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7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아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상태에 놓여 있던 국민투표법이 국회에서 개정안이 논의되지 못한 채 방치됨으로써, 오는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국민투표에 부치려던 개헌안 국민투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6월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지난 23일까지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 했으나 정치권의 선택은 위헌상태의 국민투표법이었다.
 
국민투표법이 개정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회계연도가 시작되자마자 내놓은 정부의 추경안, 민간댓글부대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드루킹 사건,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국회는 정쟁의 메카답게 정쟁으로 날을 지새워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음으로써 계륵과 같은 존재였던 개헌 이슈를 지방선거 이후로 넘기는 데 성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6월 개헌을 불가능하게 한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당 정치권에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개헌을 불가능하게 만든 공동정범인 것이다.
 
6월 개헌은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7년 체제를 종식시키고, 새로운 정치체제로의 이행을 위해서는 개헌을 위한 논의와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개헌 없이 시대적 전환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법 개정 불발로 정치권에서의 개헌 논의는 6월 지방선거 이후로 자연스럽게 연기되었다. 그러나 곧 개헌 논의는 정치권의 최대화두로 떠오를 것이다. 그 때는 정말 개헌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우리 헌법이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패 없는 개헌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난 시기의 개헌 논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모두 9차례 개정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부분 정변이나 정치적 사건에 따른 권력자의 필요에 의한 헌법 개정으로, 한마디로 우리나라 헌법의 역사는 흑역사(黑歷史)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일하게 지난 87년의 9차 개헌만이 여·야간 합의에 의한 헌법 개정으로 의미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발의한 헌법개정안은 절차로도 내용으로도 국민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먼저 절차로 보면 각 정당 간 합의의 산물이 되어야 할 개헌안이 대통령 공약 수준으로 일방적인 내용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국회에서 논의되어왔던 경위가 있었음에도 대통령 개헌안은 그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는 지극히 정략적인 개헌안이었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논의되던 개헌안에 대한 고려가 없이 일방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함으로써 국회 헌정특위는 무력화되었고,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용적으로 보면, 새로운 기본권의 확장, 동일가치노동 동일수준임금에 대한 노력, 사회보장을 국가 의무에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로 규정하는 등 진일보한 측면이 없지 않다. 반면, 대통령 연임제,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대통령 발의 헌법개정안의 치명적인 약점은 필수개헌조항이 누락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드러났을 때, 많은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샀던 대통령의 재임 중 형사상 소추를 면하게 하는 84조 및 사실상 여야 합의 없이는 무용지물에 불과한 128조의 대통령 헌법개정안 발의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다.
 
현행헌법 130조 1항에 헌법개정안 국회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128조의 대통령 헌법개정안 발의권은 불필요한 정쟁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영 87년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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