였다. 보수 세력에게 호남지역 역시 넘기 힘든 벽이었다. 민주개혁 진영에서는 영남에서 생환한 의원들이 우대받고 보수 진영에서는 호남에서 생환한 의원들이 우대받는 풍경은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험지에서 살아 돌아온 지역구 의원들은 존재 자체로 지역감정을 넘어선 하나의 상징으로 대접받는 것이다.
 
흔히 국회에서 말하는 ‘지역구’는 법적으로는 국회의원을 선출하기 위해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설정된 ‘선거구’를 말한다. 20대 국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 지역구 수는 253개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는 지루한 여야 협상을 거쳐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통해 확정된다.
 
20대 국회는 2015년 10월 31일 현재 인구를 기준으로 한 선거구당 14만 명~ 28만 명의 범위 내에서 자치구를 고려하여 결정된다.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곳은 경기도로 60석이고(서울이 아니다!), 세종시는 1석에 불과하다.
 
요즘은 전문성을 무기로 비례대표에 입성한 국회의원들조차 일단 국회에 입성하면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서 지역구 찾기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전체 의석수 300석 중 47석을 차지하는 지역구 없는 의원들이 어디 빈자리 없나 지역구를 기웃기웃하는 것이 바람직한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4년이라는 짧은(?) 임기로 끝내기에 국회의원이라는 자리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4년 임기만 채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고고한 의원들도 없지 않지만, 많은 비례대표 의원들은 결국 지역구 찾기에 나선다.
 
어렵게 지역구를 차지한 국회의원들은 지역구에 살고 죽는다. 국회의원은 자기 지역구에서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다가도 골목대장 취급을 받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유권자에게 치이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지금도 영남지역이나 호남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에서 텃밭을 지역구로 둔 의원은 왕 못지않은 위세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도권처럼 스윙보터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의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머슴 취급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한번 정해지면 여간해서는 바꾸기 힘들고 국회의원 배지라는 권력이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지역구 의원들은 국회에서 일이 없을 때나 주말이 되면 ‘밭을 갈러’ 지역구로 향한다. 조기 축구회에 찾아가 한 게임 뛰기도 하고, 주말을 틈타 산으로 놀러가는 주민들을 만나러 관광버스에 오르면 노래 한 소절이라도 불러야 한다.
 
금요일에 지역구로 내려가고 월요일에 다시 국회로 복귀한다는 의미의 ‘금귀월래(金歸月來)’로 유명한 박지원 의원이 노익장을 발휘하는 것도 국회의원에게 지역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에 얽매이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은 헌법에 보장되는 헌법기관이다. 국회의원의 임무는 법을 만들고 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역구 활동에 과도한 관심과 열정을 쏟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지역 대표성을 가지기는 하지만 시의원이나 도의원과 하는 일이 구별되지 않는다면 뭐 하러 이중 삼중으로 의원들을 뽑느냐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래 저래 오늘도 많은 의원들이 국회 문을 닫으면 지역구로 가는 차편에 몸을 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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