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 한숨으로 기다린 68년 ‘생사라도 알 수 있었으면…’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3일 평양 보통강 구역의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합동공연은 ‘다시 만납시다’라는 노래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남북 가수 30여 명이 함께 노래를 부르며 목이 메었다는 후문이다. 한반도 평화무드는 무르익어 가고 있지만 남북합동 공연 등의 소식을 들으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산가족과 납북자가족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산가족과 납북자가족 관련 소식은 정작 감감무소식이기 때문이다. 6·25로 시작된 이들의 이별은 올해로 자그마치 68년째다.

가족협의회 “한반도 평화·’종전 말하기 앞서 납북 피해자 문제 해결해 달라”
비공식적으로 정부-북한 접촉 진행해 온 정황 포착, 이산가족 상봉 가능성↑


지난 3월 27일 기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하 가족협의회) 이미일 이사장이었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이 이사장의 목소리엔 깊은 한숨이 배어 있었다. 기자는 차마 안녕하시냐는 안부 인사를 할 수가 없었다.

가족협의회는 기자와 통화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 모였다. 4월 28일 판문각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6·25 납북자 문제를 의제로 올려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지난 5일부터 청와대 분수대 앞과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후문에서 동시에 1인 릴레이시위에 돌입했다.     

“남북정상회담서
납북피해자 문제 다뤄야”


가족협의회의 요구사항은 한 가지다. 오는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6·25전쟁 납북피해자 문제를 의제로 올려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가족협의회 측은 지난 4일 보내온 보도자료를 통해 “북한은 그들이 전쟁 중 자행한 한국 민간인 납북이 범죄임을 알기 때문에 휴전회담에서 6·25전쟁납북자 문제를 결사적으로 은폐함으로써 의제화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6·25전쟁납북피해 진상조사보고서’의 권고사항으로 첫째, 북한은 전시납북사건을 시인하고 납북피해자들에게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과 둘째, 정부는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전시납북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다각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명기했다.”며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가족협의회는 6·25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오랜 시간 고군분투 해 왔다. 그 결실로 지난해 11월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을 개관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전인 2010년 3월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에관한법률’(전시납북자법)이 제정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시납북자법 청원도 납북자가족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다. 

결국 이를 바탕으로 같은 해 12월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족됐고 ‘6·25전쟁납북피해 진상조사보고서’까지 나올 수 있었다.

가족협의회는 지난달 2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기밀문서 KWC(한국전쟁범죄)141’을 공개했다. 이 문건은 북한이 6·25전쟁 중인 1950년 10월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납북한 한국공무원 2,000명을 대동강 인근에서 집단 학살하고 매장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또 당시 사건에 가담한 가해자 3명에 대한 심문 내용과 학살 현장 배치도도 포함돼 있다. 북한에 의한 한국 민간인 납북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이러한 문서 등을 바탕으로 가족협의회는 다시 한 번 정부에 납북자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가족협의회 측은 “북한정권의 납북 범죄 사실이 명명백백히 드러난 만큼 한반도 평화와 종전을 말하기에 앞서 휴전회담에서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는 전쟁납북피해자 문제를 우선 해결하여 국가의 자국민 보호 최우선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
“최대한 빨리 방안 강구”


이산가족 상봉은 지난 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게 마지막이었다. 이후 남과 북은 이산가족과 관련한 구체적인 일정을 논의한 바가 없다. 이산가족이나 납북자가족의 문제는 고령화다. 가족 구성원이 대부분 고령인 만큼 하루빨리 해결돼야 한다.

지난달 10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TV에 출연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북한이 북한 나름대로 또 여러 가지 내부적인 입장이 있다”며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최대한 빨리 이산가족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롭고 창의적인 방안들을 강구하고, 필요하다면 담대한 접근도 해 나가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전제조건으로 중국에서 집단 탈북한 북한식당 종업원 12명의 송환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로 지난달 29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 이산가족 상봉을 전담으로 일해 온 우리 측 인사가 포함된 사실이 알려졌다. 이 인사는 지난달 22일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우리 예술단의 평양공연 사전 점검을 위해 평양을 방문할 때도 동행했다고 전해졌다.

정부 입장에서 이산가족 문제가 납북자가족 문제보다 북한과 이야기하기가 부담없는 주제다. 그동안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북한과의 접촉을 진행해 온 정황도 포착됐다. 지난 2월 16일 일본의 교도통신과 산케이신문 등은 남북한 적십자사가 작년 가을 이래  5개월 동안 접촉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을 협의했다고 밝혔다. 

매체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가 북한 조선적십자회, 국제적십자·적신월사 연맹(IFRC)와 3자간 접촉을 계속했다고 전했다. 당시 박경서 회장은 북한 측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 작업이 연내로 최소한 200명분 정도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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