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자들 “공원 입구 아닌 사찰 입구에서 관람료 받아라”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문화재 관람료 논쟁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등산객과 사찰 방문객을 구분해 무차별적인 징수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문화재 관람료를 국립공원 입구가 아닌 사찰 입구에서 받게 해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잇따라 올라오는 상황이다.

10년째 논쟁···국립공원 내 사찰 22곳 관람료 징수, 상당수 공원 길목서 받아
속리산 법주사·부산 범어사 관람료 폐지···노웅래 의원, 법안 개정 준비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문화재 관람료 폐지와 관련해 27일 오전까지 총 27개의 청원이 올라온 상태다.

한 청원 내용을 살펴보면 청원인은 “‘문화재보호법’ 제49조(관람료의 징수)는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 또는 보유자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 다만, 관리단체가 지정된 경우에는 관리단체가 징수권자가 된다’고 명시돼 있다”고 적었다.

이어 “이런 보호법을 근거로 사찰들은 국립공원의 입구를 막고 통행세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는 국민들에게까지 걷고 있는 실정이고 입장료가 폐지된 것을 모르는 국민들은 사찰에 막대한 요금을 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찰은 산객과 사찰 관람객들이 버리는 쓰레기와 화장실 사용을 관리하기 위해 요금을 걷는다고 하지만 이런 것들은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이 관리를 하면 되고 사찰들은 각 사찰의 입구에서 사찰 관람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현금으로만 받아온 그들(사찰)이 제대로 된 세금을 내고 있는지, 그에 따른 문화재 관리의무는 확실히 지키고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문화재 보호법에 따르면 문화재 소유자가 시설을 공개할 경우 관람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놨다. 이를 근거로 국내문화재 소유 사찰 총 507개소 중 국립공원 내 사찰 22곳에서 1인당 1000~5000원의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리산, 설악산, 속리산 등 국립공원 내 상당수 사찰이 국립공원 길목에서 관람료를 징수한다.

청원의 내용을 정리하면 사찰들이 사찰 방문객에게만 관람료를 받는 것이 아닌 등산객들에게까지 돈을 받고 있어 불필요한 징수라는 의견이다.

사찰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는 일반 등산객에게는 ‘통행세’처럼 인식이 되고 있으며 사찰이 국립공원의 자유로운 이용을 막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일각에서는 사찰을 두고 ‘산적’이라는 비유까지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종교투명성센터 등 24개 단체는 문화재 관람료 폐지 관련 국민청원이 잇따르자 청원 동참을 선언했다.

이들은 “국립공원의 세금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국민들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국립공원을 자유로이 통행할 권리가 있다”며 “사찰들이 통행세를 징수할 법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관람료 징수 위치에 대한 세부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사찰들은 공원 입구에 매표소를 설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도 등산객들과 사찰 사이에 이 문제로 불필요한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법원은 이러한 사찰의 관람료징수관행이 부당하고 일반 등산객의 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는 판결까지 내리고 있다”며 “하루빨리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불법적 관행을 묵인하지 말고, 사찰 관람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청원 동참 이유를 설명했다.

문화재 관람료 논쟁은 최근에서야 떠오른 문제가 아니다. 지난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될 때부터 시작됐다.

등산객 및 청원자들은 입장료 폐지를 요구하는 반면 사찰 측은 문화재 유지 관리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찰에서 징수한 문화재 관람료의 절반은 종단으로 보내져 예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람료 수입의 절반은 평소 문화재를 유지‧보수하는 데 쓰이고, 나머지 큰돈이 들어갈 일에 대비해 종단에서 따로 보관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합뉴스 보도에서 한 조계종 관계자는 “문화재를 보수하려면 사찰도 20% 안팎의 자기부담금을 낸다”면서 “1700년 간 문화유산을 지켜왔고, 지금도 유지관리를 위해 애쓰는 불교계의 노력을 외면한 채 관람료의 정당성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려면 불교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 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보존 대책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불교계 역시 수년 째 되풀이되고 있는 논쟁을 매듭지어야 할 때가 됐다는 데는 동의하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17일 문화재 관람료 논란과 관련해 해법을 찾기 위한 토론회가 마련됐다. 문재인 정부와 함께 한국불교 적폐청산을 추진 중인 ‘새로운불교포럼’이 문화재 관람료 징수 관련 세미나를 개최한 것. 주최 측은 행사에 조계종을 참여시키려 했으나 조계종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공원 문화재 관람료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주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사찰문화재관람료 징수 위치 변경’, ‘사찰문화재관람료 일원화 및 결정에 시민단체 참여’, ‘사찰문화재관람료 징수 지출 내역 투명 공개’, ‘국가보조금으로 사찰문화재관람료 대체’ 등을 제안했다.

행사에서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조계종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데 무슨 근거에서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국립공원 자체가 국민의 예산으로 관리된다. 사찰에는 문화재 보수뿐 아니라 전통사찰지원법에 따라 큰돈이 지원되고 있다”면서 “문화재보수비가 매해 2000억 원 이상 지원된다. 이 외에도 템플스테이 지원, 문화재관람료 등 많다. 사찰에서 하는 불사는 또 누구 돈으로 하나? 이런 것들을 포함하면 수천억 원쯤 된다”고 밝혔다.

이어 “사유재산 관리권을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꼭 돈을 요구해야 하나? 불교는 기본이 무소유 아닌가”라며 “다시 말하지만, 한국불교 사찰들은 이미 정부로부터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고 있다. 관련 법률안 개정 운동과 함께 청원운동을 하자. 일단 가장 쉬운 것부터 하자. 관람료를 징수하는 위치부터 등산로 입구가 아닌 해당 문화재 앞으로 변경하자”라고 전했다.

새로운불교포럼 고문 영담 스님(석왕사 주지)은 축사에서 “사찰문화재관람료 지적은 오래됐다. 관리비와 보존비용으로 나눠서 예산을 배정한다면 국민 불편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찰 앞을 지나기만 하는데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이 문제다. 절 앞에서 관람료 받고, 부족분은 국가 예산에서 지원하도록 하는 방법이 좋을 것 같다”면서 “새로운 불교포럼에서 문화재관람료 토의하게 돼 고무적이지만, 건전한 비판을 조계종이 얼마나 받아들일지 미지수이긴 하다. 국회나 정부의 입법을 통해 사찰 문화재 관람료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충북 보은에 있는 속리산 법주사는 올해부터 보은군민에게 관람료를 면제해 주고 있다. 상생협약이 있고 나서 주민들은 신분증만 제시하면 사찰과 속리산 국립공원을 드나들 수 있게 됐다. 부산의 범어사도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했다. 대신 부산시로부터 한 해 3억 원의 보조금을 받는다.

이 밖에 세미나에 참석한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찰 문화재관람료 징수 위치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징수 위치, 징수 방법 등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위임토록 하는 ‘문화재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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